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중이었다. 수진은 식탁에 놓인 컵에 술을 따르고 있었다. 맥주컵에 소주 반 잔을 넣고 카스를 채웠다. 흰 거품이 허무하게 흩어진 다음 수진은 컵을 들고 한 모금 맛을 보았다. 컵을 내려놓고 수진은 소주 한 잔을 다 넣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파트 현관문 비밀번호 누르는 소리가 들리고 문이 열렸다. 영규였다. 왼손에 반쯤 채운 더플백을 들고 있었다. 수진은 나가 맞았다.
“오래 안 걸렸네.”
수진이 영규의 어깨에 두 팔을 둘렀다. 영규는 더플백을 내려놓고 수진의 허리를 잠시 안았다가 풀었다. 힘없는 포옹이었다.
“씻을래?”
“아니, 먼저 한 잔 할래.”
영규는 벽시계를 힐끗 쳐다보고 점퍼 윗단추를 풀며 식탁에 앉았다. 새벽 한 시 반이었다. 수진이 골뱅이 접시를 가운데 두고 소맥 한 잔을 더 말았다. 영규는 반 잔을 마시고 소주잔에 소주를 채워 한 잔을 더 마셨다. 수진은 그 모습을 보면서 자신도 소맥 한 잔을 비웠다. 아이들이 많아 시끄러운 동네였지만 이 시간은 눈으로 덮은 듯 교교했다.
수진이 먼저 말했다.
“힘들었지?”
“아니, 생각보다 괜찮았어.”
의외로 영규가 미소지으며 말했다.
“구청에서 공무원 한 명, 유품 정리인 한 명을 보내 줬어. 내가 유품 정리하겠다고 했지만 법정상속인이 아닌 이상 그럴 권리가 없대. 대신 연락 닿는 유일한 사람이니까 현장 입회는 허락해줬어. 유품 정리인 일하는 거 옆에서 도와줬지.”
“담당 공무원이 유연하네.”
“거기 쪽방촌이라 고독사가 잦으니 원칙만 내세우면 안 되는 걸 알더라고. 정리할 물건도 별로 없었어. 현금도 없고, 신분증이랑 옷가지 조금, 당장 내버려도 괜찮을 신발 두 켤레, 볼펜, 휴대폰이랑 충전 코드 정도.”
“이부자리 같은 것도 없었어?”
“없었어. 형이 그 위에서 숨 거두었으니까.”
수진이 식도에서 뭔가 올라오는 표정을 지었다.
“날씨가 추워지는데 패딩 하나 없더라...”
영규는 이렇게 말하면서 끝내 안경을 벗고 손으로 눈가를 감추었다. 볼과 귓가가 북풍을 맞은 듯 새빨개졌다. 수진은 한 손을 내밀어 영규의 손을 잡았다. 영규는 수진의 손등을 잡고 눈물을 닦았다.
“사람이 그렇게 죽었네... 형이...”
수진이 얼음을 깨듯 말했지만 오히려 영규는 감정이 가라앉았다.
“형수는 이혼하고 안 본 지 오래됐지만 만에 하나 현주가 아빠 유품이라도 찾을까 봐 가방에 챙겨 왔어. 별 거 없어. 옷이나 뭐, 그런 거야. 나중에 내가 세탁기 돌린 다음 잘 개켜서 나무 상자에라도 넣어 두려고.”
“글쎄, 그럴까.”
수진이 대답했다.
“오빠 가 있는 동안 내가 언니한테 카톡 여러 차례 넣었어. 전부 다 읽씹이야. 아님 아예 톡방을 나갔을 수도 있고. 일대일 대화방은 상대방이 나가도 알 수 없거든.”
“현주한테 따로 연락해봤어?”
“아니. 언니가 이혼하고 현주 이름을 바꿔버렸어.”
“뭐, 이름을 바꿔? 형에게 못 들었는데?”
“몰랐어? 현주, 이제 서이야. 옥서이. 카톡 프로필이 바뀌었더라고.”
“... 그랬구나. 형수는 진짜 연예인으로 밀려는 모양이네. 이름도 바꿔주고.”
수진은 반박하지 않았다.
두 사람이 앉아 있는 원목 식탁은 모서리가 둥그스름했다. 서이가 되기 전의 현주는 일곱 살 무렵 영규 삼촌과 수진 이모 신혼집에 놀러 왔다가 그 모서리에 이마를 부딪쳐 피를 흘렸었다. 뾰족한 모서리 식탁을 사지 않아 얼마나 다행이었던가. 영규와 수진은 안절부절못했지만 현주 엄마는 당황하지 않았다. 어린아이의 피나는 이마를 검안사처럼 들여다보면서 육아 가방에서 일회용 소독 거즈, 마데카솔, 습윤 밴드를 차례대로 꺼냈다.
“수진아, 잘 봐 둬. 아이들은 언제 다칠지 모르니까 늘 응급약을 갖고 다녀야 돼. 흉터 없이 새 살 빨리 돋게 하려면 습윤 밴드 붙여야 하고.”
놀라서 앵앵 우는 아이 울음소리 속에서도 준비된 엄마의 목소리는 유리처럼 명료했다.
현주와 현주 엄마는 그 다음해에 영규와 수진 집에 왔다. 삼 개월 후, 오 개월 후에도 왔다. 현주 아빠의 주먹과 발길질을 피해서였다. 처음 현주 모녀가 도망 온 날 영규의 갤럭시는 일 분을 멀다 하고 울려댔다. 현주 엄마는 눈알이 튀어나올 듯한 표정을 짓고 목 관절이 빠지도록 도리질을 쳤다. 영규는 분노를 참느라 결국 전화를 진동으로 돌려놓았다. 수진도 입을 꾹 다물고 습윤 밴드를 꺼냈다. 모녀의 세 번째 피신 때 영규는 현주 아빠의 전화를 받자마자 아파트 옆집에 들리도록 고함을 질러댔다. 결국 수진이 영규의 팔에 매달려서 휴대폰을 빼앗아 통화를 끊어버려야 했다.
“그만 소리 질러, 그러다 옆집에서 쫓아온다고!”
“형수, 집에 가지 마요! 형이 완전 미쳤어. 현주도 우리 집에서 학교 가.”
수진도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미리 사 두었던 습윤 밴드의 마지막 포장을 뜯었다. 현주 엄마가 조용히 말했다.
“나 맞는 건 괜찮아. 하지만 현주가 맞으면... 그건 안 돼. 수진아, 왜 안 되는지 너는 알지?”
세 번째 방문 후 육 개월 뒤 수진은 현주 모녀와 경찰서에 갔다. 제3자의 증언은 민형사는 물론 이혼 소송에도 도움이 되기 때문이었다. 그 후에도 수진은 현주 모녀에게 카톡을 전달받았다. 집 나왔어, 걱정 마, 번호는 이게 새 거야, 위자료는 충분히 받기로 했어, 사실상 재산 전부야, 미안해, 고마워... 어느 순간부터 현주의 카톡 프로필이 바뀌었고 수진의 카톡에 답이 끊어졌다.
“이혼한 지 이 년쯤 됐지?”
“삼 년이야.”
“오빠, 그런데 형이 원래 그렇게 폭력 심한 사람이 아니었잖아. 술도 별로 안 마시고. 난 언니가 처음 맞았을 때 정말 놀랐어. 오빠가 날 때렸어도 그렇게 놀라진 않았을 거야.”
“수진아, 내가 너를 왜 때려.”
“미안해. 비유하느라 한 소리야. 하지만 형이 결혼하고 그렇게 변할 줄은 몰랐어.”
“결혼할 때는 안 그랬어. 현주가 학교 입학하고 나서지.”
“그때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영규는 고개를 흔들었다.
“내가 알기로는 없어. 직장도 다닐 때였고 형네 양가 부모님 댁에도 별 일이 없었어. 형수랑 싸웠다는 말도 못 들었고, 그런데 현주 초등학교 들어가고 나서 교회도 갑자기 끊더니 잘 안 먹던 술을 마시기 시작한 거야. 그러면서 형수를 치기 시작하고, 현주도 때리고. 아침에 나가서 회사도 안 가고 한밤중에 만취해서 들어오고 그랬대. 결국 직장에서도 잘렸지.”
“학교 다닐 때 형이 참 성실했잖아. 강의는 기본 올출에 토익도 좋았고 주일 아침마다 학교 성가대 하러 나가고 그랬는데.”
“원래 망나니였거나 아니면 슬금슬금 망가지는 기색이 보였다면 이해라도 가. 멀쩡한 사람이 갑자기 홱 돌아버렸으니 형수도 현주도 미칠 지경이었겠지.”
수진은 말없이 소맥을 채워 내밀었다.
“왜 그랬을까...”
사그러지는 소맥의 은빛 탄산처럼 수진의 한숨이 스러졌다. 영규는 소맥 한 잔을 원샷하고 잔을 내밀었다. 소주 한 병과 맥주 세 병이 바닥을 보였다. 둘 다 손대지 않은 골뱅이의 물기가 말라가고 있었다.
“장례식은 언제래.”
이윽고 수진이 말했다.
“몰라. 공무원 말이, 무연고자 장례식은 따로 일정을 잡아야 하니까 연락해 준대.”
“가 볼 거야?”
“연락하라고는 했지만... 안 가려고.”
영규는 고개를 흔들었다.
“현주, 이제 서이라고 했나? 둘 다 안 가는데 내가 가면 형이 오히려 속상하겠지. 형을 괴물로 만들었던 게 뭔지 모르지만 깨끗이 잊고 훨훨 날아가 줬으면 좋겠어.”
수진은 두 번째 소주병 주둥이를 비틀었다.
새벽 두 시 반이었지만 두 사람은 취하지 않았다. 영규는 문득 점퍼 주머니에서 갤럭시를 꺼냈지만 화면이 켜지지 않았다. 배터리가 모두 소모되어 있었다. 영규는 고개를 저으며 일어나 거실의 충전 코드가 꽂힌 콘센트를 찾았다. 전원을 연결했지만 화면이 바로 켜지지 않았다.
“오후에 보조 배터리로 밥 먹여 뒀는데, 벌써 다 닳았나...”
“오빠.”
수진이 식탁에 앉아 갤럭시를 손에 들고 흔들었다.
“그거 형 거야. 오빠 휴대폰 여기 있어.”
“어?”
영규는 입을 조금 벌리고 수진의 손에서 갤럭시를 받아 들었다. 거실에 꽂힌 휴대폰과 같은 기종이었다.
“형 휴대폰이랑 오빠 휴대폰이 같은 기종이야. 커플폰이네?”
“농담하지 마.”
영규가 눈을 흘겼지만 말 끝은 가벼웠다.
수진이 나무젓가락으로 골뱅이를 집어 초고추장에 찍었다. 그렇지만 입으로 바로 집어넣지는 않았다. 둘의 신경은 온통 거실에 꽂힌 갤럭시에 못 박혀 있었다. 수진은 갤럭시 화면에 눈 초점을 맞추었다. 5, 4, 3, 2, 1!
“오빠, 화면 켜졌어.”
영규는 대답하지 않고 골뱅이를 하나 집어 먹었다.
“비밀번호 패턴 걸려 있겠지.”
“오빠랑 같은 기종이잖아.”
“같은 기종이면 비번 패턴이 같니?”
“난 아이폰 써서 갤럭시 사용 방법 잘 몰라. 오빠가 한 번 봐.”
영규는 골뱅이를 하나 더 입에 넣고 뽀드득뽀드득 소리가 나도록 씹었다. 수진은 영규의 어깨너머로 갤럭시를 쏘아봤다.
“수진아, 뭐가 그렇게 궁금해.”
“오빠보다 내가 언니, 서이와 말을 더 많이 나눴어. 서이는 아빠가 왜 저런지 알고 싶다고 했어. 서이 사진 볼래? 예쁘더라.”
수진은 아이폰을 꺼내 카카오톡을 켜고 사진을 띄웠다. 사진은 모델 프로필 같았다. 난민처럼 마른 몸매와 길고 쭉 뻗은 하얀 팔다리부터 눈에 띄었다. 화장은 진하지 않았지만 레드 틴트를 칠한 듯 빛나는 입술만 도드라졌다.
“몇 살이지?”
“만으로 열셋.”
“사진만 보면 고등학생 같다. 외탁했네. 형 안 닮았어.”
수진은 눈을 크게 떴다.
“설마 형이 핏줄을 의심해서 그랬겠어?”
“에이, 아니야. 그랬다면 유전자 검사부터 했겠지. 재산 전부를 위자료로 주지도 않았을 거고. 폭행도 잘못이지만 바람피워서 다른 자식 낳는 것도 큰 잘못이잖아.”
거실의 갤럭시 화면에는 배터리 아이콘이 반짝이고 있었다. 10%가량 충전된 모양이었다. 수진은 일어서서 충전 코드를 빼고 갤럭시를 영규에게 내밀었다. 영규는 녹색 배터리 아이콘을 내려다보다가 얼떨결에 큰 소리를 내고 말았다.
“비번 패턴이 안 걸려 있는데?”
수진도 움찔했다. 영규는 망자의 갤럭시를 수진의 손에서 받아들었다. 찰칵, 하고 갤럭시의 잠금이 풀렸다. 마치 고독사한 자의 방문이 열리듯이.
형 방문도 안 잠겨 있었지. 영규는 생각했다.
딱 쪽방 살림만큼 단출한 아이콘들이 나란히 배치되었다. 소셜 계정은 당연히 없었고 카카오톡도 안 깔려 있었다. 이메일을 눌렀지만 계정 자체가 없었다. 문자 목록은 비어 있었다. 통화 목록에는 영규의 전화번호가 있었지만 이름으로 저장되어 있지 않았다. 그나마 마지막 통화 기록은 일 년 전이었다. 정말 형은 이 갤럭시를 바깥세상으로 연결하는 도구로 쓰기나 한 것일까. 영규는 혹시나 하여 알람 아이콘에 손가락을 얹었다. 알람은 세 번 설정되어 있었다. 새벽 세 시 반, 네 시, 다섯 시 반. 새벽 일 나갈 때 알람으로 썼구나. 영규는 쪽방을 정리하던 때 못지않은 황량하고 비참한 파도를 느꼈다.
“알람으로만 썼네.”
수진은 갤럭시를 영규의 손에서 쥐었다.
“수진아, 아무것도 없어. 보면 마음만 더 아파.”
“알아.”
수진은 그러면서도 갤럭시를 이리저리 만졌다. 오른쪽으로 스와이프하자 사진 아이콘이 나왔다. 오른편 화면의 유일한 아이콘이었다.
“...... 영규 오빠.”
수진의 목소리가 낮았다.
“사진이 있어.”
영규는 술잔을 내려놓았다. 수진이 팔을 뻗어 영규의 시야에 갤럭시 화면을 밀어 넣었다.
“이게 누구야?”
“현주일 때 서이.”
“세상에, 그럼 열 살 전에 찍은 거란 말이잖아, 이게.”
영규는 사진을 터치해서 날짜 태그를 찾았다. 오 년 전 날짜였다.
“다른 사진도 있어?”
“없어, 이 세 장뿐이야.”
첫 번째 사진은 강렬하고 자극적인 빨간 비키니였다. 하얀 테를 두른 밀짚모자로 순화를 시도하려 한 듯했지만 하얀 살결과 비키니의 대조를 막진 못했다. 팔다리도 목도 길어서 열 살은 넘어 보였다. 두 번째 사진은 연두색 탱크톱과 하얀 미니스커트였다. 수영복이 아니었지만 옷의 면적상 큰 차이가 없어 보였다. 성가신 모자는 집어치우고 머리를 높은 포니테일로 묶었고 눈매와 입술을 화장으로 만진 흔적이 역력했다. 세 번째 사진은 비교적 의상은 평범했지만 포즈가 과감했다. 다리를 넓게 벌려 길이를 강조했고 골반 곡선이 나오도록 체중을 한쪽 발에 실었다. 꽉 끼는 검은 스커트는 가죽 소재로 허벅지 중간까지 가렸다. 등 돌린 상반신 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현장에서도 좀 과했다고 생각한 모양인지 밀짚모자로 뒤돌아보는 얼굴을 반쯤 가려주었다.
한참 만에 수진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 형은 왜 이런 사진을 아직도 갖고 있었을까......? 지금까지, 왜?”
“갖고 있었던 게 아니라...”
영규의 목소리는 아예 거칠게 잠겨 들었다.
“지우지 못한 거지. 그래서 형은 스스로에게... 죽음을 내린 거야.”
두 사람은 피로에도 불구하고 취기에서 깨어났다. 의문이 풀린 시원함 대신 끔찍한 지저분함을 느꼈다. 그때였다. 갤럭시의 알람이 울렸다. 새벽 세 시 반. 따르르르르르르릉. 따르르르르르르릉. 구형 전화기 소리가 아파트 안에 울려 퍼졌다. 둘은 그 소리가 쪽방에서 머리를 싸안고 죽어가던 망자의 비명 소리로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