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을 하고 나니 드디어 온전한 혼자만의 시간과 공간이 생겼다
"왜 갑자기 독립을 한 거야?"
"혼자 있고 싶어서."
독립을 했다고 하니 다들 묻는다. 집도 서울인 데다 직장과의 거리도 멀지 않은 걸 다들 알기 때문이다. 그리곤 또다시 한번 놀라며 묻는다.
"혼자 있고 싶어서 독립을 했다고?"
오래 알고 지낸 이들은 참으로 너답다는 반응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기지만, 대부분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화제를 돌린다. 그 의미를 알고 있다. 전셋값이 얼마나 비싼데 그 돈을 아끼고 모으지 않고 배부르게 '싱글라이프'를 즐기겠다는 것이냐는 시선이 하나다. 요새는 집이 없을수록 '전세 살지 말라'라고 한다는 걸 모르는 건 아니다. 깔고 앉는 돈을 아껴서 투자를 하든, 세를 끼고 집을 사두든 해야 하지 않냐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여자들은 내 집 마련에 대한 압박이 남자보다 심하지 않으니 여유를 부릴 수 있어 좋겠다는 소리까지 들어본 적도 있다. 그럴 때는 그냥 웃어 보일 수밖에 없었다.
독립이 근황의 주제가 되면 왜 여태 결혼을 하지 않는지에 대해 명명백백한 논리 준비가 필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비혼 주의자라고 얘기할 만큼 결혼에 대한 확고한 생각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늦은 나이이니 서둘러 결혼할 생각도 없다. 앞으로도 결혼하고 싶은 사람이 없다면 하지 않을 것이다.(적어도 지금까지 이 다짐은 유효했다.) 하지만 대외적으론 그렇게 말하진 않는다.
"좋은 사람을 아직 못 만나서 못했어요."
"저는 좀 늦은 거 같아요."
물론 충분히 설득이 되지 않는다. 이어서 들려오는 단골 멘트는 또 있다.
"사람이 말이야, 다 남들 하는 건 해보고 살아야 돼. 결혼도 하고, 자식도 낳고. 순리대로 살아야지."
순리대로 사는 게 대체 뭔가. 저런 이야기를 하시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별로 순리적 이어 보이지 않는 인사들이다.
적령기를 넘긴 나이의, 부모님과 함께 사는 여자들에게는 '독립'은 사치로 보이나 싶어 진다. 생활비를 아끼고 모아서 집값을 마련하고, 쉬는 날은 온전히 1인 몫의 집안일을 하고 나면 반나절이 지난다. 카페에 앉아 한가로이 브런치를 먹으며 커피를 때려마시는 사치는 부모님 집에 살 때 했던 것이지 지금은 외려 반대다. 믹스커피 한잔에 냉동실에 얼려둔 얼음을 넣어 잠을 깨운다. 혼자 살기 위해서는 거주비용은 물론 생활비, 공과금, 은행 이자까지 생각하면 허리띠를 더욱 졸라매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순리대로 사시는 분들이 말하는 '부모가 될 이 나이'에 부모의 집에 얹혀사는 것이 더 부자연스러운 건 아닐까. 경제적으로 부모님을 도와드려야 해서 같이 사는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나는 결혼을 통해야만 독립의 문에 다다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에 반대다. 여자들에게 그런 잣대를 대는 것도 이해를 못하겠다. 나이 사십이 넘어 부모님이랑 함께 산다고 하는 미혼남이 그리 멋있어 보이지 않는데 여자라고 다를 게 없다고 생각한다. 다달이 내는 이잣돈을 위해서라도 열심히 회사에 출근도장을 찍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벼락 거지를 운운하며 근로의욕이 떨어졌다는 사람들과 달리 요새 역사적으로 가장 근로의욕이 충만한 상태다. 빨리 모으고 아껴서 집도 사야겠다는 원대한 장기플랜도 세워본다. 혼자 사는 방도 이렇게 좋은데, 혼자 사는 집은 얼마나 좋겠나 싶은 것이다.
지난 몇 년을 혼자 있으면서 생각할 시간이 간절했지만 충분한 심적, 시간적 여유가 없이 잔뜩 쌓인 숙제를 하느라 정작 나 자신과는 거의 못 놀아 준 것 같다. 그래서 혼자 있기 위해 '공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직장생활 10년 차의 중견사원에게 대학원이란 승진을 위한 관문이나, 커리어 전환을 통해 이직을 하거나, 새롭게 사람을 만나 사귀는 기회라는 의미가 있다. 하지만 나는 좀 달랐다. 진짜 '공부를 하기 위해서'였고, 공부할 때만큼은 혼자이고 누구도 방해할 수 없다는 걸 알았다. 공부 말고 다른 게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공부를 핑계 삼아 혼자만 있을 수 있는 공간과 시간이 온전히 필요했고, 완강했던 엄마를 설득해 '독립'까지 하게 되는 구실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이제 독립한 지 약 한 달이 되었다. 쉬는 날은 집 밖에 거의 나가본 적이 없다. 그냥 혼자 있는 게 좋아서 굳이 나가야 할 이유를 모르겠다. 독립된 공간과 시간이 충분히 생기니 깨닫게 됐다. 나는 공부를 하고 싶었던 게 아니라 혼자 있고 싶었던 거였다. 공부할 때만큼은 가족을 포함 누구도 나의 시간을 점령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걸 깨닫게 되자 공부가 하기 싫어졌단 것이다. 혼자 아무것도 안 하고 방 안에 앉아 음악 듣고, 책 보고, 요리해먹고, 빨래하고 청소해도 충분히 즐겁고 평온하다. 그래도 후회하지는 않는다. 공부란 핑계가 없었더라면 이렇게 독립 라이프를 시작하지도 못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