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원 Sep 11. 2024

적당히 좀 하자.

한국인의 안 좋은 성향에는 뭐가 있을까. 거리의 노숙자도 상대를 학력과 재력으로 폄하하는 데 진심인 나라가  우리나라일 것이다. 예전에 미국에 있는 작은 교회에 놀러 간 적이 있다. 한 교회에서 할아버지가 수첩을 들고 다니며 젊은 친구들에게 나이와 대학을 물어봤다. 사람들을 계급 지으며 홀로 1984 놀이를 하고 있는 할아버지는 꿋꿋하게 펜에 침을 묻혀가며 젊은이들의 대학이름을 적었다. 사람들의 당황스러움과 수치감을 먹으며 세월을 보내서인지 나이에 비해 정정한 기분이 들었다. 아무튼 그 수첩에 맺힌 모나미 팬 똥의 크기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이모들 중 한 명은 만나면 언제나 자기 자식 자랑이다. 다양한 주제로 이야기를 시작해도 자식 자랑으로 끝난다. 아직 회계사자격증 공부를 하고 있는 셋째는 상대적으로 이름이 적게 언급된다. 내 얼굴을 보면 어디 어디에 보톡스를 맞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이모는 보톡스가 군데군데 뭉쳐서 얼굴이 항상 부담스럽게 부어있다. 이모도 젊었을 때 예뻤는데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모르겠다.


지식산업 쪽에서 일하지 않는 어떤 분이 영어강사가 왜 됐냐. 이제 쳇 GPT가 알아서 해 주는데라고 내 얼굴을 빤히 보면서 물어본다. 그러기엔 영어동호회엔 영어회화가 절실히 필요하여 온 실무자들로 북적인다. 쳇 GPT가 아직 문법 설명은 못 해주고 있을뿐더러 AI가 화상회의나 비즈니스 업무에 즉각적으로 대응해 줄 수는 없으니까. 그런데 그 정도로 발전되면 이분의 일자리가 그전에 사라지지 않을까 싶다.


나를 위해 열심히 온몸을 들썩이며 무언가 만들면서도 들썩이는 몸이 무안한 지 가만히 있는 내 능력을 낮추려고 일쑤다. 스레드에서 보니 의사, 변호사도 요새 널린 게 변호사 의사라고 폄하받는 마당에 선생님 타이틀은 여기저기서 난도질당하기 쉬운 것 같다. 어느 집단에 가든 썩은 하수도 냄새가 한 번씩 훅 올라온다.


영어동호회에 처음 나갔을 때 한 분은 나에게 왜 미술강사에서 영어로 바꿨는지 물었다. 그 뒤로 두어 번 더 물어봤다. 그때마다 나는 그냥이라고 대답했다. 누군가의 호기심을 채워줄 정도로 내 인생은 가볍지 않아 질문자의 가치만큼 대충 대답해 줬다. 그러자 얘들이 떠들어서 그런 거냐고 혼자 킥킥댔다. 지금은 어떤 계기로  이 사람에게 감사함을 느낀다. 예전에 나쁜 면 몇 개를 보고 쉽게 등을 돌렸는데 이제는 장점이 더 크면 나쁜 점은 눈감아줄 정도로 여유가 생겼다.


누군가 돈 걱정 없으시겠네요?라고 물어도 여유가 없으신가 봐요?라고 되받아 칠정도로 순발력도 생겼다. 이 지뢰밭에 살아남아 자존감을 지키기 위해선 순발력이 필수다.


곳곳에 숨 쉬는 미국교회 할아버지, 나의 넷째 이모, 00 가게 사장님, 00젊꼰들이 교화되는 그날까지 치얼스.





매거진의 이전글 혼자여도 괜찮을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