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있음
[작가]
필립 K. 딕
[장르]
디스토피아
[셀링포인트]
스스로도 정체를 확신할 수 없는 불안감
플롯은 심플하다. 주인공이 의뢰받은 안드로이드를 잡으러 다니는 구조다. 단, 작품을 끝까지 긴장하고 보게 만드는 설정이 하나 있다. 이 세계에서 누가 진짜 안드로이드이고 사람인지 확신할 수 없다는 점이다. 더 정확히 말해, 정체가 계속 뒤바뀐다.
독자가 사람이라고 철석같이 믿었던 주인공이 경찰서에 잡혀가 안드로이드라는 말을 들었을 때 그 정점을 찍었다. 결론적으로 그것도 속임수였다. 해당 경찰서와 직원들이 모두 자기들만의 세상에 갇힌 안드로이드라는 점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내 눈 앞의 이 녀석, 혹은 나 자신까지, 진짜라고 믿을 수 있는가. 끝까지 긴장을 놓을 수 없는 설정을 잘 갖춘 셈이다. 그 점에선 영화 <인비저블 게스트>와 비슷하다.
주인공과 협업하던 경찰 필 레시 역시 안드로이드로 오해받지만 결국 인간임이 밝혀진다. 이 캐릭터가 특히 매력적이었다.
내가 안드로이드로 판정되면 내게 그 사실을 말해줄 건가?
꼭 알고 싶어서 그래. 난 알아야만 해.
레이첼보다도 필 레시를 볼 때 더 짠한 마음이 들었다. 침착함 속에 억누른 절박함을 보았기 때문이다. 평생 동안 믿어왔던 가치가 틀렸다는 걸 받아들여야 하는 인물은 짠하다. 특히 그토록 증오하며 죽여왔던 안드로이드가 바로 자신이었다니. 그러면서도 그는 끝까지 자신의 할 일을 했다.
인간과 안드로이드의 확실한 경계를 통해 드러난 인간성
흔히 인공지능이 나오는 작품은 디즈니 <피노키오>와 비슷하다. 기계로 만들어졌을 뿐, 인간과 다를 바가 없다. 사랑, 배려, 희생 등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가치를 보여준다. 그러나 기계라는 이유로 온갖 모독과 핍박에 시달린다. 독자는 점차 ‘인간’적이라는 개념에 의구심을 갖게 된다. 인공지능을 통해 오히려 인간의 이기심을 조명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작품은 인간과 안드로이드 로봇 간의 선을 확실하게 그은 점이 새로웠다. 인공지능은 입력된 정보에 따라 판단하는 기계지, 성자가 아니다. 잠깐은 인간과 마음이 통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어도 결국은 기계다. 그 점이 명확해서 더 여운이 남는다. 덕분에 인간임을 증명하는 기준이 '감정이입'이라는 것을 확실히 짚고 넘어 갈 수 있었다. 이렇게 경계와 규칙이 잘 설정되어 있을수록 인간에 대한 성찰도 더 빛을 발할 수 있다.
고전적 종류의 체념이랄까. 기계적이고 이성적으로 운명을 받아들이는 것.
20억 년 동안 진화라는 압박을 받아온 진정한 유기체로서는
결코 할 수 없는 종류의 체념이었다.
마지막까지 아파트에 몸을 숨긴 안드로이드들은 자신들이 인간과 다를 바가 없다는 듯 말하지만 아무렇지 않게 거미 다리를 자른다. 반면 '특수자'이지만 여전히 인간인 이지도어는 그 광경을 보고 정신을 차리지 못할 정도로 패닉 한다. 안드로이드 레이첼은 결국 흑염소를 밀어 죽였지만, 주인공은 전기 두꺼비를 살려둔다. 인간이기 때문에 감정이입을 통해 안드로이드의 삶도 동정하게 된 것이다. 안드로이드는 근본적으로 인간에 공감할 수 없다.
머서가 닭대가리 이지도어에게 주었던 거미, 그것도 아마 가짜였을 거야. 하지만 그게 중요한 건 아니지. 전기 동물들에게도 그들만의 삶이 있는 거니까. 그 삶이 아무리 빈약한 것이라 해도.
흥미롭게도 영화 <블레이드 러너>에서는 완전히 다르게 설정을 했다. 레이첼이 인간을 흉내 내며 릭 데커드를 꾀는 것이 아니라 진짜 사랑의 감정을 느낄 수 있다. 또 로이는 자신을 죽이려는 릭의 생명을 구하고자 희생하기도 한다. 책이 안드로이드의 삶에도 의미를 부여하게 된 주인공의 모습을 통해 공감하는 능력을 잃지 말자고 말했다면, 영화는 감정이 생긴 안드로이드를 보여주며 같은 주제를 전달했다.
Do Androids Dream of Electric Sheep?
제목이 워낙 특이해서 자꾸 머리에 남는다. 사실 의미는 잘 모르겠다. 잘 때 꾸는 꿈인지, 이상향의 꿈인지, 그리고 어느 쪽이든 안드로이드가 전기양을 꿈 꿀지도. 개인적인 해석으로 보자면 전기양이 되기를 원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안드로이드는 인간과 비슷하게 사고할 수 있지만 감정적으로 인간을 이해할 수는 없기 때문에 괴롭다. 그 괴로움이 사고하는 즐거움을 뛰어넘은 것일까. 어떤 사람들은 다음 생엔 아무 생각도, 행동도 하지 않아도 되는 돌로 태어나고 싶다고 하기도 하니까. 안드로이드 역시 인간이 되지 못한다면 차라리 괴롭힘 받지 않고 마음 편하게 존재하기만 해도 되는 전기양을 꿈꾸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