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카소 미술관 무료로 관람하기
나는 계획 없이 여행하는 스타일이 아닌데 이번 여행은 자유로운 여행을 해보고 싶어서 최소한의 계획(예를 들어 숙소와 가야 할 큰 도시, 빠른 예약이 필요한 곳)을 제외하고는 계획을 세우지 않았다. 시간 단위로 계획할 정도로 빡빡하게 잡았던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하루 단위로는 잡았었는데 이번에는 일정 없이 내가 지금 당장 하고 싶은 것과 가고 싶은 곳 위주로 일상을 여행하다 보니 생각보다 늦게 피카소 미술관을 방문하게 되었다.
이제는 피카소 미술관에 가봐야 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던 날. 피카소 미술관 티켓을 구매하려고 사이트를 둘러보던 중 매주 목요일 오후 4시 이후로는 무료입장이 가능하다는 정보를 찾게 되었다. 그동안 티켓비로 꽤 많은 지출을 해왔던지라 좋은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고 마침 목요일에 일정이 없기 때문에 무료입장이 가능할 것 같아 피카소 미술관 방문을 하기로 했다.
목요일 당일. 무료입장 시간 맞춰 미술관 앞에 도착했는데 알고 보니 무료입장도 티켓을 홈페이지에서 예매해야 하는 것이었고 목요일 무료입장 티켓은 해당 주의 월요일에 오픈한다는 것을 도착해서 알게 되었다. 결국 이 날은 예매를 하지 못했기 때문에 미술관 방문을 할 수 없어서 다음주를 기약할 수밖에 없었다. 아쉬운 발걸음을 뒤로하고 보른 지구 구경을 하다가 돌아왔다.. 좀 제대로 알아봤으면 좋았을 텐데. 그리고 다시 목요일이 되어서야 미술관에 들어갈 수 있었다. 앞 전의 일 때문에 월요일 아침 8시부터 예약을 하려고 사이트에 들어가 보니 벌써 4시 티켓은 솔드아웃이라 5시 티켓을 예매했다.
피카소 미술관은 한국어 해설이 가능한 오디오 가이드가 있기 때문에 좀 더 몰입해서 작품을 감상할 수 있었다. 사실 나는 피카소의 작품들을 좋아하지는 않았는데 예전에 피카소의 "게르니카"라는 작품을 감명 깊게 본 경험이 있어서 그 뒤로는 피카소 전시를 찾아보는 편이다. 전시관 초입에는 피카소의 다양한 스케치들과 그의 사진을 벽에 잔뜩 붙여놓았는데 흑백의 스케치들이 인상 깊었다. 초기 작품부터 찬찬히 살펴볼 수 있도록 나뉜 전시관을 오디오 가이드에 의지하면서 둘러보았다. 기억에 남는 작품 몇 개를 소개하자면 먼저 Science and Charity라는 작품이다. 번역하면 과학과 자비라는 의미인데 피카소의 1897년 작품이라고 한다. 침대에 누워 있는 환자와 옆에 앉아 있는 의사(과학), 그리고 반대편에 서있는 수녀의 대비가 인상적이었다. 나는 저명한 예술가들의 유명한 작품보다는 휘갈겨 그린 스케치와 굉장히 사적인 그림들을 구경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이번 전시에서도 피카소가 대충 그린 스케치, 낙서, 뜻이 맞는 친구들의 초상화 등을 더 유심히 살펴보았는데 거침없는 선의 표현들이 좋았다. 나는 낙서하나 할 때도 생각이 많아 뜻대로 선이 그려지지 않았는데 그의 선들은 고민이 없어 보여서 부러웠다.
이 외에도 많은 작품들이 있다. 친구의 자살로 인한 충격으로 피카소는 영향을 많이 받았었는데, 이 사건으로 인해 피카소는 어두운 분위기의 그림을 많이 남겼다. 주로 청색과 초록색을 자주 사용했기 때문에 이 시기를 "청색시대(Blue Period)"라고 부른다고 한다. 나는 좀 어두운 그림들을 좋아해서 청색시대의 그림들이 전체적으로 맘에 들었다. 그중에서도 The blue glass라는 작품에 시선이 많이 갔다. 전체적으로 청색 배경의 그림에 꽃만 레드 컬러를 사용하여 대비되도록 강조한 작품인데 사진으로는 그 강렬함이 잘 담기지 않는 것 같아 아쉽지만 실제로 전시되어 있는 작품은 굉장히 강렬한 대비를 보여주고 있어서 몇 번이고 쳐다보게 만드는 매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가장 기대했던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을 재해석 작품. 피카소는 늘 거장들의 명작들을 탐구하며 재해석했다고 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기대했던 작품이 "시녀들"인데, 이유는 어렸을 때 감명 깊게 읽었던 소설책의 표지로 사용된 벨라스케스의 작품이라는 이유로 내게 익숙하기 때문이다. 워낙 유명한 작품이기도 하고. 해당 작품이 미술관 내에서도 하이라이트인지 다양한 버전의 "시녀들" 연작이 한 홀을 담당하고 있었다. 덕분에 나는 다양한 시도를 한 피카소의 "시녀들"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다양한 컬러, 인물의 크기, 형태 등의 마르가리타 공주 개작을 보며 그의 열정이 멋졌다. 이렇게 하나에 몰입하고 빠져들 수 있는 열정을 갖고 있다는 것이 부럽기도 했다. 끊임없이 성장을 위해 노년의 나이에도 노력하는 천재 화가의 모습을 보며 그동안 경험에만 의존하여 안일하게 디자인 작업을 한 것이 아닌지 반성하게 됐다.
+ 피카소 미술관에서 있었던 재밌는 에피소드. 어떤 외국인 여자 친구들이 사진을 찍어달라며 오면서 어느 나라 사람이냐고 물었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자기들은 터키에서 왔다고 했다. 그중 한 친구가 자기가 한국 사람 너무 좋아한다면서 K-POP과 K-드라마의 팬이라고 했다. 나이를 묻길래 말해주니 자기들은 18살이라고 언니라고 부르며 좋아하는 모습이 귀여웠다. 터키에 꼭 놀러 오라면서 호스트를 해준다는 둥, 결혼했냐는 둥 이것저것 묻다가 같이 사진 찍고 허그하고 인스타 아이디 알려주며 헤어졌는데 너무 오래 얘기해서 미술관 닫을 시간이 가까워지는 바람에 마지막에는 설렁설렁 감상을 했다. 단체로 관광 왔다고 하던데 여행 잘하고 돌아갔는지 궁금하다.
정보 전달 목적이 아닌, 일상생활에서 느낀 스쳐 지나가는 감정과 생각들을 아카이빙하는 지극히 사적이고 소소한 일상의 기록입니다. 당시에 느꼈던 모든 순간들이 시간이 지나면 바스러져 가는 것이 아쉬워서 자기만족으로 작성하는 여행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