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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도 시작 Aug 01. 2024

Day16_1

2023. 08. 12._제주 한 달 살기

 제주대학교병원, 한라도서관


 셋째를 낳고서 갖게 된 습관이 있다. 바로 새벽 기상. 오늘도 습관처럼 새벽 5시 반에 눈이 떠졌다. 새벽 기상 습관을 갖게 된 이유는 나만의 시간이 절실했기 때문이었다. 비장애 아이 둘과 장애 아이 하나를 돌보면서 몰입할 수 있는 내 시간을 갖기란 도통 요원해 보였고, 모두가 잠든 새벽 시간이 유일한 내 시간임을 깨닫고 난 뒤, 나는 새벽 기상을 다짐했다. 2020년 2월이 시작이었다.

 불행과 고통은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를 넓혀준다. 셋째를 낳기 전, 나는 다소 지엽적인 세상 속에서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내 글의 제목이 ‘두 개의 세상’인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 셋째를 낳고, 셋째가 장애를 갖기까지의 과정 속에서 나의 세상은 하나가 아닌 두 개가 되었고, 또 다른 의미로는 세상을 보는 눈이 깊고 넓어지는 기회가 될 수 있었다. 그 곁에 새벽 기상이 있었다. 만약 새벽 기상을 하지 않았더라면 제주 한 달 살기를 할 수 있었을까. 내 지혜와 용기의 8할은 새벽 간 속에서 꽃 피워졌다. 집이 아닌 제주에서도 변함없이 내 시간을 위한 새벽 기상을 지속했고, 셋째 수유를 하러 가기 전에 기도를 하고, 일기를 쓰며 하루를 시작했다. ‘셋째가 하루빨리 낫길 바라며, 동시에 새로운 하루를 시작할 수 있음에 감사한 마음으로...’


 

 큰 아이들이 자는 시간을 틈타 쪽지를 남겨둔 채 홀로 첫 번째 수유를 위해 부지런히 병원을 향해 달려갔다. 7시 반, 첫 수유. 다음 수유는 최소 오전 10시 반이 되어야 하는데, 숙소에 가서 아이들을 챙기고 함께 와서 기다리는 것보다 큰 아이들은 미리 챙겨둔 아침을 먹고 각자의 할 일을 하며, 나는 두 번째 수유까지 하고서 숙소로 돌아가는 것이 여러모로 효율적인 선택인 것 같았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수유 사이 동안 한라도서관에 가기로 했다. 수유를 마치고 한라 도서관에 도착한 시각은 8시 반. 9시에 도서관이 시작되는 관계로 30분 동안 한라도서관 앞에서 산책 겸 운동을 하며 분주했던 오전 시간을 뒤로하고 잠시 숨을 골랐다. 9시에 맞춰 도서관에 들어섰고, 신작 도서를 위주로 독서를 하고, 필요한 도서를 빌려 또다시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으로 가는 도중 중환자실에서 전화가 왔다. “오실 시간이 되셨는데 셋째가 잠이 들어 조금 있다가 오셔도 될 것 같아요.” “아, 그래요? 그럼 밖에서 기다릴게요. 일어나면 연락 주세요.” 그리고는 스타벅스로 발길을 돌렸다. 다행히 스타벅스에 들어서기 직전에 다시 전화가 왔고 오전 11시, 두 번째 수유를 하고, 셋째와 충분한 스킨십을 나누었다. 그난 시각은 11시 반, 바로 큰 아이들이 기다리고 있는 숙소로 돌아갔다. 이제 큰 아이들과 함께 할 시간이다. 오늘은 비교적 짧은 시간이지만 귀한 이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 함께 고민해 볼 참이다. 다행히 아이들은 보호자인 엄마가 없는 시간 동안 아침을 잘 챙겨 먹고, 각자의 할 일을 하며 안전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밖에서 볼 일을 보는 동안에도 양쪽으로 나뉜 마음에 착잡한 기분이 들기도 했지만 잘 기다려준 큰 아이들 덕분에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른다. “엄마 없는 동안 잘 기다려줘서 고마워.”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큰 아이들이 무사한 것을 확인하고, 어제 홍익돈까스에서 남겨 온 돈가스와 직접 만든 크림 파스타를 점심으로 먹었다. 나는 뒷정리를 하고, 아이들도 함께 병원을 가기 위해 준비를 서둘렀다.

 이제 다음 일정을 고민해 볼 차례다. “얘들아, 우리 다음 수유 시간까지 무엇을 하며 놀까?” 병원 주변으로 한정된 일정이기에 아이들도 선뜻 말하지 못했고, 세 번째 수유를 할 때까지 계속 고민해보기로 했다. 조금 힘들더라도 엄마가 중환자실에서 수유를 하는 동안 아이들은 밖에서 책을 읽으며 기다렸고, 보던 책을 반납하고 또 다른 책을 빌리기 위해 한라도서관을 가기로 했다. 그래도 남는 시간은 어떻게 할까. 특별한 관광지를 다녀오기에는 빠듯한 시간이었기에 우리는 가까운 카페에 가서 맛있는 음료와 디저트를 먹기로 했다. 주말이라고 별 다를 게 없는 여행지의 일상.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서로를 배려하고 힘듦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마음은 무더운 여름과 지친 일상을 버티게 해 주었다.

곧 셋째가 퇴원하리라는 기대를 가지고 더욱 힘을 내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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