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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랭보 Jul 24. 2018

연애가 사랑이 되려면

영화 빅식(The Big sick), 14일 동안의 사랑

브런치 무비패스로 관람한 감상평입니다. 약간의 스포 있습니다.


"oo이는 진짜 사랑 해봤어?"

"진짜사랑이요? 남자친구는 사귀어 봤죠."

"그런거 말고, 뭐라고 설명하긴 힘든데 '진짜 사랑해봤다' 하고 얘기할 만한 그런게 있어. 한창 젊을 때 사랑을 해봐야 인생이 깊어진다. 지금도 안늦었다. 서른 전에 한번 하면 딱 좋겠네"


살다가 문득문득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내 인생의 첫 '상사'와의 대화를 떠올린다. 철학과를 나온 그는 고 신해철과 동기였다. 그는 당시 조금 핫했던 우석훈의 88만원 세대를 읽어봤냐, 세대갈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둥 나에겐 조금 흥미로운 질문을 던지곤 했다.  8년의 사회생활을 돌아보니 그는 여러모로 꽤나 괜찮은 상사였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같으면 '사생활침범'이라는 이유로 펄쩍 뛰었을 까칠한 내 성격에 저런 대화가 여전히 인상깊다는 건 조금 의외다.


영화 빅식(The Big Sick)을 보고 나오면서, 26살 회식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는 강남 한복판에서 팀장님과 나눴던 대화가 떠올랐다. "진짜 사랑해봤다 하고 말할 만한 그런게 있어." 바로 '그런 게' 이 영화에는 있었다.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 빅식은 파키스탄 출신 남자 '쿠마일 난지아니(쿠마일 역)'와 미국여자 조 카잔(에밀리 역)의 사랑이야기다. 실제로 남 주인공 역할을 했던 배우 쿠마일 난지아니는 미국여자인 현재 부인을 만나 가정을 꾸렸다고 한다. 가벼운 호기심과 끌림으로 시작한 남녀가 결국 여러가지 장애물을 딛고 결혼에 골인하게 되는 로맨틱 코미디 장르다. 그 안에 소소한 감동과 눈물이 있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잔잔한 흐름으로 흘러가는 사랑이야기 였다.


영화에는 서로 다른 종교, 인종, 가정환경, 여자의 이혼경력 등의 문제로 헤어짐을 결심하고 이미 남남이 된 남녀가 등장한다. 여자친구인 에밀리의 강한 의지만큼 남자주인공 쿠마일은 둘 사이에 놓여진 장애물을 극복하고자 하는 마음가짐이나 용기가 없었기에 헤어짐을 받아들인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에밀리가 병원에 실려가게 되고, 14일동안 혼수상태에 빠진 전여친을 옆에서 지키게 되면서, 쿠마일은 '연애'의 감정에서 '사랑'으로 변하는 자신을 마주하게 된다. 그녀와 가까운 부모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그녀의 어린시절 추억을 공유하고, 그녀를 처음 만난 코메디 클럽의 무대에 서면서 그는 산소호흡기에 의지하고 있는 그녀에 대해 알게 된다. 그리고 비로소 '사랑'을 하게 된다.  


도대체 '진짜 사랑'이 무얼까? 진짜 사랑은 상대에게 기대하는 바가 없을 때 가능해진다. 나의 애정과 호의가 어떤 식으로도 보상받지 못한다고 생각해도, 지치지 않고 누군가에게 정성을 쏟을 수 있다면 그건 진짜 사랑일 것이다. 부모가 자식에게 그러하듯이. 그러니 아주 희귀하고 어려운 일일 수 밖에. 쿠마일이 산소호흡기에 의존해 꿈쩍도 하지 않았던 에밀리의 곁에 머무를 수 있었던 것은, 세상에 너란 존재가 사라질수도 있다는 불안과 싸울수 있었던 이유는 사랑하기 때문이었다. 이 14일의 기간동안 사랑이 시작됐다. 짧고도 아주 긴 시간이지만 그래서인지 정말 어떤 사랑은 기적과도 같다. 연애도 쉽진 않지만 사랑하기는 정말 어려운 일이다. 사랑하고 사랑받는 존재가 된다는 것이 새삼 경이롭다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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