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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랭보 Jun 08. 2018

내 안의 판관포청천

인생에 개작두가 필요한 순간이 있다

어릴 때 보았던 외화 중 유난히 기억에 남는 드라마가 있다. 아마도 주말 늦은 밤 무렵에 방송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개작두를 대령하라!”

쩌렁쩌렁한 목소리와 함께 미간 반달모양의 문신이 일그러지면, (그게 타투가 맞던가? 시대를 앞서간 포청천) 카메라는 포청천의 얼굴을 빠르게 클로즈업 한다. 그리고는 그 앞에 어김없이 위엄이 넘쳐흐르는 동물모양의 작두가 등장한다. 번쩍번쩍. 작두가 주는 위협에 부들부들 떠는 ‘악인’을 보면서 생각했다.

‘휴. 저래서 올바르지 못한 짓을 하면 안되는구나.’라고. 우리 엄마의 빅피쳐였다. 그래서 보게 해줬구나.


문득 나는 마음 속에 판관포청천과 개작두를 품고 사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나 뿐 아니라 꽤 다수는 그럴 것이다. ‘자기검열’이라 부르는 그것말이다.


"그게 옳다고 생각하는거야?"

"맏이가 그렇게 행동하면 되겠어?

“옳고 그름을 판단할 줄 알아야지."


옳고, 그른게 무엇인지 판단하기 어려운, 어쩌면 저 말의 뜻조차 알지 못한 때부터 나는 무엇이 옳고, 어떤 것이 옳지 않은지 결정하는 것을 우선했다. 그게 태도와 행동을 결정짓는 첫번 째 관문이라고 여겼던 것 같다. 그런 습관은 오랜 시간이 흐르자 직관적으로 행동하는 것으로 바뀌게 되었다. 내가 그래야만 하거나, 그래도 되는 삶의 분야에 한한다.


나이가 들어 세월이 흐르고 미천하나마 경험이 쌓일수록 ‘맏이’대신 여러가지 역할(role)이 대입된다.딸, 언니, 누나, 친구, 중학생, 고등학생, 새내기, 취준생, 여자친구, 시험준비생, 신입사원, 대리 등등. 주요한 정체성(identity)은 보통 하루 24시간 중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그 역할을 수행하는데 쏟느냐에 따라 결정되기가 쉽다. 그 에너지는 대체적으로 절대적 시간의 양이 될수도 있지만 반드시 양적시간의 투자만을 의미하진 않는다.


“xx이라면 응당 이러저러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타인으로부터 혹은 내 내면으로부터 이런 목소리와 마주하는 순간이 있다. 스스로의 가치관을 만드는데 상당한 ‘순기능’을 했었던 자기검열이 타인을 향한 검열로 퍼질 때 문제는 발생한다. 불편하고 거슬리는 느낌이 커지면 자꾸만 포청천이 개작두를 불러댄다. 작두 한 번씩 부르는게 보기엔 멋있어도 여간 에너지 소모가 심한게 아닌데...


xx답게 살고 있습니까?


이 질문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그리고 각자가 처한 상황과 삶의 맥락(context), 가치관, 우선순위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음을 받아들이자.


질문에 대한 답을 각자가 만들어야 하는 것 같다.

세상 모든 이가 같을 수 없거니와, 만약 그렇다면 생각만으로도 조금 소름끼치는 일이다. 온통 카피캣(copycat)이 떠다니는 세상이긴 하지만. 가치관 만큼은 이 세상 어디에도 완벽하게 일치하는 존재는 없다고 본다. 그저 비슷한 부류가 있을 뿐. 타인의 다양하고 개별적인 존재를 받아들이는 것도 함께 공생하는 일도 습관이고 노력이다.

 

그럼에도 날 위한 포청천은 필요하다

내 안에서 나의 결정을 객관적(!)으로 판단해주는 판관포청천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본다. 그리고 진짜 필요하다 싶을 땐 개작두를 불러서 처단해줘야 한다. 어떤 경우에는 ‘매가 약’일 수도 있다. 문득문득 내 안의 포청천이 타인을 향해 비난을 쏟을 때 스스로에게 묻는다. “아저씨 일 좀 쉬엄쉬엄 하세요. 나하나 돌보고 끌어가기에도 바쁜 세상이잖아.” 의외로 오지라퍼인 나는 갈 길이 참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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