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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도 시작 Aug 02. 2024

Day16_2

2023. 08. 12._제주 한 달 살기

 제주대학교병원 파인밀 베이커리 카페 한라도서관


 병원을 오가며 나름의 여행 일정을 소화하느라 무척 피곤한 상태였다. 버틸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에 셋째가 퇴원할 그날을 고대하며 힘듦보다 희망에 기대어 버티고 또 버텨보았다. 오후 2시에 병원에 도착하여 세 번째 수유를 시작했다. 큰 아이들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중환자실 앞에서 책을 보며 기다렸다. 수유 중 담당 간호사가 나에게 기쁜 소식을 전해주었다. 암암리에 월요일로 예정되어 있던 퇴원 일정이 확정되었다는 소식이었다. 오늘 반나절, 내일 하루만 버티면 온 가족이 다시 모일 수 있는 것이다. 정해진 일정 속에서 버티는 것은 얼마든지 해볼 만했다. 비록 지친 몸을 이끌고 오가는 병원일지라도 퇴원만 할 수 있다면.

 온 가족이 함께 할 그날을 떠올리며 기쁜 마음으로 다음 일정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다음 장소는 디저트와 음료를 즐길 베이커리 카페. 역시 검색을 통해 알아본 곳은 제주대학교병원과 한라도서관 중간 지점에 위치한 ‘파인밀 베이커리 카페(제주 제주시 연사 6길 61 1층)’였다. 4층으로 된 건물이었고, 멀찍이 제주 바다가 한눈에 보이는 뷰 맛집이었다. 빵 종류도 여러 가지였는데 매번 카페를 갈 때마다 느끼지만 비싼 빵값에 깜짝깜짝 놀라곤 한다. 잘 먹는 성장기 아이들을 키우기에 베이커리 카페에 올 때는 비싼 물가에 놀라지 않고 감내하겠노라 다짐하지만 번번이 실패(?)로 돌아간다. 다 큰(?) 엄마가 입을 덜 수밖에. 각자 먹고 싶은 빵 한 두 가지를 고르고, 자주 남기는 음료는 둘이서 하나를 먹을 수 있도록 주문하였다. 나는 오늘도 변함없이 아이스 아메리카노. 더운 날 이만한 게 없다. 첫째는 새로운 장소에 왔기에 정신없이 핸드폰 렌즈에 카페의 곳곳을 담아두었고, 둘째와 나는 가지고 온 책과 함께 충분한 휴식을 취했다. 우리 모두 너무나 힘들었기에 각자에게 여유로운 시간을 선사하는 일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했다. 





 과거의 시간을 회상하는 일에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는데, 나에게 가장 강력한 방법은 음악이다. 그 당시에 자주 들었던 음악은 아주 손쉽게 과거의 기억으로 나를 이끈다. 그다음은 책. 여행 중 읽었던 책은 두고두고 기억에 남는다. 셋째가 병원에 입원해 있으면서 읽었던 책은 심윤경 작가의 <나의 아름다운 할머니>였다. 1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의, 그 순간에 느꼈던 감정들이 선연히 되살아난다. 어쩐지 전경만 좋았던 카페. 바깥 날씨와 다르게 너무나 춥고 차가웠던 기억이 선명하다. 기억 속에 담길 좋은 책에 차마 재를 뿌리고 싶지 않아 더 오래 있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우리는 급히 주문한 음식을 처리하고, 한라도서관으로 향했다. 큰 아이들은 어린이 자료실에서 빌린 책을 가지고 일반 자료실로 내려와 한 곳에 자리를 잡고 책을 읽기 시작했고, 나 역시 궁금한 책 한 권을 빌려 자리를 잡았다. 내가 빌려본 책은 김민식 작가의 <내 모든 습관은 여행에서 만들어졌다>. 주말이라 더욱 북적였던 도서관 탓에 한쪽에 겨우 자리를 잡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너무나 피곤한 나머지 깜박 잠이 들고 말았다. 다음 수유를 위해 병원으로 이동해야 하건만 시간이 제법 지나버리고 만 것이다. 아뿔싸! 나와 큰 아이들은 읽던 책을 챙겨 서둘러 한라도서관을 빠져나왔다.

 


 


 5시 반으로 예정되어 있었던 네 번째 수유는 조금 늦은 5시 45분에 시작되었다. 아주 많이 늦지 않아 별 탈 없이 수유를 마치고 나올 수 있었는데, 반면 밖에서 기다리던 큰 아이들의 표정이 어쩐지 많이 좋지 않다. 어제처럼 저녁을 온전히 병원에서 보내면 너무 힘들 것 같아 내가 조금 버겁더라도 숙소에 데려다주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병원 편의점에서 내일 먹을 아침거리를 사들고 우리는 숙소로 향했다. 숙소에 도착한 시각은 저녁 7시가 조금 못 된 시간. 큰 아이들이 좋아하는 찬거리로 저녁 식사를 챙겨주고, 나는 셋째의 마지막 수유를 위해 다시 병원으로 출발했다. 

 어둡고 캄캄한 저녁을 헤치고 병원을 향해 가는 길은 어쩐지 유난히 쓸쓸했다. 큰 아이들이 없어서일까. 너무 힘든 탓이었을까. 이제 퇴원까지 단 하루를 남겨두고 있다. 힘을 내보려 했지만 누구에게도 힘든 내색 할 수 없는 상황이 오늘따라 더욱 외롭게 느껴졌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어. 조금만 힘내자.

홀로 애써 쥐어짜보는 의지조차 애잔한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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