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굿 뉴스
“미국에서 백신이 개발되었습니다.이 백신을 맞으면 커피를 마신 것 과 같은 각성 효과를 누릴 수 있습니다.”
뉴스 속 앵커는 힘찬 목소리로 말했다.
“뭐, 커피 백신?”
영선씨는 아침을 먹으며 뉴스를 보다가 깜짝 놀라며 볼륨을 키웠다.
앵커에 따르면 커피 백신은 패치 형식으로 되어 있다고 한다.
이 패치를 붙이면 커피가 주는 각성효과를 최대 여섯 시간 누릴 수 있다고 했다.
“단 조건이 있습니다. FDA의 승인과 식약청의 승인을 통과하긴 했지만 아직 공급량이 턱없이 부족합니다. 그래서 하루에 일인당 한 개만 약국에서 살 수 있고 주민등록번호를 기재해야 합니다.”
하루에 하나씩이라.
영선씨는 오랜만에 심장이 뛰는 걸 느꼈다. 실로 아주 오랜만이었다.
오마이갓!
커피 백신이라니!
약국이 아침 아홉시부터니까 회사에 가야 해서 당장 오늘 아침에는 살 수가 없다.
어떻게 하지?
이따가 점심먹고 회사 근처에 있는 약국에 들러볼까?
영선씨는 마음 속에 계획을 세웠다.
룰루랄라.
이가 없으면 잇몸이라고, 지금 내가 그 상황이구나.
어떻게 생각하니 우습기도 하고
하지만 이게 어디냐.
이렇게 해서라도 커피 마시는 효과를 볼 수 있다니,
하고 생각이 들었다.
회사에 도착해서 사람들의 관심은 온통 커피 백신이었다.
"들었어요? 영선씨?"
영선씨가 지독한 커피 중독이라는 것을 아는 회사 사람들은 죄다 영선씨에게 한마디씩 말을 붙였다.
"네! 점심 시간에 사러 가려구요."
영선씨는 씩씩하게 대답했다.
이게 왠걸.
점심 식사도 거르고 도착한 회사 앞 약국.
벌써 백미터도 넘게 줄을 서 있는 이 현실.
오마이갓.
왔다갔다 하는 시간을 생각하면 약 삼십분 동안만 기다릴 수가 있다.
삼십분 안에 이 줄이 다 없어질 수 있을까.
아 왜 이렇게 가슴이 두근거리지.
아직 커피 패치도 붙이지 않았는데.
때마침 한 남자가 콧노래를 부르며 약국을 나오는 게 보였다.
사람들은 서로 눈치를 보느라 그 사람에게 말을 붙이지 않았다.
하지만 어디서 용기가 솟아났는지 갑자기 영선씨 입에서 말이 튀어나왔다.
"저, 저기요!"
그 사람은 놀라 영선씨를 쳐다보았다.
"붙이셨어요? 패치?"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영선씨가 물어보았다.
"네 받자마자 좀전에요."
남자는 순순하게 대답을 해주었다. 다행이었다.
"어떠세요?"
"음..... 아직은..... 잘 모르겠는데......."
남자의 말이 의미심장하게 끝났다.
에이.
그럼 그렇지.
영선이 막 실망하려는 순간.
"와, 와와와!!!!!!"
갑자기 그 남자가 실성한 것처럼 소리를 쳤다.
"와, 심장이 뛰어요. 빨리.
꼭 커피 마신 다음처럼요.
어?
어라?
신기하다.
머리가 머리가 맑아지는 이 느낌은 뭐지?"
남자는 신이나서 그 자리에서 막춤을 추었다.
"와, 이거 대박이에요. 대박!"
남자는 춤을 추며 사라졌다.
그리고 속속 약국을 나오는 사람들의 얼굴을 보니 그렇게 밝을 수가 없었다.
마치 세상을 다가진 듯한 그런 얼굴이었다.
뭐야,
이거 마약이야?
누군가는 이렇게 조그맣게 읊조리면서 지나가기도 했다.
어서 나도 붙여봤으면,
영선씨는 가슴을 졸이며 자기 차례가 다가오기만을 기다렸다.
얼른, 오후 업무가 시작되기 전에 커피 패치를 받아야 한다.
제발. 제발.
오마이갓!
신이시여, 절 도와주소서.
하지만 야속하게도, 이번에는 신이 영선의 편이 아니었다.
도무지 줄은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았고
점심시간이 끝나가고 있었던 것이다아!
오마이갓!
터덜터덜, 회사로 돌아가는 영선씨의 발걸음이 무거웠다.
"구했어?"
"영선씨 지금 붙인 거야?"
사무실 직원들이 모두 영선씨에게 물어보았지만 영선씨는 고개만 절래절래 흔들었다.
그러자 사람들은 눈치를 채고 더 이상 물어오지 않았다.
아.
답답해.
에라, 모르겠다.
씨씨티비에 찍히건 말건 탕비실에 있는 커피나 한잔 더 타먹어야겠다.
탕비실에 들어간 영선씨는 카누 한잔을 더 타먹었다.
원래 사람들에게 일인당 하나씩만 주어지는 거였지만 오늘 이거라도 마시지 않고서는 더 이상 오후 업무를 볼 마음이 생기지 않아서였다.
이거라도 마시니 조금이라도 살 것 같았다.
아. 열받아.
오늘 야근이네.
내일까지 마무리 할 일이 있어서 야근까지 해야 해 도무지 저녁에 문을 닫는 약국에 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답답한 마음으로 집에 돌아온 영선씨.
기범씨가 수줍게 뭔가를 내밀었다.
오마이갓!
'커피패치' 라고 쓰여져 있는 이 것!
기범씨가 구해다 준 것이었다.
영선씨는 오랜만에 기범씨에게 사랑이 퐁퐁 샘솟는 것을 느꼈다.
"자기야. 그동안 많이 힘들었지?"
아니, 이 인간이 뭘 잘못 먹은 걸까.
갑자기 왜 이러지.
영선씨는 의아해 하면서도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이거 어디서 난 거야?"
"어디서 나긴. 내 주민등록 번호 달고 약국에서 사온 거지.
오늘 자기가 야근이라서 밤에 시간 못내는 거 알고 있으니까."
역시 듬직해.
역시 내 남편이야.
그 둘은 오랜만에 뜨거운 밤을 보냈다.
그리고 다음날.
영선씨는 의기양양하게 어깨에다가 패치를 붙였다.
더 이상 아무것도 두렵지 않았다.
갑자기 가슴 속에서 용기가 솟아나는 것 같았다.
왜 그런지 자신도 모를 일이었다.
붙인지 약 이분쯤 지나자
어제 그 남자처럼 헛웃음이 나기 시작했다.
마치 커피를 마셨을 때처럼 가슴이 세차게 뛰는 것 아닌가.
오마이갓!
이건 마치 신세계!
왠일이야, 왠일!
그리고 머리도 맑아오고 기분도 좋아지고!
이건 정말 마약 같아.
진짜 커피 마신 효과 나잖아.
휘익 휘익!
절로 콧노래가 나오고 휘파람이 나왔다.
회사에 가는 길이 그렇게 신이 날 수가 없었다.
예전 같았으면 커피 없이 회사에 가는 길이 꾸역꾸역 고역스럽게만 느껴졌을 텐데, 이번은 달랐다.
커피 패치와 함께였기 때문이었다.
"붙였구나. 붙였어!"
영선의 밝아진 얼굴을 보자마자 회사 사람들이 저마다 한마디씩 건넸다.
"네. 붙였어요!
완전 짱이에요."
"나도 붙였어."
갑자기 부장이 끼어들었다.
어제 팀분위기를 급속도로 냉각시킨 부장.
하지만 오늘의 부장은 달랐다.
마치 달나라라도 다녀온듯한 저 기분좋은 자애로운 표정!
부장 역시도 지독한 커피 매니아였기에 커피 패치가 나오자마자 붙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 효과를 경험하자
이건 마치 하와이!
너무 좋아!
"와!"
영선과 부장은 갑자기 하이파이브를 했다.
그래놓고 갑자기 머쓱해지는 걸 느낀 그들은 순식간에 떨어졌다.
그 정도로 커피패치는 사람들을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특히 기존의 커피매니아들에게는 그 어떤 것과 비교할 수도 없는 그런 정부에서 내려온 선물이 아닐 수가 없었다.
기범씨는 커피를 마시지 않으니까 자신의 몫을 꼬박꼬박 타다가 영선씨에게 주었다.
그래서 영선씨는 하루에 두개씩을 탈 수 있었다.
너무 좋아!
부부애가 갑자기 끈끈해지는 그런 느낌이었다.
커피패치는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회사원들은 커피를 마시는 대신에 이 패치를 팔뚝에 붙였다.
뉴스에서는 '커피패치'에 대해 연일 보도를 해댔다.
"박재기 기자입니다. 커피 패치를 사용한지 며칠째 되셨나요?"
"지금 일주일째입니다."
약국 앞에서 한 시민이 기자와 인터뷰 하는 장면이었다.
"어떠신가요? 그동안 사용하신 소감이? 정말 효과가 있습니까?"
"말해뭐해! 입니다. 그야말로 지금처럼 정부에게 감사한 적이 이 사십평생 살면서 한번도 없었습니다. 그 정도로 정부에게 감사해 하고 있습니다."
그는 "만세! 만세!"를 외치며 방방 뛰었다.
그러자 그를 따라서 한 줄로 길게 늘어선 사람들 모두 박수를 치거나 손을 흔들어 찬성의 뜻을 표했다.
어떤 사람은 휘파람을 불기도 했다.
"자. 더 이상 인터뷰가 어려울 정도입니다. 이 정도로 시민들은 커피 패치에 만족해하고 있습니다.
그 동안 커피 없이 살아야 했던 시민들이 이렇게 기뻐하고 있습니다.
여기까지 전해드리겠습니다."
정부의 인기도와 지지도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갔다.
그도 그럴 것이 이스라엘에서 처음으로 발명된 커피 패치를 이번 정부가 발빠르게 사들여서 한국에 들여온 것이기 때문이었다.
와, 대박!
역시 한국은 빨라.
인터넷도 빠르고, 대응 속도도 빨라!
미국 전역에도, 유럽 전역에도 커피 패치가 모두 팔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한국에서의 팔리는 속도를 따라잡지는 못했다.
뭐든, 속도라면 한국사람을 따라잡기는 어려운 법이다.
아무튼지.
커피중독자들은 약국 앞에 줄을 서 마치 성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루하루 만나를 채취하듯 경건하게 패치를 받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