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보다 아내가 좋은 이유
“엄마는 왜 아빠랑 결혼했어?”
“너희 아빠가 하도 좋다고 따라다니니까 한 거지.”는 모든 엄마의 고정 멘트일까.
“엄마 그러지 말고 제대로 얘기 좀 해봐. 아빠의 어떤 면이 좋았는데?”
“너희 아빠? 착하잖아.”
우리 아빠는 ‘무뚝뚝함의 대명사, 경상도 남자’라는 편견을 확! 깨버리는 말 많은 남자다.
“거 혼자 사는 양파 장수 알재, 이번에 여자를 만난거 같드라”
“보일러 집 형님 이번에 재개발 한다카든데~”
“내 저번달 공사했던 약사 집. 그집 아가 장가갔다카든데~”
“아이고~ 남의 집 얘기 좀 그만해요. 니네 아빠 왜 저렇게 말이 많니?”
엄마의 핀잔에 아빠는 젓가락을 물고 입맛을 다신다.
"말도 안 하면 뭔 재미로 밥먹노"
왜소하지만 다부진 체격. 확실히 듬직하다기 보다는 가벼워 보이는 쪽이고 때로는 촐싹 맞아 보이기까지 하는 우리 아빠. 엄마 말대로 아빠는 착하다.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남에게 싫은 소리를 못하고 차라리 끙끙 앓는 편이다.
환갑이 지나도록 큰 사고나 말썽 한 번 일으킨 적이 없는 성실한 가장이기도 하다. 몸을 쓰는 일용직 노동을 하다 보니 겨울엔 동태가 되기 십상이고 여름엔 바싹 마른 노가리 꼴로 집에 오신다. 소심한 아빠가 하루의 지친 피로와 스트레스를 푸는 데는 역시 소주만 한 보약이 없다.
그런데 그 보약은 부작용을 잘 일으킨다는 단점이 있다. 착한 아빠를 악마로 만들 때가 있었다. 내가 어릴 땐 아빠 엄마가 참 자주 싸우셨다. 항상 그놈의 술이 문제였다.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들어오는 정도면 양반이다. 길가에 널브러진 아빠를 엄마가 찾으러 나가야 할 정도면 며칠 동안 집안 분위기는 싸늘한 냉동실로 변했다.
다행히 폭력이나 범죄와 연루되는 일은 없었지만 술을 먹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거나 죄 없는 엄마에게 욕설을 퍼부을 때도 있었다. 어린 시절 나는, 가정의 평화를 깨는 아빠의 술 때문에 엄마 아빠가 이혼을 하길 바랐던 적도 있었다. 그리고 그놈의 나쁜 술! 내가 모두 마셔서 이 세상에서 없애버리고 싶었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면서 엄마 아빠가 술로 싸우는 일이 사라졌다. 소주 3~4병은 거뜬하게 마시던 아빠가 이제 소주 반 병이면 잔을 내려놓는다. 난 드디어 아빠가 술에서 해방됐다고 기뻐했다. 그런데 희한한 일이 생겼다. 엄마가 자꾸만 아빠한테 술을 권하는 것이다.
친정에 갔을 때였다. 엄마는 내가 좋아하는 닭볶음탕을 팔팔 끓여 내오면서 아빠에게 치명적인 유혹의 한 마디를 건냈다.
“쐬주 한 잔 해야지~?”
“그래 갖고온나”
쿵작이 잘 맞는 두 사람. 나는 신경질적으로 그 둘 사이를 갈라놓았다.
“아빠 술 끊었는데 왜 자꾸 엄마는 술 먹으라고 해!”
“야~ 니네 아빠 유일한 낙인데 그걸 막으면 어떡하니”
“그럼 딱 한 병만이야!”
“니네 아빠 이제 늙어서 술도 많이 못 마셔 걱정 마”
아빠는 술을 일부러 줄인 게 아니었다. 나이가 들면서 몸이 버티지 못해 술잔을 내려놓았던 것이다. 누구보다 사정을 잘 아는 엄마는 젊은 시절 자신을 그렇게 괴롭히던 술이지만, 아빠가 자신의 ‘낙’을 지켜가길 바랐다. 부부란 그런 것일까. 당시 새파란 신혼이었던 나는 그 깊은 속내까지 헤아리기 어려웠다.
남남이었던 부부는 10년, 20년, 30년 함께 한 세월이 흐를수록 누구보다 서로를 잘 이해하게 됐다. 어떤 행동을 좋아하는지, 또 어떤 행동을 싫어하는지 뼛속까지 알게 됐다. 내가 좀 싫어도 상대방이 좋아한다면 맞춰주기도 한다. 그러면 상대방은 그 마음을 알아준다. 그렇게 서로가 서로에게 익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