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길 19일 차: 엄마와 아들 사이에 끼다

성당 방바닥 동지

by 탱탱볼에세이

어젯밤 성당 바닥에서 잠들었다. 그럼에도 즐거웠던 건 같이 자는 동지들과 봉사자가 가져다주신 담요 덕분이다. 분명 바람막이만 덮고 잤다면 감기 걸렸을 듯. 계속 성당 종소리와 소들이 풀 먹을 때마다 나는 종소리 때문에 잠이 계속 깼다. 집의 소중함을 깨달은 밤이었다.


아들인 이타가 어젯밤에 오늘 숙소를 예약해 줘서 자연스레 엄마와 아들 사이에 끼어서 걷게 됐다. 이타가 바게트에 하몽에 치즈까지 끼워서 아침식사로 먹으라고 건네주었다. 나도 이렇게 미리 준비해서 다녀야겠다, 엄마인 크리스티나랑 걷는 템포가 똑같아서 아주 좋았다. 심지어는 화장실 가는 타이밍도 비슷했다.


아침에 걷는데 큰 도시까지 10km를 걸었다. 비도 부슬부슬 오는데 야속하게 아무것도 없더라. 화장실 가고 싶다는 마음을 가득 품고 발걸음을 옮겼다. 순례길은 이렇게 여러모로 내 한계를 시험한다.


바다를 낀 큰 도시를 만나 화장실을 무사히 해결했다. 거기다 커피 한 잔 마시니 살 것 같더라. 더 잘 걷기 위해 바지를 갈아입었다. 긴 바지의 허리사이즈가 좀 큰 지 계속 내려간다. 고무줄로 허리를 조절할 수 있는 반바지를 입었다.


어제 너무 무리해서 걸었는지 잠을 잘 못 잤는지 발걸음이 무겁더라. 그래도 템포 맞는 엄마와 아들과 걸으니 즐길 수 있었다. 중간에 물 뜨는 데가 보이길래 멈춰서 바게트에 초콜릿 넣어먹었다. 누텔라 초코잼 발라먹는 효과가 났다. 이타가 사과도 반쪽 나눠줘서 완전히 충전했다.


오르막도 많고 내리막도 많아서 오르막일 땐 내리막을 바라고 내리막일 땐 오르막을 바랐다. 그래도 항상 이 고개를 넘어가면 뭔가가 있겠지 기대감에 계속 걷게 된다. 무사히 중간중간 고비들에서 쉬었다.


엄마 크리스티나는 깔창을 2개 가져와서 뜨거워진 오전 깔창을 쾌적한 깔창으로 오후에 바꾸더라. 물집도 비슷하게 많이 나서 양털실로 감싸서 물집부위에 쿠션역할로 넣더라. 이렇게 순례자의 지혜를 하나씩 배운다.


무사히 오늘의 숙소에 도착했다. 시간은 오후 다섯 시 반. 쾌적한 샤워부스에서 따뜻한 물로 샤워하니 살 것 같았다. 하루 못 씻었다고 내 몸에서 식초냄새가 나니 못 견디겠더라. 하루 노숙해 봤는데 이건 진짜 못할 일이다.


어제 못 말린 빨래까지 다시 열심히 손으로 빨아서 다시 널었다. 널어놓은 빨래가 마를 기대를 안 했는데 역시나 하나도 안 말랐다. 숙소 주인아주머니가 아예 빨래건조대를 따뜻한 실내로 넣어주시더라. 옷걸이도 가지고 다니냐고 대단하다고 칭찬해 주셔서 뿌듯했다. 이런 사려 깊은 친절함을 느끼면 나도 누군가에게 친절한 사람이 되고 싶어 진다. 미리 상대방의 상황을 헤아려야만 나오는 배려심을 배웠다.


따뜻한 집에서 뜨끈한 콩죽과 상큼한 샐러드, 풍족한 와인까지. 일상의 소중함을 담뿍 느낀다. 내일도 길에서 자지 않도록 엄마와 아들을 따라가기로 했다. 같이 힘내서 걷고 힘들 때 같이 쉴 수 있는 템포 맞는 사이를 만나서 너무 기쁘다.


이타는 한글을 유튜브보고 2년 전에 배웠다던데 아직도 한글을 잘 읽는다. 대화할수록 한국문화는 나보다 더 빠삭한 건 확실한 것 같고. kpop 음반도 일본에서 꽤 많이 구했더라. 한국문화를 진심으로 좋아하는 스페인 청년을 만나니 가슴이 웅장해진다. 다음 kpop 음반은 내가 구해주겠다고 말만 하라 그랬다.


2층침대의 2층에서 자지만 그래도 침대가 있는 것에 감사하는 밤이다. 따뜻한 담요까지 있어서 꿀잠을 잘 것 같다. 내일은 아침식사도 먹을 수 있다. 여기도 기부제다. 내가 받은 환대만큼 지불하기엔 항상 부족하지만 성심성의껏 내야지. 순례길에서 느낄 수 있는, 감히 계산할 수도 없는 사람의 따뜻함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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