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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랭보 Nov 12. 2023

막내동생 베프의 결혼식에 다녀왔다

11월의 어떤 특별한 결혼식

9년 전 사고로 막내동생을 잃었다. 내 인생의 가장 어두웠던 때, 동생의 마지막 길에 끝까지 동행해 준 친구들이 있었다. 군복무를 마치고, 복학을 하고, 다들 불투명한 미래 때문에 방황하던 20대 초반 그 시기에 갑작스러운 친구의 죽음이 그 애들의 인생에도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고 했다.


이 녀석들은 같은 동네에서 나고 자라 초중고를 같이 다녀온 친구들이었다. 동생은 고등학교 농구 동아리장이었다. 공부보다는 운동에 소질이 있던 애라, 운동을 과하게 즐기고 좋아하는 게 항상 걱정거리였다. 동생이 떠나고 나서, 농구모임의 총무는 바뀌었지만 적어도 월 1회 정도는 실내코트를 빌려서 연습을 하고 정기적으로 동호인대회도 나간다 했다.


동생을 보내고, 허망한 마음에 나도 두어 번 간식을 사들고 애들이 운동하는 곳에 찾아가곤 했다. 생전에 언제 자기 농구하는 거 구경 한 번 오라고 얘기를 여러 번 했는데 '공부나 하라'며 단 한 번도 가지 않았었다. 동생이 떠나고, 꽤 오랜 시간 살아있을 때 같이 하지 못한 사소한 것들, 내가 상처 줬던 말들 하나하나가  나를 괴롭혔다. 이렇게 빨리 갈 줄 알았다면, 더 잘해줄걸. 스트레스 주는 말을 하지 말걸.


서서히 일상으로 돌아갈 즈음, 가족들끼린 아무런 티도 내지 못하고, 나 또한 집에선 내색하지 못하고 차 안에서 숨죽여 울던 때가 있었다. 너무 빨리 잊히는 게 싫었던 것 같다. 사실은 아무도 잊지 못하고 있을 수도 있었는데, 가족과는 그런 이야기를 나눌 수 없었다. 그때 가끔 안부를 묻고, 누구에게도 할 수 없는 이야기를 어릴 적부터 오래 봐왔던 막냇동생의 베프인 녀석과 나눴었다. 회사일이 바빠지고, 시간이 많이 흐르면서 이 친구도 취직을 하여 동네를 떠나 외지에서 일을 하기 시작하면서 연락은 뜸해졌지만, 가끔 안부를 물으며 지내다, 이번 11월 결혼한다는 소식을 듣게 됐다.


오늘 그렇게 동생을 대신해서 꼭 가야겠다 생각했던 친구의 결혼식에 참석했다. 많은 동생의 친구들을 이렇게 동시에 본 건, 오랜만이었다. 시간이 무색하게 이미 결혼을 해 가정을 꾸리고, 내년 봄에는 딸이 태어난다는 아이들도 있었다. 시간이 오래 지났지만, 애기아빠라고 하기에는 여전히 나에겐 스물넷 동생의 친구로 보였는데 말이다.

 

예복을 잘 차려입은 동생의 베프를 보는 순간 살짝 눈물이 날 뻔했다. 정장을 잘 차려입고 사회를 보고, 축의금 접수대를 지키고, 사진과 영상을 찍어주고, 축가를 불러주는 그 친구들을 보면서 내 동생은 없구나 하는 생각이 불쑥 들면서 최근에는 자주 생각하지 못했던 막냇동생이 떠올라 미안함 같은 것이 겹치며 코끝이 시큰해졌다. 그래, 살아있었다면 너도 서른셋, 누군가의 아빠가 될 나이가 되었구나. 동생의 나이가 그런 나이가 된 것이다.   


동생아, 너 대신 누나가 결혼식 가서 축의금도 내고, 사진도 찍고, 밥도 맛있게 잘 먹고 돌아왔다. 듣고 있니. 부디 그곳에서는 편안하길 바란다.


 - 큰누나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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