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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밥 Nov 12. 2019

내게는 너무 먼 연예인

연예인 잘 모르는 방송작가


방송작가라고 하면 가장 먼저 듣는 소리가 ‘연예인 많이 보겠네요?’다. 특히 소개팅에서 이 질문 나오면 그 소개팅은 텄다고 말할 수 있다. 실컷 설명하기 복잡한 방송계 얘기만 주야장천 하다가 툭하면 밤새고, 주말에도 못 쉬며, 이렇게 사는 인생이 옳은 걸까요? 라는 답 없는 질문만 하다가 끝나는 것이다.      


미안하게도 난 교양 프로그램 작가라 연예인을 많이 본 편도 아니다. 사실 연예인에 관심이 없다. 예능작가를 하는 동료들을 보면 하나같이 아이돌 덕후이고 TV 없이 못 사는 친구들이다. 같은 방송작가라지만 서로 참 다른 종족이다. 나는 연예인을 섭외할 때마다 자신이 마치 연예인이라도 되는 양 거들먹거리는 일부 매니저들을 상대하기가 힘들었고, 연예인을 상전처럼 떠받드는 능력도 부족했다. 이런 성격은 분명 예능작가를 하기에 불리했다.     


교양 프로그램 작가인 나를 설레게 하는 사람은 연예인이 아닌 전문가나 명사였다. 그들을 만날 때는 팬심 가득한 소녀로 돌아갔다. 한 분야에서 최고의 입지를 다진 그들의 비결을 인터뷰할 때는 방송에 소개하지 않고 나 혼자 간직하고 싶기도 했다. 그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었다. 엄청난 노력과 끈기, 사명감의 화신들이었다.      




기억에 남는 몇 분이 있다. 북극점과 남극점, 에베레스트 산을 모두 정복한 최초의 산악인 허영호 대장. 죽음의 경계를 수없이 오간 그의 에피소드는 듣기만 해도 오금이 저렸다. 가발공장 여공에서 하버드대 박사가 된 서진규 선생님을 사전 인터뷰하러 갔을 때도 기억에 남는다. 그녀는 자신의 역경 스토리를 말하면서 감정에 북받쳤는지 여러 번 훌쩍거렸고, 그 모습마저 참 인간적이었다. 미군 장교 출신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마음이 여리고 따뜻한 분이었다.      


한 번은 <인간시장>을 쓴 소설가 김홍신 작가님의 댁에서 인터뷰를 진행한 적이 있었다. 집안에 들어선 순간, 천장까지 서재를 꽉 채운 책들을 보고 압도당했다. ‘작가의 집이란 수천 권의 책으로 지은 것이구나’ 하고 감탄했다. 방송 일을 시작하고 바쁘다는 이유로 책을 놓아버린 나는 ‘작가’라는 타이틀을 숨기고 싶을 정도로 부끄러웠다.     


때로는 남들이 쉽게 하기 힘든 특이한 경험도 한다. 이종상 화백님을 만났을 때였다. 만나자마자 악수를 청하더니 재치 있는 말을 던지는 화백님. “작가님은 나랑 악수했으니 앞으로 부자 될 거야, 나랑 악수하려고 사람들이 줄 선다고.” 갸우뚱하던 나는 그 이유를 듣고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의 그림은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점 이상 가지고 있다. 바로 5만 원 권 속 신사임당을 그린 장본인이다.      


섭외 때문에 의사나 변호사와는 밥 먹듯 통화한다. 그렇다 보니 웬만한 가정 의학 상식이나 생활법률은 꿰고 있는 게 교양 프로그램 방송작가다. 방송 일을 하지 않았다면 내가 이런 분들을 직접 만나고, 다양한 지식을 얻을 수 있었을까. 연예인과는 거리가 멀어도 교양 프로그램 작가에게는 이러한 소소한 즐거움과 특권이 있다.     


하지만 가끔은 예능작가를 선택하지 않은 것이 아쉬울 때가 있다. 한 친구는 학창 시절에 H.O.T 팬클럽이었는데, 현재 예능작가가 되어 H.O.T 멤버 중 한 사람과 매주 방송에서 만나고 있다. 진정 ‘성공한 덕후’랄까. 

사실 이건 좀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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