눈사랑

by 고다혜


밤사이 눈이 옴팡 쏟아졌다.



세상에 하얀색 말고 다른 색깔은 삭제된 것 같았다. 뾰족한 잔디를 뽀오얀 눈이 덮었다. 밀가루를 체에 밭쳐 솔솔 뿌린 것처럼 고왔다. 햇빛이 비친 순간 눈의 결정이 반짝였다. 도끼로 잘 쪼개 쌓아놓은 장작 위에도 수북하다. 나무는 불을 기다렸을 텐데 눈이라니 얼마나 당황스러웠을까. 가마솥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열매를 가득 품은 사철나무는 눈을 잔뜩 뒤집어쓰고도 꼿꼿했다.



'아파트 살 때의 눈은 ‘낭만’이었는데 주택 살아보니 ‘난감’이더라.' 주택으로 먼저 이사한 분에게 들은 적이 있었다. 눈 치우는 일이 이렇게 힘든 줄 몰랐고 거기에 지쳐서 이제 눈 많이 내리는 날이 무섭다고 하신 말씀이었다.


나의 경우는 어땠냐면…어쩔 줄을 몰랐다. 너무 좋아서. ‘마당에 잔뜩 쌓인 저 눈으로 눈사람을 만들 수 있다니 대체 얼마나 큰 걸 만들 수 있을까?!’ 눈밭에 풀어놓은 강아지처럼 신났다. 매년 만들다 보니 기술성도 예술성도 높아졌다. 처음엔 맨손으로 주먹만 한 크기부터 시작해서 큰 눈덩이로 만드느라 시간이 오래 걸렸다. 다음 해부턴 도구를 썼다. 큰 스텐볼에 눈을 꾹꾹 눌러 담아서 반구를 만들고 또 반을 만들어 합친 후에 굴리니 큰 눈덩이가 순식간에 뚝딱 완성됐다. 눈사람 이목구비나 팔도 굳이 반듯한 모양, 대칭이 아니어도 밭에 있는 재료를 써서 만드니 자연스럽고 예뻤다. 빨갛게 마른 고추가 눈썹이 되고, 풀씨가 작은 눈이 되었다.



신나게 눈사람을 만들고 나면 드디어 눈을 치울 차례였다. 집 입구에 걸 터 앉아 신발 끈을 조여매는 남편의 모습이 비장해 보였다. 큰 의식을 치르기 전 마음을 다잡는 사람처럼. 그는 눈 치우는 눈부신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남편은 26개월 동안 화천에서 군 복무를 했다. 두 번의 혹독한 겨울을 겪었다고 했다. 영하 27도까지 떨어지는 기온. 피부를 할퀴는 날씨 때문에 밖에 나갈 때는 안면 마스크가 필수였다. 한 번은 선임 한 명이 밥 먹으러 갈 때 마스크를 깜빡하고 안 썼다가 얼굴에 동상을 입었다고… 듣기만 해도 내 얼굴이 따갑고 욱신거렸다.


그를 힘들게 했던 게 하나 더 있었다. 눈 치우는 일. 부산 사람인 그는 군대 가기 전까지 눈 오는 걸 두 번 정도 봤다. 부산은 따듯해서 눈이 거의 내리지도 않고, 쌓이지도 않는다고 얘기했다. 그랬던 그가 화천에 가서 맞은 첫 겨울. 펑펑 눈 내리는 풍경이 너무 황홀하고 예뻐서 연병장이 천국 같아 보였다고 한다. 그 '천국'이 남편과 동기들을 겨우내 눈 치우는 늪에 빠져 지내게 했다. 3,4일 정도만 빼면 눈이 계속 내렸다. 심할 때는 4월에도 온 날이 있었다. 식목일에 나무 심으러 가려는데 눈이 내려서 식수는 안 하고 치웠다고 한다. 산 중턱에 있던 부대로 부식 차가 들어와야 하니 쌓여서 미끄럽지 않게 진입로를 치우고, 밥 먹고 나서는 부대 안을 치우고 연병장을 치웠다. 눈을 맞으면서도 눈을 치웠다. 새벽이든 밤이든 눈을 치웠다. 군에서 보낸 두 번의 겨울이 그를 눈 치우기 선수로 만들었다.




남편은 지금도 눈을 좋아한다. 치우는 게 힘들어도 감내할 수 있을 만큼 눈이 여전히 예쁘다고 한다. 군 생활 동안 눈이랑 그렇게까지 싸웠는데도 좋다고 하는 건 기적이다. 얼마나 다행인가. 눈 치울 일 많은 주택에서 눈 사랑하는 부부라니.


물 한 방울 떨어져 있지 않은 눈을 밟았다. 목화솜처럼 새하얬다. 발목까지 푹푹 빠졌다. ‘뽀드득 뽀드득’ 밟을 때마다 눈에서 맑고 시원한 향기가 나오는 것 같았다. 나는 인간 불도저. 넉가래를 들고 걸어가면서 눈을 밀었다. 그는 쌓인 눈을 삽으로 퍼서 뒷마당에 모았다. 순식간에 삽질을 마치고 잔잔하게 남은 것은 빗자루로 쓸고 계단에 염화칼슘을 뿌렸다.


“눈 치우기 대회 나가면 자기가 금메달이야!”


눈 벽을 가르고 길이 드러났다. 다 치워놓은 눈을 보는 그 순간이 빛과 꿀처럼 느껴졌다.



내리는 눈도, 눈 사람을 만드는 눈도, 치워야 하는 눈도 내 눈엔 다 예쁘다.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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