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컬리 레시피
인생에 딱 2번. 배고파서 잠에서 깼다. 몇년 전 교정 나사를 조인 날, 아무것도 못 먹어서 깬 게 첫번째고 지금이 두번째다. 오늘은 어쩌다보니 딱 한끼만 먹었다. 괜찮았는데, 내일 점심 식사를 위해 장보고 밑준비를 다했을 때도 괜찮았는데.
넷플릭스에서 <삼겹살 랩소디>를 보고 자는 게 아니었나 보다. 삼굿마을의 돼지고기 요리를 보는 순간... 와... 눈이 번쩍 뜨니고 위장이 잠에서 깨어났다. 우리나라에 저런 핏마스터가 있었다니! 관광 상품으로 팔아도 될 정도로, 스토리가 있고 볼거리가 있는 마을 행사다. 내가 우물 안 개구리였다는 것을 이 프로그램을 통해서야 알게 되다니.. 작가 분들의 서치력에 자극을 받았다.
재미있게 보던 와중, 참숯 공정에서는 침샘이 폭발했다. 참숯 가마를 열 때 그 색감도 강렬한 붉은 색이라 너무 예쁘고, 특히나 돌을 예열하고 참숯을 내릴 때. 마치 예술 작품을 보는 것 같았다. 평소에 삼겹살을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삼겹살 랩소디>를 보니 엄청나게 먹고 싶어졌다. 이대로 가다간 삼겹살을 주문할 것 같아 자러 들어갔다.
선잠을 자다가 결국, 새벽 2시에 일어나 남편에게 말했다.
“배고파....”
라면을 먹고 싶었으나, 심야 셰프의 단호한 의지 덕분에 처음으로 남편표 국수를 영접했다. 재료는 소면, 소금, 양송이버섯 2개, 마늘 2알, 콩나물 조금, 다시마 1/5 조각, 그리고 멸치육수 에센스다.
냄비에 물을 5컵 넣고 다시마와 콩나물을 넣고 끓인다. 물이 파글파글 끓으면 다시마를 건져내고 요리 에센스를 조금 넣는다. 그리고 버섯과 마늘을 넣고 끓인다. 국물이 끓는 동안 다른 냄비에서는 소면을 끓인 뒤, 면이 익으면 찬물로 식혀준다.
국수가 완성되는 5분도 참을 수가 없었다. 내 배는 어서 빨리 음식을 대령하라며 호통치고 있었다. 나는 김을 꺼내 몇 조각 잘라 하정우도 울고 갈 만큼 맛있게 먹었다. 이성을 찾은 뒤, 접시 위에도 우리가 먹을 김을 꺼냈다.
참기름을 넣어 황금빛 자태를 자랑하는 남편표 국수. 한입 먹으니 김치 생각이 간절해서, 올해 김장 김치도 꺼냈다. 우리 집이 조금만 더 추웠다면, 한겨울 기차역에서 먹는 가락국수 맛이 났을 거다. 안경에 김은 서리지 않았지만, 속 편하고 고소한 맛이다.
콩알만큼 김치를 추가했다. 나는 맵찔이라 우리 집 김치도 맵다. 저 정도 양이면 국수 두 젓가락을 먹어야 진정된다. 여튼, 김치를 올리니 개-운한 맛이다. 내 위장 속의 지우개처럼 국수를 먹었다는 사실조차 잊게하는 매콤하고 깔끔한 맛이다.
그리고 여기에 나의 훼이보릿. 김을 싸서 드셔보세요. 김의 단맛이 김치의 매운 맛을 중화하고, 국수에 감칠맛을 더한다. 순정 국수 > 김치+국수 > 김+국수 조합은 버뮤다 위장지대라고 할 수 있다. 정신 차리고 보면 다시 순정 국수로 되돌아가있는, 빠져나올 수 없는 기적의 매직을 보여주니 말이다.
맛있으니까 다시 한번 얼빡샷. 앵글이 왜 이러냐고 하면.. 이때의 나는 내가 아니었으니까(쑻) 라는 말로 마무리하겠다. 속 편하고 고소한, 다양한 맛의 남편표 국수. 한 그릇 비우니 이게 복지고 평화다.
내일 점심은 우리 집 셰프님이 갑자기 꽂힌 스눕독 표 프라이드 치킨인데, 치킨 만들고 나면 왠지 그 다음은 <삼겹살 랩소디>에 나온 레시피를 따라해먹을 것 같다. 미리.. 재료를 준비해놔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