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길 14일 차: 재회

반가운 한국분들

by 탱탱볼에세이

다리를 건너야 하는데 인도가 막혀서 한 정거장을 기차를 타야 했다. 숙소 앞에 바로 기차역이라 케이티랑 시간 맞춰 탔다. 케이티는 깨알 같은 물건이 많다. 기침을 하니 감기사탕을 건네주었다. 귀신같이 기침이 멈췄다.

어제 잠을 설쳐 피곤한 케이티는 몇 정거장을 더 가서 내린다고 했다. 몸의 소리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며 조금만 걷고 싱글룸에 예약을 하더라. 현명한 그녀 덕분에 나도 아픈데 너무 많이 걷기보다는 휴식을 취하는 펀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친구 따라 강남 가듯 나도 따라 내렸다. 가야 할 거리가 10km로 줄었다. 계속 걸어도 전혀 뒤따라오거나 추월하는 사람이 없더라.


누가 뒤에서 내 배낭을 슬쩍 들어 올렸다. 뒤를 돌아보니 스페인친구 환이었다. 반가운 마음에 같이 사진을 찍었다. 뭐라 뭐라고 스페인어로 열심히 말하는데 전혀 모르겠다. 다음 순례길엔 스페인어를 배워서 와야겠구나 생각했다. 마음으로 스페인어를 알아듣는 데 한계를 느꼈다.


아직도 발을 절뚝거리며 걸어서 환은 점점 멀어졌다. 혼잣말을 하며 혼자 골똘히 생각하며 초원의 언덕들을 넘었다. 오늘 머물 마을 초입에 도착하니 캠핑카가 즐비했다. 캠핑카를 보며 나도 하나 사서 편하게 여행 다니고 싶더라. 집을 싣고 다니는 어디로든 떠나는 여행 설레지 않는가.


숙소에 도착하고 이룬에서 만난 한국인 어머니들 단톡방에 소식을 전했다. 어머나 어머니들이 아직 이 마을에 계시단다. 너무 반가웠다. 한분이 무릎인대가 늘어나셔서 며칠간 여기 계셨더라. 너무 걸음이 힘겨워 보이셔서 내가 다 아팠다. 한국에서 뵙기로 하고 헤어졌는데 다시 봐서 기뻤다. 원래 오늘 다른 도시로 떠날 예정이었는데 숙소와 마을이 예뻐서 하루 더 있기로 하셨단다. 우연한 결정이 운명적으로 다시 이어주었달까.


난 운명론자다. 어차피 만날 인연은 또다시 만난다고 생각한다. 재회를 전혀 기대하지 않아서 뜻밖의 재회가 더 즐거운 하루였다. 이층 침대 2인실을 혼자 쓰고 뜨끈한 물에 샤워하고, 따뜻한 햇볕에 빨래를 말렸다. 빨래가 말리길 가만히 지켜보며 수다를 떨었다. 순례길에서 처음 가져보는 여유로운 일정이었다. 당분간 조금만 걸어서 이런 낮시간의 여유를 일부러라도 가져보려 한다. 사실 순례길 자체가 여유를 느끼려고 온 길이 아닌가. 서두를 필요가 전혀 없었다.


저녁엔 숙소 앞 수녀원 성당에서 미사도 드리고 숙소에서 밥도 먹었다. 관광지라 비싸서 숙소식사가 제일 합리적이다. 와인 한 병을 줘서 세 잔이나 마셨다. 술을 즐기지 않지만 와인이 포함된 식사일 땐 꼭 와인을 마신다. 순례길에서 먹는 와인은 뭔가 좀 특별하다. 힘들게 걷고 마시는 거라 축배의 의미도 있고 스페인 와인이 참 맛있다.


어머니들이 약도 챙겨주시고 밥도 챙겨주시고 빨래집게도 챙겨주셔서 감사하고 든든했다. 순례길이 더 즐거운 이유는 이런 뜻밖의 재회가 아닐까. 벌써 지난 며칠간의 순례길을 같이 추억하며 그땐 그랬지라고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동지들이 있어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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