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도서관이 모두의 미래로
나만의 피정(避靜)이었던 1년은 허무하리만치 빨리 지나갔다.
계약 기간의 거의 끝무렵엔 연합회 회장님의 추천으로 다른 지역아동센터에 출근하게 되었다.
당연히 도서관은 이른 아침과 늦은 밤에 들러 자리를 정리하는 정도로만 숨이 이어졌다.
그 숨이 금세 끊어질 줄 알았는데, 나를 안쓰럽게 여겼는지 남편이 새로운 곳에 일터를 열며 10평을 넘겨주었다.
그곳에서 2년 정도 더 도서관 이름표를 달고 있을 수 있었다.
그러나 새로 연 도서관은 이미 내 색깔도 아니었고 직장에 다니느라 나조차 제대로 머물 수 없었다.
바깥의 간판마저 딱딱한 고딕체로 바뀌어서 내가 추구하던 '쉼표 있는' 도서관의 모습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나마 다행스러웠던 것은 아직도 누군가에게는 머무는 자리가 된다는 점이었다.
밖에서 간판을 보고 찾아주기도 했고, 다른 상가를 들렀던 사람들이 어떤 도서관인지 궁금해서 오기도 했다.
주인이 애정을 쏟을 수 없어도 여전히 쉼터로서의 역할을 한다는 게 기특했다.
남편의 일터가 매우 먼 지역으로 옮기게 되면서 이 도서관마저 완전히 문을 닫았다.
사실 <작은도서관, 들꽃>은 도서관으로서의 역할에 충실한 곳은 아니었다.
애초에 처음 시작할 때부터 거창한 목표를 세운 게 아니었다.
인생은 알 수 없어서 나의 상상을 초월하여 예측하지 못한 길로 열렸고, 그래서 기대보다 훨씬 더 많은 일을 했을 뿐이다.
그때 만나게 된 많은 인연들 중엔 깊은 마음을 나누는 친구가 된 분들도 많다.
그렇게 짧은 기간이었어도 이 도서관이 내게 남긴 영향력은 엄청나게 컸다.
우선 도서관을 연 것은 내 인생에서 오롯이 나를 위해서만 결정했던 일이었다.
누군가의 딸로, 누군가의 아내로, 누군가의 엄마로 사느라 결정했던 수많은 일들 중에서 정말 내 행복을 위해 선택한 것은 단연코 도서관이었다.
직업이나 진로 등 안정된 미래를 택하는 것이 아닌, 오직 내가 해 보고 싶고 나이가 들어도 하고 싶은 것은 작은도서관이었는데, 이것을 실제로 경험한 것이다.
'하고 싶다'와 '해 보았다'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바람과 소망을 직접 만지고 걷고 느껴 보았다는 경험은 그 크기에 상관없이 우리에게 전해주는 의미가 다르다.
내가 올해 도전한 것 중에 그와 비슷한 것이 있는데 그건 바로 전자책을 발간한 일이다.
10여 년 전에 책을 출간할 뻔하다가 표지를 앞두고 엎어진 일이 있었다.
마음으로는 다 지난 일이라며 털어냈지만 찜찜함은 남아 있었다.
추천사와 PDF 파일까지 다 나온 상태에서 책 제목만 정하면 될 단계까지 갔다가 엎어졌다.
그땐 해당 출판사의 무책임함 때문에 조금 화도 났고 서운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나고 보니 그것도 내겐 유익한 일이었다.
그래도 조금은 미련이 있었다.
그때 작업했던 원고는 아니지만 그 당시에 썼던 글을 골라서 전자책을 만들게 되었다.
겁이 많은 내가 자진해서 시작한 일이 아니었다.
블로그의 한 프로젝트에 참여하며 동기 부여를 하게 되고 함께 쓰는 이들과 독려하며 진행하였다.
그 프로젝트는 '나만의 책을 만들어보고 싶다'라는 소망을 직접 실현하는 경험이 되었다.
도서관을 경험하지 않았으면 그런 프로젝트에 먼저 신청할 용기를 내지 못했을 것이다.
그때의 경험이 나에겐 또 다른 바람과 소망을 시도할 수 있는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두 번째는 다시 꿈을 꾸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도서관을 하고 싶을 때 알게 된 것이 사서 자격증이었다.
그러나 이 자격증은 문헌정보학과를 나와야 가능했고, 심지어 온라인으로 공부할 수 있는 시스템이 아니었다.
그나마 사서 자격증을 받을 수 있는 학점제가 전국에 몇 군데 없었고 모두 오프로 참석해야만 했다.
그랬는데 작년부터 온라인 학점은행제로도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는 방법이 생겼단다.
올해에서야 그 방법을 알게 된 나는 가을부터 공부를 시작했다.
직장에 다니면서 공부를 병행한다는 게 쉽지 않다.
내년엔 한 두 과목으로 줄여서라도 끝을 맺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있다.
또 이 꿈을 품고 온라인 독서 모임에 계속 참여하는 중이다.
인근에서 활동하는 모임이 없어 부득이 온라인 모임에 참여하고 있는데 좋은 분들을 만나 '인생 독서'가 될 듯하다.
이 경험들은 나중에 도서관을 운영할 때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현재 일하는 곳에서의 경험도 다 유익한 일이 될 것이다.
결국 인생에서 겪는 수많은 사건과 사람들은 다 우리의 꿈을 이루는 것에 영양분이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무엇이든 소중하고 작은 일에도 감사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세 번째는 인생을 바라보는 유동적 시선이다.
내가 도서관을 열 수 있었던 것은 나의 간절한 바람도 있었지만 예상치 못한 전개도 한 몫했다.
도서관을 열려고 할 땐 나름 계획도 세웠지만 그 모습으로 진행되지 않았다.
오히려 세밀한 계획 앞에서 뒤로 걸어간 언니는 그때 열려고 했던 상담실이 아닌 다른 길로 들어섰다.
어쩌면 같이 하려고 했던 언니도 인생의 변수를 겪으며 자신만의 길을 발견하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나 또한 생각지도 못했던 길로 들어서며 도서관을 열게 되었고 아직도 그 꿈을 접지 않은 채 내 길을 걷고 있다.
인생은 알 수 없다.
그러니 남은 내 인생에서 또 다른 모습의 도서관을 열 수 있을지도 모른다.
<작은도서관, 들꽃>을 지금도 사랑하지만 꼭 그런 형태가 아니리라 상상해 본다.
작은도서관은 기본적으로 지역사회의 색깔을 가지고 시작할 것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터전에서 삶을 이어가고 있는 지금과 미래가 믹스되어 나만의 색을 입힌 작은도서관이 태어날 것이다.
우리에게는 모두 꿈이 있다.
아직은 꿈이 희미할 수도 있고 그 꿈을 만나지 못했을 수도 있다.
또 꿈이 눈에 보일 수도 있고 이제는 손에 잡히는 단계에 이르렀을 수도 있다.
꿈은 꿈이라서 꿈을 꿀 수도 있지만, 그 꿈이 현실이 되고 내 삶으로 쑤욱 들어올 수도 있다.
더 나아가 한 사람의 꿈이 모두의 미래로 확장될 수도 있다.
내 꿈은 나를 살리는가.
내 꿈은 다른 이도 살리는가.
내 꿈은 모두를 살아나게 하는 힘이 있는가.
꿈만 꾸다가 죽을 수도 있지만 꿈을 꾸다가 더 큰 꿈을 이룰 수도 있다.
그것이 양적인 성장이든 질적인 성숙이든 작은 씨앗이 큰 나무가 되어 많은 이에게 그늘을 선물해 줄 수 있다면.
우리는 그런 꿈을 소유한 것만으로도 이미 꿈을 이룬 것이다.
이제 직접 만져보고 결실을 거두는 것은 또 다른 맛이다.
당신의 꿈을 당신의 손으로 콕 찍어 꼭 맛보기를.
너무나도 멀고도 막연해 보이는 그 정상의 첫걸음은 생각보다 단순할 수 있다.
** 그동안 <나만의 작은도서관, 들꽃>을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소박한 도서관 이야기를 통해 여러분의 꿈을 한 번 더 기억하고 찾아가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