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다시
뉴스 속보입니다.
영선씨는 라디오를 들으며 운전을 하다가 갑자기 뉴스 속보라는 말에 볼륨을 올렸다.
한 손에는 아메리카노가 들려 있었다.
한때는 '커피 대체 음료 아메리카노'라고 불렸지만 이제는 다들 간편하게 ‘아메리카노’라고 부르고 있었다.
영선씨는 라디오에 귀를 기울였다.
"코카콜라에서 비밀리에 진행중이었던 프로젝트를 전격 발표했습니다. 오늘 에티오피아에서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코카콜라 측은 무성히 자란 커피 나무를 선보였습니다.”
오마이갓!
더 이상 커피나무가 나지 않는 걸로 알려진 에디오피아에서 커피나무 재배에 성공했다고?
그랬다.
이가 없으면 잇몸이라는 말을 코카콜라 CEO는 믿지 않았다.
그는 직진 타입이었다.
무조건!
커피는 커피다워야 해!
이것이 그의 모토였다.
이 참에 커피도 우리 회사가 맡도록 해야지.
그는 큰 그림을 그리고 있었던 것이다.
과연 코카콜라 최고 경영자 다운 배포가 아닐 수 없었다.
에디오피아에 서리가 내리고 더 이상 커피 수입이 어려워지자
그는 용단을 내렸다.
그는 직접 에디오피아에 가보기로 했다.
아니, 이게 왠일이야!
서리가 내려 하얗게 변한 커피 농장을 보고 그는 깜짝 놀랐지만 내색하지 않았따.
'오히려 하늘이 내게 주신 기회야!'
그는 이렇게 적극적인 인간이었던 것이다.
"당장 연구소를 설립해. 비밀리에."
그리하여 연구소가 에디오피아에 버려진 커피 농장에 설립되었다.
연구소인지 사람들이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겉보기엔 비닐하우스로 보였지만 그 안에서는 최첨단 기기와 장비들이 돌아가고 있었다.
그는 천문학적인 금액을 연구소에 퍼부었다.
"여기서!
여기서!
우리는 결단을 낸다!
여기서!
여기서!
다시 커피를 만든다.
반드시!
돈은 얼마든지 있다.
연구원들.
커피를 생산하시오."
그는 명령조로 딱딱하게 말했다.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하기라고 할 수밖에는 없는 명령이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있었다.
반드시, 이 토양.
에디오피아의 이 토양에서 재배되는 커피를 되살리려는 집념이 그의 마음 속을 가득 채우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철저한 통제 하에 에디오피아의 원래 습도와 온도를 연구실 안에 재현해 냈다.
그건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철저한 계산 아래 에디오피아에서 원두가 생산될 때의 온 습도를 재현하는 일은. 하지만 그가 누군가.
세계 콜라 1위의 위엄, 코카콜라의 사장 아니었던가!
연구원들은 일단 온습도를 재현해 내고 그 곳에 냉해로 죽어가는 나무를 심어보았다.
당연히,
나무는 자라지 않았다.
나무가 자랐다면 그게 오히려 더 이상한 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포기할 그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독자적으로 에디오피아의 커피 종자를 비밀리에 가지고 있었다.
아주 어렵게 입수한 에디오피아의 커피 종자였다.
어디서 난 커피 종자이냐고?
묻지 마시라.
그야말로
현지에서 거래에 거래, 암거래를 계속해서 천문학적인 가격으로 몰래 산 그런 커피 종자였던 것이다.
에디오피아의 산골짜기까지 가서 그들은 팔지 않겠다는
에디오피아의 커피 농장 농부에게 막대한 돈을 주어가며
설득과 설득, 협박까지하며
거액의 돈을 주고 커피 종자를 구해왔던 것이었다.
그 농부는 자신의 아버지에게
혹시라도 자연재해를 입게 될 날이 있을 수 있으니
항시 커피 종자를 준비하라는 말을 유언으로 듣고
착실히 커피 종자를 비밀리에 키워온 사람이었다.
하지만 어떤 경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에게 커피 종자가 있다는 게
코카콜라 측에 들어갔고
코카콜라 측은 거액의 돈을 싸들고 그 농부를 찾아갔던 것이다.
담판은 결코 쉽지 않았다.
하지만 결국은 코카콜라 측의 승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농부에게 커피 종자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냉해가 계속되는 이 날씨에
그는 커피 종자를 심을 기술력이 없었던 것이다.
그는 피눈물을 흘리며 커피 종자를 코카콜라 측에 넘겼다.
"잘부탁드립니다.
저희 아빠의 영혼이 담긴 나무입니다."
눈물을 흘리며.
하지만 그도 거액의 돈을 챙기게 되었으니 그리 나쁜 협상이었다고만은 볼 수 없다.
아무튼지 코카콜라 연구원들은 어렵게 가져온 그 커피나무 종자를
온습도를 맞춘 연구실 땅에 다시 심었다.
완벽한 조건에서의 실험이었다.
그러자,
그러자,
커피체리가 열렸다!
오마이갓!
"만세!"
연구원들은 모두 손을 들고 외쳤다.
"후레이, 후레이"
한국말로 하면 '만세, 만세!' 였다.
모두가 얼싸안고 휘파람을 부르고 춤을 추고 난리도 아니었다.
그들은 커피체리 나무가 열리고
커피를 첫 수확하던 그 날을 잊지 못한다.
드디어,
커피를 수확한 것이다.
그들 앞에 놓인 에디오피아 G1커피.
경건하게 마시는 그들의 표정은 설명하지 않아도 이미 상상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몸이 떨려오는 순간이었다.
기쁨에!
하지만, 그들이 들여온 커피종자의 양은 극히 적었다.
그들은 이 커피나무를 빨리 번식시키려고 노력했다.
다음은 속도와의 전쟁이었다.
코카콜라측은 더 많은 돈을 연구실에 쏟아부었다.
이번에는 양적 증진을 위한 투자였다.
얼른 커피나무를 증식시킬 것.
그리고 커피체리를 최대한으로 얻을 것.
에디오피아 전역에 허름한 하우스들이 생겨났다.
하지만 사실 그 허름한 하우스들은 외관만이 허름할 뿐이었지 속으로는 최첨단 기기와 장비가 갖추어진
코카콜라 회사만의 비밀병기 커피 연구소였던 것이다.
그 곳에서 그들은 커피나무를 키워내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렇게 연구하기를 삼년.
이제 세계에 선을 보여도 될만큼 커피나무가 무성해졌다.
그들은 이제 에디오피아 커피의 냉해 전 수확량의 약 칠십프로 정도를 생산해내고 있었다.
"우리가 해냈다!" 우리가 해냈어"
그들은 자부심에 넘쳐 손을 들고 환호했다.
가장 기뻐한 것은 역시 코카콜라 CEO 였다.
자신의 판단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했기 때문이었다.
“코카콜라 측은 방치된 에티오피아 커피 농장에다 비밀리에 연구소를 세우고 지난 삼년간 커피 나무 재배에 공을 들여온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리고 이제 커피 농장이 되살아났습니다.
이 커피 농장은 실외가 아닌 실내 농장으로 완벽한 온, 습도의 통제 하에 운영되며 아직은 극소량의 커피만 생산되고 있다고 코카 콜라 측은 발표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는 이 노하우를 에티오피아의 방치된 커피 농장에 적용해 다시금 에티오피아 커피의 융성을 이끌 거라고 CEO는 각오를 밝혔습니다.”
뉴스 앵커는 말했다.
오마이갓!
운전대를 잡은 영선씨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소식 들었어?
다시 에디오피아 커피 재배가 시작되었대.
역시 대기업은 대기업이야.
돈이 얼마나 들었을까.
영선씨 회사 직원들의 화제는 단연 에디오피아 커피나무였다.
그럼 우리 다시 마실 수 있는 거야?
아프리카 커피?
이딴 화학 커피 말고?
와.
사람들은 만세를 외쳤다.
한국의 커피 회사들은 저마다 앞다투어 코카콜라 측에서 커피를 들여오려고 경합을 벌였다.
다시금 커피가 야금야금 들어오기 시작했다.
한국에서도 다시 커피를 마실 수 있는 거야?
하지만.커피 값이 말도 못할 정도로 비쌌다.
그도 그럴 것이 에디오피아에서 생산되는 커피 콩의 양이 커피 인구 대비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커피는 우선적으로 미국, 유럽과 같은 선진국으로 수출되었다.
아무래도 구매력이 가장 높은 나라로 먼저 들어가기 마련인 것이다.
한국에도 커피콩이 들어왔다.
드디어 에디오피아 자연산 커피콩이 다시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오마이갓!
“코카콜라 농장에서 재배된 아메리카노 한 잔이 삼 만원에 팔리고 있습니다. 그것도 서울 일부 커피 매장에서만 구할 수 있습니다.
시민들은 커피를 마시려 아침 일곱시부터 커피숍 앞에 대기하고 있습니다.
이 중 일부는 텐트를 치고 노숙을 하기도 합니다.
사정이 이렇게 되자 아침 여덟시에 커피숍 문을 열자마자 대기표를 배부하는 매장도 생겼습니다.
문제는 새벽 여섯시에 도착해도 여덟시에 대기표를 받지 못해 돌아가야 하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대기표를 받지 못한 사람들은 분통을 터뜨리며 커피숍의 기물을 파손하는 사태가 발생하기도 하였습니다.
다음은 대기표를 받지 못한 시민과의 인터뷰를 진행해 보겠습니다.”
기자는 마이크를 시민에게 대어 주며 물었다.
“오늘 몇 시에 오셨나요?”
“아. 오늘 경기도에서 새벽 첫 5시차로 왔습니다. 커피 한 잔 마시려고요. 오늘 안쓰던 연차까지 내가면서요.
그런데. 그런데. 돌아가야 하다니.”
시민은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
“이런 안타까운 현실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이상 박재기 기자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