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깜짝할 새, 결혼 2년 차 주부가 됐다. 엄마는 딸이 친정에 한 번이라도 더 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게으른 딸은 바쁘다는 핑계를 대며 차일피일 미룬다. 생각해보면 바쁘다는 핑계는 나의 오랜 습관이었다.
결혼 전에도 청소, 식사 준비, 설거지 등 모든 집안일은 모두 엄마 몫이었다. 30대 중반이 다 되도록 세탁기를 돌리는 방법을 몰라서 여행지 게스트하우스에서 애를 먹었던 나였다. 고된 방송작가 일을 한다는 핑계로 집안일에는 손도 대지 않았다.
하지만 그 보다 더 바쁜 엄마는 모든 걸 해냈다. 엄마는 몇 년 전부터 대학병원에서 환자들의 식사를 챙기는 일을 하고 있다. 평생 자식들 밥을 챙기더니 직장에서까지 밥을 챙기신다.
엄마의 근무시간은 크게 3가지 타입이다. 새벽 4시에 출근하는 날, 오전 11시에 출근하는 날, 일주일에 한 번 있는 'ALL-데이' 근무에는 새벽 4시에 나가 집에 돌아오면 밤 9시였다. 15시간 동안 종종거리며 종일 병원 안을 뛰어다녔을 엄마는 집에 돌아오면 말 그대로 넋다운. 쉬는 날은 오로지 일주일에 하루뿐이었다.
“엄마, 일주일에 최소 두 번은 쉬어야지. 어떻게 그렇게 살아?”
“쉬면 뭐하니, 한 푼이라도 더 벌어야지. 병원에 사람이 안 구해져서 그럴 수가 없어.”
대책없이 조동아리만 살았던 나는 엄마에게 당장 일을 때려치우라고 노래했다.
“일하는 게 얼마나 좋냐~ 내 나이에 어디가서 일하기가 쉬운 지 아니, 일할 수 있을 때까진 일해야지”
환갑을 넘긴 엄마의 대답이었다. 일이 고되면 집안일이라도 대충 했으면 좋으련만. 꼬박꼬박 남편과 다큰 자식 끼니를 손수 차리는 게 싫었다.
그놈의 밥.
그러던 엄마는 내가 결혼을 한 후 180도 바뀌었다. 모처럼 친정에 놀러 갔던 날, 집으로 돌아가려고 신발을 신는 나의 손목을 붙잡더니 엄마는 잠깐! 을 외쳤다. 냉동실 속에서 엄마가 꺼낸 물건은 다름 아닌 홈쇼핑 식품이었다.
‘김나운 도가니탕’, ‘서분례 청국장’, ‘000 꼬리곰탕’... 모두 1~2인분씩 포장된 간편 조리식품이다.
“엄마가 이런 것도 먹어?”
“생각보다 괜찮더라? 너희 아빠도 좋아해 이거. 2인분이니까 구 서방이랑 끓여먹어라. 파만 송송 썰어 넣으면 돼”
아무리 바빠도 손수 만든 집밥을 꼬박 차려내던 엄마가 2년 사이 홈쇼핑 식품 애호가가 돼있던 것이다.
한 번은 퇴근길에 엄마랑 통화할 때였다.
“된장찌개, 김치찌개, 미역국, 북엇국.. 난 맨날 먹는 게 똑같아. 엄마는 오늘 저녁에 뭐 먹을 거야?”
“아빠랑 나가서 순댓국 사 먹기로 했어~ 요 앞에 순댓국 맛집이 새로 생겼더라.”
제발 주말이라도 외식 좀 하자고 조르면 ‘집에 반찬 놔두고 무슨 외식’이냐며 쌀을 빡빡 씻던 엄마였다. 철없는 딸은 엄마가 집밥을 좋아하는 줄 알았다. 이 세상에 맛있는 음식이 정말 많은데 관심이 없는 엄마가 안타까웠다. 지독한 착각이었다. 엄마는 딸이 떠나자 가벼워졌다. 자유롭고 간편해졌다.
결혼을 하고 짝궁이 생기고 나도 이제 집밥 좀 하는 주부가 됐다. 비로소 세탁기에 세제는 얼마나 넣어야하는 지 알게 됐고, 화장실 청소는 생각보다 자주 해야한다 당연한 사실도 깨달았다. 아이가 없고 손이 많이 가는 집안일을 남편과 함께 부담하니 아직 버겁지는 않다. 결혼을 하니 좋은 점이 생각보다 많았는데 그중 하나는 우리 엄마가 밥 고민을 덜게 됐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