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과 집중이 필요한 시점
살면서 주변에서 참 다양한 사람들을 많이 보게 된다. 그만큼 삶이 다채로워 진건지 아니면 어렸을 때 미처 알지 못한 그 ‘다양함’이 단순히 ‘다름’이 아닌 이질감 또는 불편함으로 다가온 건지 판단이 잘 서진 않는다. 나의 경우엔 대체적으로 후자인 것 같다. 나이가 들면서 어쩌면 사소한 것들에 조차 예민해진 탓일지도 모르겠다. 그 사소한 것들이 사실은 그리 사소한 것이 아니었다는 경험론적 교훈을 믿기 때문인 걸까. 무엇이 잘 맞고 잘 맞지 않는지를 정말 몇 초안에 본능적으로 캐치할 수 있게 되었으니 한편 다행이기도 하고. 더 이상 우유부단하게 시간낭비를 하지 않아서 좋은 점도 있다. 선택이 쉬워졌고, 그에 따라 포기도 빨라졌다. 마음보다는 머리로 판단하기 때문일지도 모르지만.
나이 먹어감에 따라 관계에 쉽게 피곤함을 느끼게 된다. 어떤 관계는 ‘심플하게’ 살기를 추구하는 내 인생방향과는 전혀 다른 전개로 이어지기도 한다. 한 때는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 삶을 공유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웃고... 그렇게 함께 모여 무언가를 하는 공동생활을 미덕이라 여기고 맹목적으로 살아왔었다. 지금은 빈틈없이 꽉차있는 관계들에 가끔은 목을 죄는 것 같은 숨막힘을 느낀다. 관계의 양적확대가 과연 맞는가. 이건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각자가 편한대로 선택해서 살면 되는 것 같다.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내가 깨달은 것은 나와 맞는 사람들과의 내밀한 관계형성이 결국 인생을 다채롭게 하는 방법이란 거다. 더 많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난다고 해서 삶이 영글어지지 않는다. 누군가가 바라는 모습대로 살아가다보면 결국 그걸 내가 살고 싶은 모습, 원래의 내 모습으로 착각하게 된다. 중심을 잃고 흔들린다. 혼동이 오는 거다.
지금이라도 내가 맞다 여기는 대로, 그걸 공감하고 지지해줄 수 있는 내 자신 및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며 살아야겠다. 쓴소리도 마다하지 않는 그런 친구들과 가족들. 그 사람들이 결국에 나를 버티게 하는 힘일지도 모르니.혹시나 해서 지지난달 부터는 신앙생활을 시작했다.(이번만큼은 시작으로 끝나질 않길...) 나부터도 그럭저럭 살아온 행태에 합리화란 포장지를 근사하게 싸는 행동은 좀 안하고 싶다. 이 글이 몇 년간 소통욕구가 억눌린 채 살았던 나머지 마치 스무 살 때 싸이월드 시절처럼 SNS 중독이 되었던 스스로에 대한 질타라고 해도 좋을까. 아니면 스마트한 세상과 단절될 1박 2일 회사교육에 앞서 스스로 잘해보잔 혼잣말 정도로 생각해도 좋겠다. 그도 아니면 가족이랑 밥 한끼 할 시간도 못(안) 내면서, 실속 없이 싸돌아다녔던 지난 몇 개월에 대한 반성문이라고 해도 그럴싸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