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할 수 있을 때는 두 가지 모두 선택하라
30대 중반의 석사 신입생
대학을 졸업하고 10년 만에 일반대학원 석사과정에 입학했다. 하필 코로나19로 인해 수업은 비대면으로 이뤄졌다. 동기보다는 막 부임하신 교수님이나 학교에서 연차가 오래된 박사들과 비슷한 또래이지만, 그래도 신입생으로서 답답한 사무실 건물을 벗어나 새로운 장소로 가는 리프레시를 기대했건만. 먹은 나이만큼 체력은 떨어졌기에 회사에서 학교로 이동하는 수고로움은 덜었다고 안위한다. 하지만 꼬박 세 시간의 수업을 듣는 건 쉽진 않다. 퇴근 후 부랴부랴 컴퓨터 모니터 카메라로 내 얼굴을 찍어 실시간으로 전송하고 두 눈을 부릅뜨는 일이 힘들다. 많이 나면 열 살 터울의 젊은 학부 졸업생과 같이 공부하고 평가받는걸 마냥 학구열로 극복하기도 어렵다.
내 역할을 찾는 과정
"누나(언니)는 왜 대학원에 오셨어요?" 한참 막내동생 뻘의 대학원 선배님들에게 많이 듣는 질문이었다. 보통
"공부하고 싶어서." 이렇게 짧은 대답과 함께 겸연쩍은 웃음을 보였는데, 한창 경제생활을 시작한 친구들과 달리 학업의 길(멀고도 험한)을 품고 교수가 되기위해 젊음을 갈아넣는 친구들에게 어떤 대답을 해야할지 참으로 난감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나도 내가 명확히 어떤 이유에서 직장인을 대상으로 하는 것도 아닌 일반대학원에 입학한지 분명히 말하기 어려웠던 것 같다.
입사하여 약 10여년 남짓 정도 시간이 지나면 보통 내 나이 또래의 여성들은 과장급 중간관리자가 되거나, 결혼 후 육아를 위해 육아휴직을 하고 있는 시기이다. 나의 경우 올해 예기치 않게 승진을 하게 되었고, 중간관리자라는 직장에서의 역할은 고정된 상태였다. 그런데 정작 모두가 중요하다 여기는 사적인 영역에서는 여전히 아무것도 결정된 것이 없다. 누군가의 배우자도 부모도 아니니 케어하고 신경쓸 것은 오로지 나뿐이다. 좋게 말하면 자유롭고 나쁘게 말하면 불안할 수도 있는 포지션일 것이다. 하지만 정신승리가 주요한 장점인 나는 이 자유로움을 십분 활용하기로 마음먹었다. 나에겐 지금이 대학원을 가기에 적절한 타이밍이라고 판단했다.
공부가 맞을까
"00이는 뭘 잘했어?" 신입생과 연구실원들과의 식사자리에서 지도교수님이 물으셨다. 순간 정말이지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는데 나도 모르게 말해버렸다. "공부요." 일동 침묵이 퍼졌다. 사실 공부를 그렇게도 잘한 것 까진 아니지만 그나마 잘하는게 공부인 게 맞는 것 같긴하다. 그리고 뭣보다 나는 공부하는게 편한 것 같다. 에너지를 밖으로 분출하는 활동, 가령 운동같은 것도 좋아하지만 기질적으로 혼자 생각하고, 중얼거리고, 방해받지 않는 걸 좋아한다. 원래 공부할 땐 '방해'를 하면 안되는 거니, 지금 이 나이까지도 잔소리가 무지 심한 우리 엄마는 공부라고 하면 방문을 닫고 나간다. 엄마의 잔소리를 피하기에 공부만한 방패는 없다.
대체되지 않는, 성장하는 사람
곰곰히 생각해 봤다.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 걸까. 나이가 들수록 대체되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리고 스스로 생각할 때 성장하는 느낌을 받고 싶었다. 그 여부야 매우 주관적이지만 커리어 측면에서 보면 일반 직장인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전문 자격증을 따거나, 자기 사업을 준비하거나, 학업을 지속해서 전문성을 높이는 선택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은 근로소득과 안정적인 고용을 보장하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게다 회사의 학비보조를 받을 수 있다는 것도 선택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더 이상 돈 쓰며 체력 소비하며 사람을 만나 노는 일에도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면 공부를 해도 좋을 것 같다. 나에겐 2020년 지금이 바로 공부할 타이밍이었다. 공부를 하다 보면 새로운 길이 보이지 않을까. 그도 아니라면 일에서 쌓인 스트레스를 학업을 하는 데로 돌릴 수도 있을 것이다. 아무렴 어떨까 싶다. 그냥 하고 싶으니 하게 된 석사 생활이 1년을 향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