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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커피 전쟁 17화

커피 전쟁

17. 시위

“서울에서 대규모 궐기 대회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커피값을 안정화시켜달라는 시민 연합의 요구입니다.”





티비 스크린에서는 청와대 앞에 모여서 머리에 띠를 두른 사람들이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모여 있다.





“커피를 달라! 커피를 달라!”





사람들은 손을 휘두르며 농성을 했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 '영선'이 있었다.





티비 스크린으로 뉴스를 보던 기범씨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앉았다.





"아니, 저 여펀네가!"





오늘 친구와 약속이 있다고 나간 사람이 시위하러 가 있다니!





이런!





기범은 배신감에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저절로 발이 냉장고로 향했다.





코카콜라를 가지러.





영선의 일탈은 왜였을까.





에디오피아에서 커피가 재생산됨에 따라,





한국에서 한동안 유행하던 커피대체음료의 인기는 시들해져 있었다.





"어딘가 달라.





미묘하게 어딘가 달라."





마치 루이비통 A급 짝퉁과 진품의 차이처럼,





커피 대체음료와 코카콜라 연구진에서 재배한 진짜 에디오피아 커피 사이에는 아주 자그마한,





마치 실 한타래만한 차이가 있었다.





그것은 진품과 가품의 차이와도 같았다.





하지만





하지만,





커피매니아들은 이미 그 차이를 눈치채고 있었다.





그러나 그 사실을 눈치챘더라도 별 도리가 없었다.





한국으로 들어오는 에디오피아 커피는 너무나 한정적이었고 한국의 커피 매니아를 만족시키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게 사실이었다.





오마이갓!





먹을 수 있는 게 눈 앞에 있는데,





체해서 먹지 못하는 게 바로 이런 기분일까.





저기,





손닿을 만한 곳에 진품 커피가 있는데.





아, 마시고 싶다.





하지만 너무나 고가이고, 수입량은 제한되어 있었다.





그렇다면 코카콜라가 전세계에 커피를 수급하는 기준은 무엇이었을까.





당연히, 구매력이었다.





구매력이 높은 나라에 비싼 값으로 팔려는 게 팔고자 하는 사람의 심리 아니겠는가.





코카콜라 CEO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아무래도 구매력이 높은 미국이나 유럽에 커피 수급량이 많았다.





미국과 유럽 등지에 팔려나가는 커피 양은 전체 코카콜라가 생산하는 커피량의 약 칠십프로를 차지했다.





나머지 삼십프로가





한국이나 중국, 일본 등지에 팔려나갔다.





하지만 한국이 어떤 나라이던가.





일인당 커피 소비량이 세계에서 일위 아니던가.





한국에는 커피에 중독된 사람들이 많은 상황이었다.





인구밀도가 높은 한국.





이 한국에 공급되는 커피량은 한국의 커피 매니아들이 느끼기에 턱없이 작았던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시위에 나오게 되었다.





인터넷 커피 관련 커뮤니티를 바탕으로 '커피 궐기 대회'에 참여하고자 하는 사람들 모집 열풍이 불기 시작했다.





'국가에 건의합시다!'





'한국의 구매력은 미국과 유럽 등에 비해 딸리지 않습니다.





우리나라에 좀 더 많은 커피가 들어와야 합니다.'





'모입시다. 모여서 우리 의견을 국가에 전달합시다.'





순식간에 인터넷 커뮤니티는 들끓었다.





사람들의 함성이 마치 컴퓨터 모니터를 뚫고 나오는 것처럼 느껴졌다.





영선도 그 중 한명이었다.





뭔가 불합리해.





너무나 불합리해.





딱 한번,





영선은 긴 줄을 기다려 두시간만에 코카콜라에서 생산한 에디오피아 커피를 마신 적이 있다.





"바로 이 맛이야!"





"와! 이거였어. 이거!"





그 후로 커피 대체음료가 시들하게 느껴졌다.





그 신맛, 산미, 그리고 초콜렛 향기, 신선한 원두.





신선한 원두가 주는 그 맛을





커피 대체음료가 따라가기란 사실 부족함이 있는 게 사실이었다.





원두를 즉석에서 갈고,





그 과정에서 뿜어져 나오는 커피향.





그리고 신선한 원두만이 줄 수 있는 맛과 향을





커피대체음료의 원액이 전달해주기에는 한계가 있었던 것이다.





커피 대체음료는 원액에다가 뜨거운물, 또는 차가운 물을 부어서 커피 음료를 만드는 것으로





애초부터





커피 원두와의 싸움과는 승산이 없었다.





무조건,





커피 원두만이 줄 수 있는 그 신선함이 이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랄까.





특히나 커피매니아들에게는





원액에다가 물을 타먹는 커피대체음료가 더 이상 성이 차지 않았던 것이다.





다시금 생산되는 에디오피아 커피를 맛본 이상 말이다.





하지만 그 양은 턱없이 작았다.





한국에 배당되는 에디오피아 커피양은.





한국의 커피인구를 만족시키기에 역부족이었다.





그러하기에 사람들은





'시위'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해 자신의 의사를 정부에 전달하고자 한 것이다.





'나도 힘을 모아야 해.'





영선은 생각했다.





'우리나라의 국력은 이미 미국이나 유럽과 견주어 보아도 손색이 없을 정도야.





그런데 왜,





우리나라가 아시아에 있다는 그 이유로 커피량이 적게 수입되는 거 아닐까!'





영선은 의심했다.





사실 코카콜라가 전세계에 에디오피아산 커피를 수급하는 양의 기준은 절대 비밀로 부쳐져 있었다.





아무도 정말 그들이 어느 기준에서 어느 나라에 얼만큼의 커피를 공급하는지는 알지 못했다.





다만 앞서서 설명했듯이





대략적으로 그 나라의 구매력에 따라 결정되지 않을까,





하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지배적이었을 뿐이다.





그래서 음모론까지 등장할 정도였다.





'인종차별'





즉, 동양인들에게는 커피를 많이 공급하지 않고,





대신 서양인들에게만 커피를 많이 공급한다는 음모론까지 돌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래선 안 돼.





투명하게 밝혀야 돼.





하지만, 사실 사설회사인 코카콜라에서 어느 나라에 얼만큼의 커피 수급을 할지를





전세계에 밝힐 의무는 없었다.





아무튼지.





한국의 커피 매니아들이 들고 일어날 근거는 충분했다. 평소 시위에 전혀 관심없던 영선까지





빨간 두건을 매고 시위에 나설 정도라면 말이다.





그것도 남편인 기범에게 비밀로 하면서 말이다.





그럼 다시,





시위 현장으로 돌아가 보자.





기자가 커피시민연합의 대표자와 인터뷰를 진행하는 중.





“요구 사항이 무엇입니까?”





“저희는 커피를 사랑하는 사람들입니다. 더 이상 이 분통 터지는 상황을 눈 뜨고 볼 수가 없어서 거리로 나왔습니다.





저희가 원하는 건 단 하나입니다.





커피 한 잔입니다.





미국에서는 커피 한 잔에 10달러, 한국 돈으로 약 만이천원인데, 왜 우리나라에서는 극소수의 커피숍에서만 삼만원에, 그것도 새벽 여섯 시부터 줄을 서도 구할 수가 없는 건가요.





우리 나라의 국력이 이것밖에 안 됩니까.





왜 코카콜라에서는 우리나라에 이토록 커피를 적게 주는 겁니까.”





빨간 띠를 맨 커피 시민연합의 회장은 이어서 구호를 외쳤다.





"정부는 코카콜라를 상대로 더 많은 커피를 얻어내라! 얻어내라!"





그러자 곧 사람들이 떼창을 했다.





"얻어내라! 얻어내라!"





그리고 회장은 또 다른 구호를 연호했다.





"코카콜라는 전세계 커피 수급에 대한 정확한 기준을 공개하라! 공개하라!"





곧 이어지는 시위대들의 떼창.





"공개하라! 공개하라!"





미국에서는 커피 한 잔에 10달러인데





한국에서는 커피 한잔에 삼만원이라면





불평등한 게 사실이었다.





그만큼 미국과 유럽 등지에 들어가는 커피양이 많게 책정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저 시위대 가운데에 영선이 있었다.





무엇에라도 씌인 듯





"공개하라! 공개하라!"





하고 외치고 있는 영선.





저 목에선 핏줄.





그것을 본 기범은 경악했다.





"아니, 저 여자가 왜 저기에 있어."





자신을 속이고 시위대에 나갔다는 사실보다도





남편으로서 기범은 영선의 안위가 걱정되었다.





저러다가 무슨 일이라도 생긴다면!





얼른 집에 들어오지 않고 뭐해!





기범은 화면에다가 대고 외쳤다.





그리고 곧바로 영선의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었따.





하지만





하지만





전화 통화가 될리 만무했따.





이미 사람들은 흥분해 있었고,





그까짓 전화소리따위가 들릴 리 없었다.





"도대체 커피가 뭐라고."





기범씨는 한숨을 쉬었다.





기범씨에게는 저 모든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니,





한잔에 만원이면 어떻고





삼만원이면 어떻고





십만원이면 어떤가.





커피를 전혀 먹지 않는 기범에게는 마치 별나라에서 일어나는 그런 일처럼 느껴질 뿐이었다.





한마디로 전혀 상관없는 그런 일들이었다.





그리고 코카콜라라는 대형 기업을 상대로 정부가 커피값 협상을 진행한다는 것도 어딘가





이상하게 느껴졌다.





어떻게 얼마의 값으로 커피를 팔건,





그건 코카콜라가 알아서 정할 일이지





거기에 왜 정부가 개입해야 한단 말인가.





그건 자본주의의 원칙과도 맞지 않는 것 아닌가.





그리고 커피는 생필품도 아니잖아.





기호품이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기범씨에게는 이 모든 상황이





맘에 들지 않았다.





오히려 이 일에 정부가 개입한다면 그게 더 불합리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처럼,





커피를 아예 먹지 않는 사람도 많은데,





왜 정부가 나서서





이 일을 위해 노력해야 하는지.





기범씨에게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그저 영선씨가 안전하게 집에 돌아오기만을 바라는





마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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