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라면 아니고 신라면

함께 나오는 공깃밥과 김치는 사랑이다

by 탱탱볼에세이

3일 만에 단골식당에 방문했다. 며칠 못 가봤다고 한층 더 소중해진 느낌. 오늘도 사람이 많았다. 내가 안 와도 손님이 많다는 건 참 다행이다. 그만큼 이 집이 나 말고도 다른 이들에게도 충분히 사랑받는 집이라는 이야기니까.


숙소에서 식당까지는 걸어서 30분이 걸린다. 걸어가면서 오늘은 무슨 메뉴를 먹을지 고민한다. 단골식당이 있는 건 참 좋다. 식당 고민이 아니라 메뉴 고민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새로운 메뉴에 도전할 것인지. 원래 먹어본 메뉴를 또 먹을 것인지.


방비엥에 한 달 살기 하면서 알게 된 나는 생각보다 도전을 즐겨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제 먹은 메뉴를 오늘 또 먹어도 똑같이 맛있게 먹을 수 있다. 내가 아는 맛이라 더 맛있기도 하고. 한동안 죽, 샌드위치, 망고스무디 조합으로 나 혼자 탱탱볼 세트라고 여기며, 매일 똑같은 메뉴를 주문했더라.


중간쯤 걸어갈 때까지만 해도 갈비탕이 당겼는데, 신라면을 주문했다. 갈비탕은 나의 최애 메뉴다. 이름은 갈비탕인데 소고기뭇국 맛이다. 신라면은 여기서 처음 먹어보는 메뉴다. 이런 나의 심경의 변화는 길에서 시작됐다.


방비엥은 읍내가 작아서 걸어가는 길이 매번 같다. 가는 길목에 매일 아침부터 삼겹살을 굽고 계시는 분을 마주친다. 냄새부터 맛있게 생겼는데, 그동안 어디 앉아 먹을 곳이 없어서 사 먹지 못했다. 방비엥 생활이 며칠 남지 않은 오늘은 그런 고민 없이 일단 사봤다. 바나나 잎으로 삼겹살을 싸서 포장해 주시는 게 신기했다. 천연 기름종이 역할을 바나나 잎이 하는구나. 길거리에서 한 입 베어 물었는데, 간이 짭짤하니 맥주가 당기는 맛이다. 밥이라도 있으면 딱일 텐데!

단골식당은 신라면을 주문하면, 공깃밥과 김치를 같이 내어주신다. 그렇다. 나는 라면에 삼겹살에 감싸 먹는 걸 좋아한다. 아까 길에서 산 삼겹살 구이를 라면에 싸 먹을 결심으로 라면을 시켰다.

생각해 보니까 여기는 그냥 라면이 아니고 신라면을 끓여주네. 어떤 회사 라면으로 라면을 요리하냐에 따라 브랜딩이 된다. 카페 화장실에도 이솝 핸드워시가 있으면 가치가 올라가지 않나. 이 식당도 신라면이 메뉴 그 자체다. 라면에 계란까지 풀어주신다. 덕분에 처음으로 맵지 않은 신라면을 먹어봤다. 거기다 공깃밥에 김치라니요. 한국인들이 라면에 김치 싸 먹고, 국물에 밥 말아먹는 감성을 이해하시는 거다. 심지어 이 모든 것이 3만 낍(2,400원)에 제공된다.


이런 사소한 부분 하나하나가 잘되는 이유보다 망할 수 없는 이유가 된다. 여기는 답답해 죽겠을 정도로 서빙이 매우 느리다는 단점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메뉴구성이 좋아서 계속 찾아오게 만든다.


인터넷에 몇 년 전 가볼 만한 라오스 카페를 소개한 글에서 처음 보는 곳이 있길래 가봤더니 폐업했더라. 요즘은 유명한 곳보다 오랫동안 그 자리에서 계속 영업을 하는 곳이 대단해 보인다. 오늘도 남김없이 그릇을 비우며 생각했다. 그냥 라면이 아니고 신라면을 끓여주는 곳. 신라면이 메뉴명 그 자체인 이유를 잊지 말아야지. 오늘도 망하지 않는 글을 고민하며 묵묵히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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