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랭보 Sep 06. 2021

철이 없었죠. 회사를 다니며 대학원을 다닌다는 게

모든 게 때가 있다는 어른 말씀에 틀린게 하나 없다는 걸 알게 됐다

코로나19와 함께 입학한 대학원생


2020년 코로나19의 창궐과 함께 대학 졸업 후 10년만에 대학원에 입학했다. 직장인에서 나름 중견 사원이라 불리는 '과장'이 되서 발을 들여놓은 학문의 길은 생각보다 험난한 편이다. 무엇보다 전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전염병 바람이 불어, 팔자에도 없는 Zoom으로 수업에 참여하고 있다. (나는 하두리 세대다). 수업시간 내내 카메라를 틀어두고 노트북 화면의 반이 내 얼굴로 채워진 채로 있는다는게 버겁다.

게다가 학부 전공분야와 다른 석사과정에 입학하게 되었으니 조금 낯설기도 하다. 나는 '문송합니다(문과라서 죄송합니다)'를 인사말로 달고 살아야 하는 인문학 전공자다. 학부 때 심리학을 전공했다. '인간의 마음과 행동'을 이해하는 학문이라 소개하는 10여년전 학부 홈페이지의 소개글이 문득 떠오른다. 심리학을 전공하였으니 사람을 잘 볼줄 알고 마음과 행동을 꿰뚫어 볼 수 있냐는 황당한 질문에 종종 맞닥뜨린다. 선생님, 그랬다면 제가 이러고 살진 않을텐데요.


왜 갑자기 대학원을 가게됐나


뭐 따지고 보면 갑자기는 아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당장 먹고 살 길이 막막하여 어영부영 당시의 유행하던 '이중전공' 제도의 수혜를 입어 경영학을 배우게 되어 어찌저찌 지금은 회사원으로 살고 있지만 마음 한 켠엔 공부를 다시 해야지 하는 막연한 생각만 하고 있었다. 그 시기는 굉장히 모호했는데 '언젠가, 여유가 되면 전공을 살려보리라' 정도의 미약한 마음이었다. 그렇게 마음만 먹고 산지 10년 째에 나는 '스포츠심리학'이라는 분야를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이유는 간단했다. 학부 전공이 심리학이었고, 내 전공을 좋아했고, 지금 가장 좋아하는 것은 운동이기 때문이다. 덧붙여서 학비를 지원받을 수 있는 기회를 잡은 것도 타이밍을 잡는 데 결정적인 요소가 되었다 할 수 있다.

 

스포츠 심리학을 공부한다는 것


"오, 그거 유망하다든데?"

무슨 대학원에 다니냐고 묻는 말에 MBA나 직장인을 대상으로 하는 야간대학원이라는 답변을 기대한 사람들은 '스포츠심리학'을 공부한다고 하면 다시 한번 되묻는다. 유망하다고, 뜬다고. 솔직히 유망한지도 뜰지도 모르겠고, 스포츠 심리학이 뜬다고 해서 그게 내 인생에 무슨 영향이 작용할지 모르겠다. 대학원을 다니는 일이 나에게 사실은 야근을 추가로 하는 일에 가깝게 느껴진다. 직장인으로서의 삶이 80%에 가깝고 20%를 겨우겨우 앵벌이 하듯 꿔내어 공부를 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이미 나의 정체성이 너무 한달 벌어 한달을 사는 직장인 노예로 포지셔닝 된지 오래라 아직 감이 없기도 하다.

직장을 다니며 대학원 생활을 한다는 것


물론 일과 공부를 병행한다는 것이 얼핏 봐도 쉬운 일은 아니지만 직장인의 경우 '기회비용'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대학원 입학의 목적은 크게 커리어 전환이나 학문의 길로 아예 들어가는 2가지의 선택지가 있는데 나의 경우는 이 두 가지 경우의 수에 해당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교수가 되겠다, 이직을 하겠다와 같은 구체적인 목표의식을 가지고 공부를 하는 게 쉽지 않다. 직장인 대상의 MBA의 경우는 인더스트리를 바꾸거나, 직장을 이직하는 데 도움을 받고, 비슷한 사회생활을 한 직장인들과의 네트워크를 통해 인맥을 확장하는 등의 장점이 있다. 하지만 나와같이 학문 베이스를 기반으로 한 전일제 일반대학원의 경우 대부분의 학생들은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취업하기 직전에 잠시 대학원 생활을 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애초에 교수가 되기위해 입학한 친구들이 대부분이다.(30대 중반의 나와 비교하면 10살 남짓 어린 친구들이 다수다.) 학문의 길도 어릴수록 유리하다는 말은 굳이 언급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일찍 일어낸 새가 원래 먹이를 더 빨리 먹는 것은 어느 분야에나 해당되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믿져야 본전이지만 논문은 너무 괴롭다


생계를 포기하고 공부를 시작한게 아니라 석사 학위를 받는다고 해서 크게 나아지거나 나빠지는 일은 없다. 물론  간의 기회비용(사람을 못만나고, 놀지 못하고, 술을  못먹고, 맘편히 쉬지 못하는 ) 생각하면 아쉬움이 남을  있지만 딱히 대학원에 쏟는 시간동안 뭔가 생산적인 일을 햇을  같진 않다. 가장  문제는 바로 '학위 논문'이다. 10년전에 기초수업을 들었던 통계지식을 억지로 끌어올려야 하나 현실적으로 그건 불가능하다. 전공필수 수업으로 대학원에서 통계수업을 듣지만 여전히 달달 외워서 겨우 시험을 통과하여 학점을  맞는 수준으로 공부하다 보니 이해가 깊지 않은데 당장 졸업 2학기를 앞두고 논문계획을 시작하게 되면 상당한 두통에 시달릴 위험이 있다. 통계가 생각보다 많이 골치아프다. 주제를 선정하는 것은 둘째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사 일보단 나은 것 같은 느낌


논문이 골치아프고, 온라인 화상강의를 듣는것은 힘들지만 그래도 직장과 병행하기에 코로나19 시대의 대학원생활은 상대적으로 편안했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아무 의미도 재미도 없는 회사 일보다야 '학문'의 길을 추구한다는 것은 그래도 무언가 더 가치 있는 일이라고 느껴진다. 돈을 받는 곳과 돈을 내는 곳의 차이라고 할 수 있을까? 회사는 어떤 식으로 해석해도 도무지 '돈을 준다'는 것 이외의 이점을 찾지 못하겠다. 아, 하나 더. 신용대출이 잘 나오는 장점은 있다. 학부 졸업 후 10년 만에 입학한 석사과정을 통해 느낀 것은 운동을 하는 것이 확실히 운동을 글로 공부하는 것보다는 재밌는 일이라는 것이다. 이상 3학기를 마치고 논문학기에 접어든 직장인 대학원생의 소감이다.


  

이전 15화 직장생활 10년 차, 대학원을 결정한 이유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