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커피 대체 음료
커피패치의 부작용이 속출함에 따라 커피 패치의 인기는 시들해져 갔다.
대신, 커피 대체 음료가 그 자리를 메웠다.
커피 대체음료란 커피의 핵심성분인 카페인과 커피가 주는 향과 맛을 인공적으로 되살려 조합해 만든 것으로
정부 식약청 산하 기관에서 연구 생산한 것이다.
'커피연구소' 정부는 식약청 산하 기관에 커피 연구소를 설립하여 발빠르게 커피 패치의 부작용에 대처했다.
그 곳에서 일하는 박철민 씨는 매일이 죽을 맛이었다.
야근을 밥먹듯이 하는 생활이었다.
위에서는 쪼아대고 아래에서는 살려달라고 아우성대고.
그야말로 '커피중독자'들을 구해내기 위해 정부와 산하기관에서 불철주야 일하고 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게 개발된 커피대체음료.
이것을 뭐라고 부를 것인가.
박철민씨는 잊지 못한다.
박철민씨 또한 지독한 커피 중독자였다.
예전같으면 밤을 지새울 때 먹었을 아메리카노를 만들기 위해 밤을 지새우는 형국이었다.
하지만, 커피가 주는 그 따스한 위안.
그 기분좋은 심장의 두근거림.
그것을 이 커피 대체 음료가 줄 수 있다면 뭔들 못하랴.
천재 박철민씨는 자진해서 '커피 연구소'에 들어온 케이스였다.
"제가 한 번 해 보겠습니다!"
박철민씨는 전에 일하던 연구소를 박차고 나라의 부름을 받아 커피 연구소에 들어온 인재 중의 인재였다.
드디어.
커피.
그야말로 책에서나 나올법한,
이제는 역사책에서나 나올법한
에디오피아 G1 원두를 대했을 때의 그 두근거림이란!
아니, 이게 아직도 남아 있었단 말이야?
박철민씨는 두 눈을 의심했다.
이미 없어진 지 오래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연구소장은 말을 이어갔다.
"네. 그렇습니다.
여러분 앞에 놓인 이 커피는 정부에서 특별히 우리 연구소에 내려준 귀하디 귀한 연구물입니다.
여러분은 이 커피에서
커피 카페인을 추출하고,
이를 인공적으로 배양하는 방법을 지금부터 연구해야 합니다."
커피 카페인의 추출이라.
그건 그렇게 어렵지 않아 보였다.
하지만 문제는 맛과 향이었다.
"네, 여러분이 우려하는 대로 커피 본연의 맛과 향을 되살려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주요 과제입니다.
그래서 다시 커피 소상공인들이 예전처럼 커피를 팔 수 있도록, 그리고 사람들이 다시 부작용 없이 커피를 즐길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여러분의 과업입니다."
꿀꺽!
아, 맛보고 싶다.
연구고 나발이고 그 전에 커피 좀 맛보고 싶다.
연구소장은 박철민씨의 마음을 읽었는지 옆의 조수에게 무엇을 귓속말로 지시했다.
그리고 박철민씨 앞에 주어진 에스프레소.
오마이갓!
박철민씨 역시 예전에 영선씨와 함께 산청에 있는 '지구별 여행자' 커피숍에 커피 투어를 했던 사람 중 한명이었다.
그때 이후로 에스프레소, 이런 진짜 에스프레소를 접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바로, 이 맛, 이 향이야.
한모금 마시고 박철민씨는 어지러움을 느꼈다.
갑자기 카페인이 들어오자 느껴지는 잠깐의 어지러움이었다.
하지만 곧
카페인 특유의 심장이 두근거리고 머리가 맑아지는 경험이 시작되었다.
아, 이
산미.
이 깊숙한 맛.
쌉싸름하면서 초콜렛맛이 나는 이 맛.
아프리카를 머금은 향긋한 과일향.
"네 그렇습니다."
갑자기 연구소장이 불쑥 치고 들어왔다.
"여러분은,
이 맛,
이 향,
이 카페인을
되살려야 하는 겁니다.
아시겠습니까?"
"네!"
박철민씨는 힘있게 대답했다.
그 후로 이어지는 야근.
하지만 그들에게만 연구 목적으로 실컷 에디오피아 커피를 만들수 있도록 커피가 주어졌다.
그러했기에 박철민씨는 몇날 며칠을,
아니 몇 달을 연구에 매진할 수 있었던 것이다.
"나왔습니다!"
박철민씨의 외침.
"나왔어요!"
모두는 박철민씨가 주는 음료를 마셔보았다.
"자네, 이게 지금까지 자네가 마셨던 그 수많은 에스프레소와 어디가 맛이 같다고 생각하나!"
연구부장의 지적이 송곳처럼 박철민씨의 가슴을 찔렀다.
아. 이런.
박철민씨의 혀는 어느새 에디오피아 커피 G1에 너무 길들여져 있어서,
둔감해져 있던 것이다.
그리하여 자신이 만든 커피 대체 음료의 맛을 에디오피아 커피인 것처럼 착각하는 지경에 이르렀던 것이었다.
"다시! 다시!"
연구부장은 사람들을 독려했다.
이제 설레발 떨지 말아야지.
박철민씨는 속으로 다짐했다.
손이 떨렸다.
아, 커피. 커피가 필요해.
하지만 너무 많은 커피를 마셔서 이제는 그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잖아.
내가 만든 커피조차도 지금 에디오피아 커피와 구별하지 못하는
이상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잖아.
참자, 참아.
과학적으로만 접근하자.
혀로 접근하지 말고.
그리하여 그때부터는 수식과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카페인 분자의 수식을 그대로 베껴내기.
그리고,
에디오피아 G1의 맛과 향을 수치화하기.
이 작업에 무게를 두고 연구가 진행되었다.
아니, 맛과 향을 어떻게 수치화한단 말인가.
해내야 했다.
이를 위해 고급 인력들은 에디오피아 에스프레소를 마시며 몇 달을 연구했다.
그리고 드디어!
에디오피차 G1을 그대로 복사한 커피 대체 음료가 개발되었다.
이번에는 틀림없었다.
정부에서는 랜덤으로 사람들을 모집하여 그 맛을 정확하게 테스트 하였다.
블라인드 테스트였다.
사람들은 에디오피아 G1커피와, 그리고 커피 대체 음료와 눈을 가리고 무엇이 커피 대체음료인지, 무엇이 진짜 에디오피아 G1커피인지를 구분해야만 했다.
그리고 그 결과 오십프로의 사람만이 진짜 에디오피아 G1커피를 구분해낼 수 있었다.
성공이었다!
곧 상용화가 이루어졌다.
정부에서는 이 원료를 커피 소상공인들에게 풀었다.
싼 값으로.
다시, 커피숍이 운영되기 시작했다.
이제 사람들은 커피 대체 음료를 커피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예전처럼 말이다.
그리고 연구소에서는 에디오피아 G1커피의 개발을 시작으로,
케냐 AAA와 같은 스페셜티 커피 복제에 들어갔다.
여기에는 브라질 콜롬비아 커피도 포함되어 있었따.
"와! 대박이다!"
처음 커피대체음료를 맛본 영선씨의 믿을 수 없다는 표정.
그도 그럴 것이
똑.같.았.던 것이다.
예전의 자신이 맛보았던 그 에스프레소와.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말이 안 돼!
기술력이 이렇게 좋아졌단 말인가.
역시 살기 좋은 대한민국이야.
대박!
다시금 커피숍이 활개를 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다시금 커피숍에서 커피를 즐기기 시작했다.
"아메리카노 주세요!"
하고 바리스타에게 말하면 바리스타는
대체 음료의 원액에다가 뜨거운 물을 부어서 손님에게 건넸다.
"G1주세요!"
하면 G1인공원액에 뜨거운 물을 부어서 손님에게 건넸다.
그리고 물론 딸기 라떼나 각종 과일 스무디는 예전 커피숍에서 팔았던 것처럼 그대로 바리스타의 몫이었다.
그렇게 커피숍이 운영되고 있었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풍경인가!
이것만 해도 살것 같았다.
역시 우리나라는 살기 좋은 나라였어.
곧 다른 나라들이 속속들이
우리나라의 원액 개발 기술을 배우러 견학을 왔다.
알게 모르게 커피 업계에서 한국의 위상이 점차 드높아져 가고 있었다.
실로 바람직한 현상이 아닐 수가 없었다.
커피 까짓 것 사람들은 점차 커피 없는 삶에 익숙해져 갔다.
누가 그랬더라.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라고.커피를 마시고 싶을 때면 화학적 성분의 조합에 의한 음료를 마시면 됐다.
그래.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야.
어느 상황이건, 어떤 환경이건 인간은 놀라운 적응력을 보이며 살아남았지.
커피가 없는 현실도 마찬가지였다.
영선씨도 언젠가부터 커피대체음료로 만족할 뿐이었다.
커피대체음료는 점차 커피의 없는 자리를 메워갔다.
다시 커피대체음료를 파는 커피 없는 커피숍이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커피 대체 음료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면서 커피의 빈자리를 채웠다.
커피대체원료도 상중하로 나누어져 어느 가게가 보다 더 질 좋은, 향이 풍부한 커피 대체 음료를 파는지에 따라 커피대체 음료 가격이 형성되었다.
이제는 사설 커피 연구소에서도 커피 대체 음료 연구를 대대적으로 시작해서 연구소끼리 상용화에 열을 올리며 경쟁 체제로 돌입했기 때문이다.
연구소가 돈을 못 번다는 말은 예전 말이었다.
커피 연구소들은 저마다 더 질 좋은, 향이 풍부한 커피 대체 음료를 만들어 내기 위해 사활을 걸며 눈에 불을 켜고 연구를 했다. 그리하여 질 좋은 커피 대체 음료들이 대거 등장했다.
어느새부터인가 사람들은 커피나무에서 재배되고 수확되어 로스팅 된 커피빈, 그로부터 나온 커피를 잊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자리를 커피대체음료가 완벽하게 채워가고 있었다.아니, 그렇다고 생각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