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는 싸움을 끝내기 위해서 물리적 독립이 필요하다 생각한다
TVN 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 엄마와 딸의 전투는 드라마의 단골 소재다
오늘도 또 아무것도 아닌 일로 싸우고 말았다. 몇 가지 챙겨야 할 집안 행정일이 있었는데(써놓고 보니 이상함, 뭐 크게 대세에 지장 없는 서무업무라고 해두자) 그걸 누가 해야 하는 것으로 옥신각신 말다툼이 일어났다. 우리 엄마는 예순이 넘은 나이에 아직도 사회생활을 한다. 소일거리가 아니고 꽤나 일정 부분 생계를 책임지고 있기 때문에 자기 또래의 여자들처럼 살지 못하는 것에 대해 부러움이 있는 것 같긴 하다. 내가 중학생일 때부터 가정경제를 책임져 왔으니 그렇다고 이러한 의무와 책임에 대해 크게 내색하지는 않는다. 엄마의 친구들은 손자 손녀를 자식들을 대신해 떠맡아 보거나, 골프를 치고 해외여행을 종종 다닌다고 한다. 동네 아주머니들과 모여 운동을 다니거나 자기 취미생활에 몰두하거나, 소소하게 정치활동을 하시는 분들도 있다. 물론 전해 듣기로 좋은 케이스만 들었으므로 전모를 알 수 없으나 우리 엄마는 친구들 중 가장 바쁜 사람인 것만은 맞다.
오늘 싸우게 된 건 말을 전달하고 오가는 과정에서 커뮤니케이션 미스가 났는지 결국 뭔가를 정정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전화 한 통이면 해결될 일이었지만 난 화가 났다. 모든 걸 처리하고 그것을 위해 시간과 비용을 내가 썼음에도 좋은 소리를 듣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엄마에게 이 서무를 맡길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대학원 개강과 바빠진 회사 업무 등으로 인해 몸과 마음이 지치려고 발악을 하고 있었으므로 나는 '버럭'을 숨기지 못했다.
나 : "나 개강도 하고 이것저것 챙길 게 너무 많다. 진짜 바빠 죽겠어. 정신없는데 왜 여러 번 하게 만들어?"
엄마 : "너만큼 안 바쁜 사람이 누가 있어?"
나 : (.......) 방문 쾅
엄마 : "누가 너 대학원 가라고 했니? 너 공부한다는 거 이제 지겨워 죽겠다. 잔뜩 부아가 나서는 말도 못 걸게 하고, 이제 니 눈치 보는 것도 지겨워 죽겠다."
전쟁은 일시적으로 끝나 휴전상태이지만 마음의 짐은 남았다. 마흔 살이 다 되도록 공부를 하는 건 어찌 보면 이제 가족에게 민폐를 끼치는 것이 된다. 기혼이었다면, 케어해야 할 자식이 있더라면 아마 난 대학원에 갈 수 없었을 것이다. 갔다고 하더라도 내가 해야 할 일을 대신할 누군가의 힘이 필요했을 것이다. 뭐 지금까지도 비교적 자신을 위해 살아온 삶이 아니라 할 순 없지만, 말다툼 때문에 화가 난 탓인지 지극히 이기적으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불처럼 솟구쳤다. 이기적으로 살기 위해서, 이를 방해하는 것들에서 자유로워 지기 위해서 내가 해야 하는 것은? 독립. 정신적 독립을 아무리 우긴다고 해도 경제적 독립이 완벽하게 이뤄지지 않으면 반쪽 짜리에 불과하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다. 성인이 되는 것이란 부모로부터 물리적으로 분리되는 것이 시작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