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왜 봄이면 화분을 살까?
엄마 손은 금손!
“이 꽃봉오리 봐라. 예쁘지?”
“또 화분 샀어?”
“요 아래 천 냥 마트에서 하나에 천 원, 이천 원씩 하는 거야. 너무 예쁘지? "
“그러네.”
엄마는 화분을 참 좋아한다. 봄이면 연례행사처럼 몇 개씩 사들였다. 요즘 유행하는 멋들어진 행잉 식물이나 카페에서 많이 보이는 잎이 커다란 몬스테라 같이 '세련된' 식물은 아니다. 엄마는 아담한 꽃을 매단 게발선인장, 금전수나 다육이 같은 내 눈에는 다소 촌스러운 이름과 용모를 지닌 아이들을 주로 데려왔다. 그러는 동안 물에 꽂아둔 풍란은 줄기에 또 새끼를 주렁주렁 달았다.
“폭풍성장이네! 여기 붙어있는 새끼들 떼어가도 돼?”
“그럼~ 물에 담가두면 금방 뿌리가 나온단다.”
아무리 키우기 쉬운 식물이라도 신경을 쓰지 않으면 죽기 마련이다. 바쁜 엄마는 내가 아는 한 화분을 죽인 적이 없었다. 가뜩이나 좁은 거실은 이름 모를 식물이 번식에 번식을 거듭하면서 더 복잡해졌다.
엄마랑 함께 살 때는 몰랐다. 왜 그렇게 화분을 정성 들여 키우는지. 내 방의 선인장까지 말려 죽였던 나였다. 그런데 결혼을 한 후, 자연의 순리처럼 나는 초록이들을 하나 둘 사들이기 시작했다. 어느새 우리 집 거실은 친정처럼 온통 초록빛 물결이다.
키워보니 알겠다. 식물은 내가 관심을 주는 만큼 자란다. 목이 말랐던 아이들은 물을 주면 쪼르르 물이 화분을 타고 흐르는 소리가 유독 크게 들린다. 가느다랐던 줄기가 어느새 굵어지고 잎이 풍성해진다. 운이 좋으면 꽃도 핀다. 들여다보면 하루하루 자라는 게 눈에 보인다.
엄마는 우리가 어릴 적엔 식물을 키우지 않았다고 한다. 그땐 쑥쑥 자라는 남매에게 관심을 주기에도 바빴을 게다. 밥을 해서 먹이면 아들의 키가 한 뼘 더 자라났고, 편도선염으로 끙끙 앓는 딸 이마에 밤새 물수건을 갈아주면 다음 날, 미소를 되찾았다. 엄마는 자식에게 정성을 들였고, 자라는 모습을 보며 뿌듯하지 않았을까.
그런데 언제부턴가 다 큰 성인이 된 자식들은 더 이상 자라지 않았다. 밖으로만 내도니, 자라는 모습을 가까이서 지켜보기도 힘들어졌다. 그러다가 시집장가를 가버렸다. 기르기가 특기인 엄마는 허전하지 않았을까. '쑥쑥 자라나던 남매'가 그리웠던 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