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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랭보 May 29. 2021

두꺼비 집을 세 번이나 내렸다

독립 한 달만에 일어난 변고

독립한 지 한 달째. 한가로운 자유시간과 바쁜 대학원 생활(물론 직장생활 포함) 사이를 오가며 독립을 만끽하고 있던 중 지난 주말 아침 사고가 터졌다. 갑자기 환기구에서 작은 소음이 발생해 벽 한편에 달린 월패드를 보았더니 ‘점검’ 메시지가 떠 있었다.


불을 켜고 끄는 똑딱이 스위치에 익숙한 내게 이 월패드는 입주부터 왠지 모를 중압감을 줬었는데 결국 여기서 사고가 난 것이다. 원인 모를 에러 메시지에 며칠 전 관리실 직원이 통화기 너머로 대수롭지 않게 건넨 한 마디가 떠올랐다.

"아. 그거~자주 그래요. 여기 하자가 많아서 그래요. 그냥 두꺼비집 한번 내렸다 올리면 다시 될 거예요."


지은 지 3년밖에 안된 대형 건설사 오피스텔에 하자가 많다니. 놀랍기도 했지만, 두꺼비집을 내리고 올리는 게 이렇게 자연스럽게 말할 수 있는 일인가 싶었다. 본가에서는 일 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일이었고, 그 마저도 내손으로 내렸다 올려본 적은 없었다. 신발장 한편에 있는 두꺼비집을 찾아서 내렸더니 다시 불이 들어오다가 '타닥'하는 소리와 함께 조명이 꺼졌다. 손으로 터치하는 월패드를 여러 번 꾹꾹 눌러봤지만 아무 신호가 오지 않았다.


'사고가 터졌구나.'

직감적으로 불길함이 몰려와 다시 관리실로 전화를 걸었지만, 일요일 아침이라 당직을 하는 직원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해도 자긴 모른다는 이야기를 반복했다. 공사를 한 AS 담당을 불러야 한다고.

"월패드 조작도 안되고 그래도 당장 불이 안 들어와서 어두운데 좀 봐주실 수 없나요?"

"아 저는 봐도 모르는데..."

그리고 혼자 몇 시간을 끙끙대다 결국 다시 관리실로 전화를 걸어 당직 직원을 불러내었다.

"좀 와주세요. 지금 불도 안 켜지고 뭐 봐주셔야 제가 낼 AS 접수라도 하죠."


결국 이 날은 2021년 이 최첨단 IT 시대에 전깃불 없이 충전한 LED램프에 의존해 하루를 보냈다. 단순히 조명이 연결되지 않고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데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괜히 집에 붙어살지 않고, 쓸 데 없이 독립을 한 건가. 다시 집에 들어가는 게 낫나'

'회사 다니면서 공부하겠다고 독립하더니 공부는 평소보다 더 못하고. 과제며 발표며 다 밀렸네.'

 

600세대 넘게 사는 대단지 오피스텔 담당자가 전기 나가는 걸 모른다는 것도 이상했지만 그럴 수 있다고 여겼다. 더 문제는 그다음 날이었다. 국내 대형 건설사 AS센터에서는 지금 하자보수 기간이 끝났으니 유료로 진행하는 외부 업체 번호를 넘겨줬다. "직접 AS 접수를 하셔야 해요."

예상치 못하게 유료로 발생하는 수리이니 부동산 중개인에게 문자를 보내 상황을 설명하고 집주인에게 허락을 구했다. 의외로 흔쾌히 Yes를 받아내서 다행이다 싶었지만 답변을 기다리는 동안 불안감과 짜증을 참기 어려웠다. 집주인 허락을 구하고 업체에 AS 접수를 신청했고, 수리기사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수리기사 : 이건 우리 제품(월패드) 문제가 아니에요. 이 집 전선을 다 뜯어봐야 할 것 같은데? 이거 봐요. 이거 이건 되는데 이건 안되죠?(전선을 붙이고 떼길 반복하면서 내 눈앞에서 시연을 한다.) 수리기사가 왜 내 앞에서 전선을 연결하며 시연을 하고 자기가 전문가라는 걸 증명하려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고치면 고치고 아님 마는 거 아닌가. 그래도 나보단 낫겠지 싶어 관리실 담당 직원을 불렀다. 전기담당이라고 했다. 나와 AS수리기사에게 도면을 보여주며 이걸 보면 될 거라고 한다. 도면을 볼 줄 알면 내가 왜 이러고 있겠나.


AS수리기사와 관리실 직원은 이야기를 하더니 내게 말한다.

"전기업자를 부르셔야 해요."

"제가요? 직접요?"

"관리실에서 컨택하는 업체가 없나요?"

"없어요. 저희도. 직접 부르셔야 해요."


결국 숨은 고수들이 모여있다는 '숨고(soomgo)'를 통해 전기 자격증을 가지고 계신 기사님을 불러 10만 원 비용을 치르고 1시간 만에 고쳤다. 돈도 돈이지만 집주인이 내주니 그렇다 치고, 완전히 날려버린 내 주말과 그 시간에 해야 할 일을 하나도 끝내지도 못한 상황, 이 모든 게 스트레스로 몰려왔다. 이 숨은 고수 기사님은 전기 배선의 문제도 아니고, 월패드 기계 자체 결함이라고 한다. 전문성이 없는 사람들이 모인 곳. 전기 담당이 전기를 모르고, 기계제조업체가 기계를 모른다. 때론 협업이 책임 회피의 문제를 불러올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좋았다면 추억이고 나빴다면 경험이라는데, 독립에 대한 좋지 않은 경험이 이렇게 +1 되었다. 더불어 하나를 더 알게 됐다. '사람은 기술이 있어야 해.'라는 옛 어른들의 말씀 틀린 게 하나 없다는 것. 대학원을 갈 게 아니라 당장 생활에 도움이 되는 전기기사 자격증을 땄어야 했나 싶었다. 독립해서 살다 보면 두꺼비집 스위치를 여러 번 내려야 할 수도 있으니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를 미리 하는 것도 권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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