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심윤수 Oct 27. 2024

죽음을 소망하다

이 풍진 세상을 만났으니, 너의 희망이 무엇이냐.

부귀와 영화를 누렸으면 희망이 족할까

푸른 하늘 밝은 달아래 곰곰이 생각하니

세상만사가 춘몽 중에 또다시 꿈같구나

부귀와 영화를 누릴지라도 봄동산 위에 꿈과 같고

백 년 장수를 할지라도 아침에 안개구나

담소화락에 엄벙덤벙 주색잡기에 침몰하여

세상만사를 잊었으니 희망이 족할까

희망이 족할까

희망가 -명국환-

 

아주 어렸을 때 들었던 이 노래의 첫 소절은 구슬프게 늘 기억에 남아 있다. 본래 찬송가였으나 일제강점기에 희망가라는 제목으로 우리말로 바꾸어 불리었다.

요즘 노년의 삶을 사는 사람들의 마음에 빗대어 이 노래를 다시금 생각해 보니 70년 세월, 80년 세월이 일장춘몽처럼 느껴지기도 할 것이다.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노년의 삶은 또 얼마나 안갯속 같은가.  

노년의 삶을 사는 노인들에게 희망은 무엇일까. 그들에게 희망은 있을까.

인간은 닥치지 않은 하루하루를 희망하며 살아간다. 오늘의 절망 속에서도 내일의 희망에 기대고 꿈꾸지 않는다면 인간은 계속 살아가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노인의 삶에서 내일의 희망은 도대체 무엇일까.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힘은 무엇일까. 친정엄마와 함께 살면서 늘 생각하는 것이다. 이 질문이 내가 노인의 삶과 죽음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이기도 하다.

연이은 폭염으로 더위에 지친 엄마와 함께 콩국수를 시켜 먹는 중에 엄마가 불쑥 이야기를 꺼냈다.

"나는 우리 엄마나 할아버지처럼 죽고 싶어."

"외할머니랑 증조 외할아버지요? 어떻게 돌아가셨는데요?" 엄마와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아직은 낯설고 두렵다. 죽음을 너무 걱정하는 듯한 태도도 너무 관심 없는 듯한 것도 자연스럽디 않다. 그 중간 어디쯤의 말투로 심드렁하게 물었다.

"그때가 내가 아홉 살 땐가.. 그랬는데 엄마가 시제사 모시고는 금순아 엄마가 오늘은 너무 힘들다. 네가 뒷정리 좀 해라.라고 해서 종그래미 마냥 "네~" 하고 정지(부엌) 정리하고 나니까 어둑어둑해지는 거야. 엄마가 너무 오래 잔다고 생각해서 엄마한테 가서 '엄마, 왜 이렇게 오래 자요. 일어나. 일어나.'라고 했는데 엄마가 죽어버렸더라고."

"외증조 할아버지는요?"

"우리 할아버지는 우리 장군이 처럼 큰 노란 고양이를 키우셨는데 꼭 당신 밥을 남겨서 고양이한테 주셨지. 그럼 그 고양이가 그 밥을 받아먹고 할아버지 팔을 베고 자고 그랬어. 어느 날 아침에 할아버지가 늦잠을 주무셔서 엄마가 '금순아, 가서 할아버지 깨워라. 오늘따라 늦잠을 주무시네.'라고 해서 할아버지 방문을 열어봤어. 할아버지 팔을 베고 고양이도 누워 자고 있더라고. 그래서 할아버지한테 가서 '할아버지, 일어나세요. 엄마가 일어나시래요.' 하고 흔들었는데도 안 일어나시는 거야. 보니까 돌아가셨더라고. 근데 참 신기한 게 고양이도 같이 죽었시야. 참 신기하지. 밥 주는 할아버지라고 할아버지 옆에 누워서 같이 죽었더라고. 난 우리 엄마랑 할아버지처럼 잠자듯이 조용히 가고 싶어. 그게 소원이야. "

난 우리 엄마랑 할아버지처럼 잠자듯이 조용히 가고 싶어. 그게 소원이야.

하루의 일상을 마무리하고 침대에 누워 엄마가 희망하는 것은 '내일 아침에 눈을 뜨지 않는 것'이다. 그냥 자는 듯이 고통스럽지 않고 깨끗하게 삶을 마감하고 싶은 것.  

매일매일 죽음을 희망하는 삶.

그것이 노인의 삶이고 희망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