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만났네
물집이 크게 잡혀서 많이 걸을 수 없었다. 오늘은 5km만 걸어서 바다가 아름다운 라레도에 도착했다. 내 발을 치료해 주던 클라우스 아저씨는 버스를 타라 권했다. 버스를 더 타면 순례의 의미가 퇴색될 것 같아서 조금이라도 걸었다. 내가 절뚝거리며 알베르게를 나서니 청소하시는 분이 따라와서 알베르게 뒤로 가는 길이 더 짧다고 친절하게 스페인어로 알려주셨다. 덕분에 짧은 길로 올 수 있었다. 물론 완전 찻길이라 더욱 조심해야했지만.
수녀님들이 운영하는 성당 알베르게에 묵는다. 12시에 도착해서 성당에서 2시간을 기다렸다. 가만히 시간이 될 때까지 기다리는 것도 은근히 일이더라. 그래도 하룻밤 묵을 수 있는 것이 어딘가. 숙소에 1등으로 들어왔다. 초인종을 누르면 수녀님이 문을 열어주신다. 계단을 몇 걸음 오르면 체크인을 할 수 있다. 수녀님이 스페인어밖에 할 줄 모르시지만 열심히 설명해 주신다. 순례자를 위한 미사는 저녁 7시고 내일 첫 배는 9시에 있고, 여기서 선착장까지는 5km 거리라고 한다.
도착하면 샤워부터 해야 한다. 찝찝한 심신을 씻어내기 위함이다. 그다음에 바로 빨래를 한다. 볕이 있을 때 바삭하기 말리기 위해서다. 창문 사이로 보이는 풍경이 참 아름답다. 나는 이런 한적함을 사랑한다.
메뉴 델 디아가 성당에서 삼십 걸음 떨어져서 있다고 해서 다녀왔다. 사실은 빨래가 바람에 날려서 내 옷을 주울 목적으로 밖에 나갔던 것이었다. 배고파서 즉흥적으로 향했다. 다음엔 빨래가 바람에 날아가지 않도록 빨래집게를 넉넉하게 챙겨 와야겠다.
밖에 나가면 초인종을 눌러야 문을 열어주신다. 여러 번 나가는 게 좀 눈치 보이는 구조다. 메뉴 델 디아가 디저트까지 빵빵하게 줘서 배가 단단히 불렀다. 오후 5시면 쉬는시간인데 4시가 다되서도 감사히 받아주셨다. 급하게 흡입하듯 먹었지만. 숙소에 오니 각 방마다 사람이 다 찼다. 며칠 전 본 낯익은 얼굴을 또 다시 마주한다.
여긴 2인실이라 개인공간이 상대적으로 넓다. 10유로에 2인실이라니 선물 같은 곳이다. 신기하게 빌바오는 알베르게도 아니었는데 4명 방에서 같이 머물던 1층 이탈리아 아줌마가 오늘 또 룸메더라. 이쯤 되면 인연이다. 순례길은 이렇게 의도하든 안 하든 우연한 만남이 반복된다. 미사 보기 전에 낮잠 좀 자야겠다.
추워서 저녁 6시 50분에 깼다. 추위가 미사 알람이라니. 미사 보고 은혜를 받았다. 순례를 응원하는 노래를 불러주시고 삼위일체 스티커를 순례자들에게만 선물로 주셨다. 헌금도 냈다. 동그란 과자도 받아먹었다. 그래도 어렸을 때 교회나 성당을 많이 가봐서 눈치로 이해하는 시간이었다. 2번이나 우연히 룸메이트가 된 이탈리아 아줌마랑 미사에서도 마주쳤다. 덕분에 조금더 친해졌다. 비가 온다. 내일 많이 걷긴 틀린 것 같다. 이렇게 순례길은 욕심을 비우게 만드나 보다. 천천히 내가 갈 수 있는 만큼 가야겠다.
*참고로 침대 11번 아저씨를 또 숙소에서 세번째로 만났다. 드디어 이름을 물었고, 피터라고 하신다. 서로의 이름을 아는 순례길 친구가 많이 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