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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없던 어느 밤에

가을, 유경, 균, 봄

by 작은꽃
그날 밤, 두 사람은 잠을 이루지 못했다. 하원은 침대에서 이불을 걷어차다가 주먹으로 베개를 사정없이 때리다가 다시 얼굴을 파묻었다. 유경은 자꾸만 더워지는 공기에 일어났다 누웠다를 반복하며 손부채질을 해 대야 했다. 그렇게 따뜻하고 보드라운 밤이 깊어지고 있었다. 186쪽

이야기가 전반적으로 약간 어두운 분위기인데 유일하게 웃겼던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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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꽃님작가의 책은 재미가 보장된다는 믿음이 있다. 역시! 재미있어서 금방 읽었다. 학교 도서관에 새 책이 들어왔는데 이 책도 그중 하나다. 5, 6학년 아이들이 이 책을 신청하고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주말 동안 얼른 읽고 돌려줘야 했다. 금요일 오후에 빌려서 일요일에 오전에 다 읽었다.


이꽃님작가의 책을 많이 읽지는 않았지만 그동안 읽었던 책 모두 휘리릭 읽어버렸다. <죽이고 싶은 아이>, <당연하게도 나는 너를>. 반전이 있거나, 범인 찾는 소설을 좋아하는데 이 책들은 두 가지 요소를 다 가지고 있었다.


잘못을 저지른 자에게 서사를 부여하거나, 돈 '밝히는'는 사람을 나쁜 사람처럼 묘사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데 위 두 소설은 내가 별로 동의하지 않는 위 두 조건을 가지고 있다.


나쁜 놈은 나쁜 놈이다. 그냥 나쁜 놈들이 있다. '돈만' 밝히는 것은 문제가 있겠지만 돈은 생존수단이라 밝히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이 너무 재미있어서 읽게 된다. 줄거리 자체도 신선하고 흥미롭지만 문장이 흡입력 있다고 해야 하나. 감정과 분위기를 비유적으로 묘사하는 문장이 머릿속에서 해당 장면을 그대로 떠올리게 만든다.


이 책 바로 전에 어떤 청소년 소설을 읽다 말았다. 무슨 대상 받고 여기저기에서 추천한다는 책이었다. 결말이 뻔하고 시간이 아까워서 읽다 말았다. 웬만하면 시작한 책은 끝내는 편인데 시시해서 못 읽겠더라. 청소년의 나와 성인이 된 내가 만나고 나중에는 '어, 그 아이는 어디 갔지?' '뭔 소리야! 이제까지 너 혼자 있었는데!' 결국 이렇게 된다는 내용이었다. 왜 이렇게 재미가 없지? 소설이 재미없기가 힘든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줄거리도 예측 가능할 뿐 아니라 감정과 배경의 묘사가 없거나 단순해서였던 것 같다.


이꽃님작가와 이금이작가의 소설(유진과 유진)은 사람과 분위기, 감정의 묘사를 매우 섬세하게 표현했다. 그것은 독자가 공감하며 이야기에 빠져들게 한다. 예전에는 묘사 표현은(여전히 묘사가 길면 지루하긴 하지만) 대충 읽고 넘어갔다. 이제는 그것이 작가에게 얼마나 쓰기 어려운 것이고, 독자에게는 몰입을 위해 얼마나 필요한 것인지 깨닫게 되었다.


*스포주의

아주 간단하게 말하자면 이 책의 줄거리는 이렇다. 아동학대로 죽은 친구 봄이를 잊지 못하고 가슴에 아프게 묻고 살았던 가을, 유경, 균의 이야기다. 결국 봄이를 떠나보내고 덜 아프게 기억하게 되는 것을 암시하며 이야기는 끝난다. 그 과정에서 사람들의 욕심, 이기심, 가족의 갈등이 드러나고 풀리기도 한다.


요즘 청소년 소설을 읽으면서 지금 중고등학생 아이들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해 보려 시도하게 된다. 나도 그때 그랬던가? 그랬던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지금 아이들은 무슨 생각을 하며 살까? 생각이 없어 보이는데 생각이 있나 보다. 나는 어땠지? 우리 집 첫째(땡글이)는 무슨 생각을 할까? 땡글이도 이렇게 마음이 아플까? 괴로울까?


사실 나는 소설 속의 청소년보다는 어른의 입장에 더 공감하는 편이다. 9살 때 죽은 친구 때문에 이렇게까지 된다고? 이렇게까지 한다고? 솔직히 공감이 잘 안 된다. 하지만 이건 소설이니까 그럴 수도 있지. 입장을 대입해 보고 상상해 본다. 누구나 각자의 자리에서 느끼는 것이 다를 테니 그럴 수 있다고 마음을 넓혀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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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모든 밤에 봄은 혼자였을 터였다. 부모라는 이름으로 아홉 살 작은 아이에게 매질을 해 대던 사람들 말고는 아무도 없이. 191쪽


사과는 이기적인 행동이었다. 용서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사람도 사과를 받으면 꼭 용서해야 할 것만 같아지니까. 하지만 이기적일지언정 엄마는 아들이 자신의 사과를 진정으로 받아 줄 때까지 하고 또 할 생각이었다. 그거면 됐다. 아이는 어너제나 부모를 용서하곤 하니까. 213쪽



... 금방 들어올 열아홉 살짜리 애 하나 때문에 온 동네를 들쑤신다고. 사춘기니 뭐니, 한창 그럴 때 아니냐고. '그럴 때'라는 말로 흔들리는 이들의 어지러움을 흔한 방황으로 만들고, '그럴 때'라는 말로 고단한 마음을 무시하면서. 109쪽


"나도 그런 줄 알았어요. 우리 유경이는 별 탈 없이 크고 있구나. 우리 유경이만 괜찮으면 되지. 그러면서."....."근데 아니더라고요. 유경이가 그러데요. 자기도 아팠다고. 봄이 그렇게 죽고 모른 척 사는 게 힘들었대요. 나는 내 딸이 그렇게 아픈 줄도 모르고, 가슴이 썩어 문드러졌는지도 모르고...... 우리 딸은 잘 산다고 확신했어요." 19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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