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부작용
"여의도에 사는 김모씨가 커피 패치를 붙이고 정확히 48시간 만에 심장마비로 숨졌습니다. 유족은 정확한 사인 규명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김모씨는 평소 기저질환이 없었고 매우 건강했다고 유족은 전했습니다. 이상 박재기 기자였습니다."
이게 무슨 일이야!
영선은 아침 식사를 하며 뉴스를 보던 중이었다.
이 뜬금없는 소식에 영선은 그만 먹고 있던 소세지를 떨어뜨렸다. 마침 하얀 바지였다.
뜨아! 불길해!
당장 영선은 기범에게서 어제 받은 커피패치가 하나 있었다.
붙이자니 영 찜찜하고 안 붙이자니 더 찜찜했다. 그야말로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아오, 만들려면 제대로 만들 것이지. 아니 식약청 통과 했다며!"
영선은 커피패치를 노려보면서 괜히 투덜거렸다.
"왜 커피중독자님? 무슨 일이십니까?"
기범씨가 이죽거렸다.
"누가 커피 패치 마시고 죽었대. 심장마비로."
음. 당장 기범씨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럼 안되지. 이리 내놔. 압수야."
"아니야, 아니야. 나는 괜찮을 거야.
나는 원래 잔병이 없는 체질이니까. 겨울에 감기 한번 안 걸리는 체질이니까."
하지만 키가 크고 덩치가 큰 기범씨는 영선에게서 커피 패치를 빼앗아갔다.
"당분간 안 돼.
안전성이 완전히 담보될까지는 붙이면 안된다고.
오늘은 그냥 가."
으악!
괜히 입놀렸다가 커피 패치만 빼앗기고 말았어.
영선은 자신이 말실수를 했다고 생각했다.
아.
그정도로 그간의 커피패치를 붙인 효험은 기가 막혔다.
밤에 잠을 잘 잘 수 있으면서도 여섯시간동안 적당한 가슴두근거림과 함께 집중력이 최상으로 발휘되었던 것이다.
커피 패치를 붙이는 동안에.
하지만 압수라니.
이럴 수는 없지.
그렇다고 여기서 물러날 영선이 아니었다.
시무룩한 표정으로 차에 오른 영선은 커피패치가 없었던 때처럼
우울한 얼굴 표정을 하고 회사로 향했다.
'그까짓 커피 패치가 뭐라고. 내가 이 따위에 의존하면 안 되지.'
마음을 굳게 먹고 아침 업무를 시작했지만
벌써 확연히 어제와 컨디션이 다른 걸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어제처럼 힘이 나지 않았다.
이제 단순한 정신적 효과인건지, 아니면 커피패치가 가지고 있는 본연의 효과 때문인건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플라시보 효과 뭐 그런 건가.
영선은 되도록,
커피패치의 효과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려고 애쓰며 오전 업무에 집중하려고 애썼다.
하지만 그럴 수록 눈이 감기고 피곤한 건.
"영선씨!"
보다못한 부장이 영선을 불렀다.
순식간에 냉각된 사무실.
부장 역시 오늘 아침 패치를 붙이고 있지 않아 신경이 잔뜩 날카로워져 있었던 것이다.
그런 부장에게 꾸벅꾸벅 조는 모습을 걸린 영선.
오마이갓!
"지금 근무태도가 이게 뭡니까?"
부장이 차갑게 물었다.
"당장 인사고과 반영할까요?"
"죄, 죄송합니다.
당장 시정하겠습니다."
영선은 죄인처럼 고개를 조아렸다.
아. 안 돼.
내가 왜 이 모양이지.
그러면서 점심 시간에 커피 패치를 사러가야겠다는 생각만이 가득했다.
드디어 점심시간.
줄이 서 있으면 안 되는데.
커피 패치를 꼭 사가야 하는데.
성공해야 하는데.
오마이갓!
이번에는 신이 영선의 편이었다.
영선은 수월하게 커피 패치를 구할 수 있었다.
사람들이 목숨이 관련된 일이라면 몸을 사린다는 걸 영선은 그제야 깨달았다.
아무리 커피패치가 효과가 좋아도 그게 죽음에 이르는 길이라면 사람들은 붙이지 않는 걸 선택한다는 걸 말이다.
하지만 영선에게는,
커피 중독자인 영선에게는,
이제는 커피 패치 중독자인 영선에게는 그 어떤 말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쿵쿵쿵쿵쿵.
커피 패치를 붙이고 이분 후 심장 박동이 빨라지는 걸 확인한 후,
영선은 그제야 비로소 살 것 같았다.
에라, 죽으면 죽어야지.
이제야 오후 업무에 집중할 준비가 된 것이었다.
룰루랄라.
신이나서 사무실로 돌아오는 길.
광화문 거리 앞에서 영선은 시위떼를 발견했다.
"죽음을 부르는 커피 패치.정부는 정확한 사인을 공개하라."
빨간 띠를 두른 사람이 선창하자
약 사십여명의 사람들이
"공개하라, 공개하라!"
를 외쳤다.
영선의 가슴이 더욱 두근거렸다.
만약 이러다가 커피 패치를 아예 들여오는 걸 정부가 거부한다면?
오마이갓!
그럼 더 문제인데.
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네.
그날부터 커피 패치의 판매량은 눈에 띄게 줄어갔다.
보건복지부에서는 사인과 질병 간의 인과성을 부인했다.
"이런 썩을! 붙이고 건강한 사람이 갑자기 죽었는데 이게 어떻게 서로 관련성이 없는 일이야! 말도 안 돼!"
영선은 크게 고함을 쳤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보건복지부에서는 이 심장마비가 개인의 기저 질환에서 비롯된 일이라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정부의 그 말을 믿지 않았다.
그건 영선씨도 마찬가지였다.
커피 패치를 붙이고 나면 갑자기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두근거리는 심장은 마치 커피를 마시고 나서의 현상과 같지만 왠지 찜찜하다.
이게 화학적으로 커피 카페인을 추출해서 만들어진 게 영 찝찝하다.
커피 패치를 붙이면서도 불안한 마음을 감출 수 없다.
하지만 이미 중독이 된 영선씨는 붙이지 않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당장 붙이지 않았다가는 졸리고, 정신이 멍해지기 때문이다.
아, 미칠 노릇이네.
이 딜레마 속에서 영선은 붙이는 걸 선택했다.
다른 사람들도 딜레마를 겪기는 마찬가지이다.
아, 예전처럼 자연적으로 커피를 마시면서 커피의 효과를 누리면 얼마나 좋을까.
뭐든 자연적인게 최고여.
커피의 풍미와 맛. 그 속에서 자연스럽게 우러나는 카페인이 주는 효과. 근사한 가슴두근거림과 머리가 맑아지는 그 효과 말이다.
언제쯤 그럴 수 있을까.
그런 날이 오기는 한 걸까.
커피 패치를 거부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유족들은 반대 시위를 계속했고 이에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영선씨도 커피 패치를 붙이면서도 불안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이러다가 갑자기 심장마비 오는 거 아냐.
하지만 붙이고 나서 약 여섯 시간 동안은 커피 카페인이 주는 각성 효과를 누릴 수 있기 때문에 쉽사리 끊을 수도 없었다.
"이상하단 말야. 요즘따라 심장이 너무 두근거려."
영선씨는 기범씨에게 이 말을 하려다가 꿀꺽 삼켰다.
에이 그냥 하지 말자. 그랬다가는 커피 패치 붙이는 걸 가지고 또 뭐라고 할 게 분명해.
커피 패치의 효과는 여섯 시간이 최대치였지만 사람에 따라 잠을 잘 수 없을 만큼의 부작용을 겪는다는 사람도 생겼다.
"박재기 기자입니다. 오늘은 커피패치 부작용을 겪고 있다는 시민 한 분을 인터뷰해보기로 했습니다.
김모씨 이렇게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커피 패치는 얼마동안 사용하셨죠?"
"나온 후로 바로니까 약 한달 되었죠?"
어?
저 목소리는 어딘가 익숙한데?
영선씨는 저 모자이크 된 사람의 풍채와 목소리가 익숙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아, 맞다.
커피 패치 처음 붙이던 날.
룰루랄라.
좋다고 춤을 추던 바로 그 사람이었다.
그때 입었던 그 옷이었다. 하얀색 스트라이프 셔츠. 그리고 풍만한 저 허리.
영선씨는 귀를 기울였다.
"요새 잠이 통 오지 않습니다.
처음 커피 패치를 붙일 때는 이러지 않았어요.
잠도 잘 자고 그러면서도 업무 효과도 뛰어나게 올라가서 그야말로 더 이상 바랄바가 없었거든요.
그런데 한 이주 전부터 뜬눈입니다.
잠이 오질 않아요.
그렇다고 붙이지 않으려니, 영 불안하고 찝찝하고."
"많이 힘드시겠습니다. 여러가지 생각이 많으실 텐데요. 이렇게 힘드신 와중에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도대체 식약청은 무슨 근거로 이걸 허용한 거야.
시민들의 불만은 커져만 갔다.
정부를 불신하는 사람들은 늘어가고 있었다.
-커피 패치 붙이지 마세요. 죽음으로 가는 길입니다.-
이와 같은 현수막이 불법으로 게시되고 점차 부작용 사례가 속출하자 커피 패치의 인기는 시들해져 갔다.
사실 영선씨도 알게 모르게 불면증을 겪고 있었다.
오, 안 돼.
커피 패치를 붙이고 나서부터는 새벽 두시까지 잠이 오지 않았다.
그렇다고 이 커피패치를 붙이지 않으려니 그것은 그것대로 또 찝찝하고.
그야말로 환장할 노릇이었다.
그건 김부장도 마찬가지였다.
처음 커피패치가 나온 날.
그는 얼마나 환호에 차 있었던지 모른다.
"이게 왠일이야! 이게 왠일이야!"
부하 직원을 대하는 그의 태도도 부드럽기 그지 없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가 커피 패치의 도움을 받고 있다는 걸 눈치채고 있었다.
하지만 요새 그는 다시 날카로워졌다.
커피 패치를 붙이지 않았을 때처럼 말이다.
죽음과 바꿀 수는 없지.
커피패치 까짓 것.
김부장은 어깨에 붙인 커피 패치를 떼며 중얼거렸다.
아내와 아들을 떠올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