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기 드문 소년의 눈을 가진 중년남자
아주 보기 드물게 소년의 눈을 가진 중년 남성을 발견할 때가 있다. 안타깝게도 주변에서 그렇다고 생각한 분을 본 적은 최근 몇 년간 없었다. (정말각 잡고 진지하게 5분 정도 생각해봤다. 정말 눈을 씻고찾아봐도 없다.) 그만큼 내 주변환경은(특히나 직장 업무환경이) 멋있게 잘 늙은 중년남성을 찾아보기 힘들게 설계되어 있다. 어쩌면이건 한국사회의 슬픈 현실이다. 그 꿈 많고 열정넘치는 소년들을 다 어디로 갔을까. 왜 잘들 나이 들지 못하는 걸까.
중년남성이 가진 소년의 눈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설명하기는 좀 애매하다. 분명한 것은 눈빛에 “새파랗게 어린 니들이 뭘아니. 내가 다 겪어봐서 알아.”라고 말하는 꼰대 같은 꼬장꼬장함은 없어야한다. 나이 몇 살 더 먹었다고 해서 말이 바로 짧아짐과 동시에 '형님' 대접받으려고 해도 안 된다. 담배나 술에 절어 피곤함이 잔뜩 배어초점이 없이 흐릿하거나 실핏줄이 터져서도 안 되는 것은 두말하면 입 아프다. (그래서 흰자위가 깨끗할필요는 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세상사 유혹에 조금은 초연함이 있어야 한다. 예를 들자면, 길거리에 시선을 사로잡는 쭉쭉빵빵한 여자가 지나가더라도희번덕거리면서 대놓고 쳐다보는 그런 좀 모양 빠지는 시선은 삼가야 한다.(이미 오랜 시간 충분히 봤던경험에서 나오는 내공 같은 것)
세상 모든 소년들이 그렇지는 않을 거라 미리 못 박아 둔다. 하지만 ‘소년의 눈’에서의미하는 소년은 세상사에 예민하고, 공감하고, 슬프면 울고, 기쁘면 웃는 사람.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말할 줄 아는 정직함과모르는 것을 알고 싶어하는 호기심, 열정 같은 게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생명체다. 섣불리 판단하거나 함부로 목소리를 높이지 않는다. 군대에서 별에별 인간군상을 겪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온갖 잡스러운 세상사에 시달리고, 대출금을 갚느라 처자식을 먹여 살리느라 힘들었을 것이다. 그럼에도불구하고 그 ‘소년성’을 반백년동안 오랫동안 유지하고 있는사람들을 보면 한 인간의 ‘소년성’은 쉽게 사라지는 것이 아니란 생각도 든다.
그래서 이 희박한 ‘소년의 눈’을 한 중년 남성을 보면 참 신기하다. 이 척박하고 살기 어려운 한국문화 속에서 저런 눈을 유지할 수 있었다니. 한인간이 살아온 모습에 호기심이 생긴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한 궁금증은 그들의 ‘아내’에 대한 관심으로이어진다. 저런 소년의 눈을 한 사람들은 어떤 여자와 살고 있을까. 대부분 그들의 아내들은 그 자신만큼이나 ‘소년’같은 여자들이었던 걸로 기억이 된다. 누구누구의 아내가 아닌 동등한 인격체로, 생활인으로, 파트너로 독립적인 자신만의 인생을 살아가는 여자들 말이다.
“남자는 여자 하기 나름이에요”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저 반 백살이 되든, 흰머리가 성성하고, 눈가에 주름이 자글거리더라도 ‘소년성’을 갖출 남자를 만났으면 좋겠다. 호기심, 열정이 살아있고 여전히 움직이고 배우는 그런 소년들은 결국 그런 남자, 아버지, 남편이 될 것이다. 내가 정말 ‘소년’같은 여성이라는 것을 어필하는글은 아니다.
(사족) 스웨덴 박사 J랑 이상적인 남성상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 떠오른 생각을 글로 풀었다. 친구들이랑얘기 하다보면 쓰고 싶은 글 주제를 찾게 된다. 우선 소년의 눈을 가진 중년남성이라면, 유시민, 손석희, 배철수, 유희열 정도가 있는 것 같아.(지극히 주관적인 선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