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소희 작가, ‘엄마의 20년’

오소희 작가, ‘엄마의 20년’


“난 요즘 내가 없어지는 기분이야.”

스무 살 초반에 결혼해 지금 고등학생 두 명의 자녀를 둔 친구의 푸념이다. 이 친구와는 중학교 동창이었는데 몇 년 전 우연히 헬스클럽에서 만나 연락을 주고받고 있다.

“세 명이 식사 시간이 다 다르니 밥을 하루에 몇 번 차리나 싶어. 방학이라 첫째는 학원 갔다 오후 한시에, 둘째는 두 시에, 학원 출근 전에 벌써 몸이 녹초야. 언제까지 김씨들 뒷바라지 해줘야 하나, 몸이 힘드니 자꾸 억울하단 생각이 들어.”

친구는 공부방에서 시작해 지금은 학원을 운영 중이다.

“올해만 고생해. 첫째 올해 고 삼이잖아. 그럼 내년엔 둘째만 신경 쓰면 되고. 둘째도 시험 보려면 한 삼년 남았네. 애들 대학 들어가면 좀 편해질 거야.”

위로랍시고 한 말이었다. 하지만 전혀 위로가 되지 않는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이건 그저 친구의 몫, 친구가 견뎌내야 할 종류의 아픔이란 걸, 그 누가 어떤 말을 해도 친구의 지친 마음을 도와 줄 수 없다는 걸 말이다.

하지만 마음 한 편으론 친구를 이해할 수 없었다. 나라면 고등학생이 되면 자기 밥 정도는 자기가 차려먹게 할 거 같다. 친구처럼 도저히 세 끼를 다 차려주고 싶지는 않다. 그 정도 자립심은 길러줘야지 않겠는가.

학생들의 손과 발을 잘라버리는 지금의 교육 시스템. 뭔가를 체험하거나 하면서 자신의 길을 탐색할 틈도 없이 아이들은 중 고등학교 육년간 지식을 주입 받는다. 그리고 모든 과목을 고루 잘해야지만 명문대에 갈 수 있다. 나뿐 아니라 우리는 모두 케케묵은 교육 시스템이 개개인의 창의성을 짓밟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모두 아닌 것처럼 ‘쉬쉬’한다. 마치 방안의 코끼리를 모두 못 본 척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건 지금의 교육 시스템이 그래도 한국의 상위 계층에 발 올릴 수 있는 유일한 발판이 되어주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많은 엄마들이 아이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자신의 삶’을 희생한다. 밤낮없이 자신의 노동력을 갈아 넣어 자식을 보필한다. 이는 거대한 사교육 시장과도 연계되어 있다. 학교에서 받은 교육으로는 상위 일 프로 안에 들지 못한다는 생각으로 엄마들끼리 모여 정보를 공유하고 혹여 자신만 정보에 뒤처지지 않을까 노심초사한다.

나는 현재 영어 강사로 일하고 있어서 누구보다도 영어 사교육 시장의 한복판에 서 있다고 볼 수 있다. 엄마들의 치맛바람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다. 영어 유치원부터 시작하는 아이들은 영어 사교육에 있어서 우스갯말로 성골, 또는 진골이라 볼 수 있다. 일단 영어 유치원부터 시작하는 아이들은 발음이 좋다. 어릴수록 영어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습성이 있어서인지 버터를 바른 것 같은 발음 구사를 하게 된다. 영어유치원은 기본적인 유치원의 커리큘럼을 가지고 원어민 선생님과 수업한다고 보면 된다. 원어민 선생님과 소풍도 가고 체험학습도 하며 점심도 원에서 먹는다. 한국인 선생님은 상담 등 보조적인 역할을 한다.

가장 영어 몰입 교육에 적합한 모델이다. 하루 한나절 오전 동안 영어를 실제로 접하고 쓰면서 보내기 때문이다. 내가 본 바로는 일단 정확한 발음을 구사할 수 있고 영어 노출 시간이 길다는 데에 긍정적인 점수를 주고 싶다. 실제로 발표회를 해 보면 유치원 아이들의 발음이 가장 좋다는 걸 알 수 있다.

이 아이들은 유치원을 졸업하게 되면 그들만의 리그에서 원어민과 함께 하루 두 시간 영어원서를 공부하게 된다. 하지만 아직은 영어 원서를 공부할 정도의 언어 습득력은 갖추지 못한 상태이다. 그래서 어느 학원에서는 매 시간 수업 전 단어만큼은 한국어로 공부하고 시험을 본다. 일종의 타협을 하는 셈이다. 엄마들은 학원에서 보는 시험 결과에 따라 울고 웃는다. 그리고 학원에 컴플레인을 걸기도 한다. “영어유치원에서부터 아이에게 이렇게 쏟아 부었는데도 성적이 이 모양인가요?”

영어유치원부터 시작하는 아이들은 영어에 대한 강박을 가질 확률이 높다. 부모의 기대는 아이가 영어로 의사소통하고 원서를 읽는 걸 원하는데, 거기에 따라주지 못하는 경우 좌절이 동반되기 쉽고 부모의 좌절은 아이에게로 전이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어를 영어로 배운다는 굉장한 메리트가 있기에 영어 유치원은 오늘도 꽉꽉 차 있다.

자기 아이의 삶에 자신을 갈아 넣는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자기 자신이 없어지고 누구누구의 엄마로 살아가는 느낌이다’라고.

그런 사람에게 오소희 작가의 ‘엄마의 20년’이란 책을 권한다. 이 책의 저자는 아기가 세 살 때부터 함께 국외 여행을 다니면서 길 위에서 세상의 수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그녀의 아들은 한국의 입시 제도에 물들지 않고 혼자서 자신의 길을 개척한다. 엄마와 아프리카 여행 후 책을 쓰고 그 인세를 기부해서 제 3세계 청소년들을 위한 도서관을 짓기 시작하고 발런 트래블링이란 봉사 프로그램을 만들어 발리 현재의 아이들에게 대학 장학금, 음악, 공연, 영어와 컴퓨터 수업 등 다양한 교육적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국제학을 전공해서 제 3세계 아이들에게 교육 환경을 제공하고 싶다는 진로 설계도 스스로 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그 책을 읽고 깨달았다. 어쩌면 이 미친 입시 제도를 변화시킬 수 있는 주체가 엄마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어 있는 엄마들. 눈 딱 감고 12년 고생하면 다 잘 될 수 있어, 하는 악마의 속삭임에 단호하게 아니요, 를 외치는 엄마들. 자신의 아이에게 적합한 길, 그리고 아이가 자신의 길을 닦아가며 체험할 수 있도록 지원해 주는 그런 엄마들 말이다.

같은 이유로 나는 내 둘째 언니의 양육 방식을 지지한다. 언니는 조카가 초등학교 때 ‘합창단’에 들어가고 싶다고 했을 때도, 방학 때 필리핀으로 ‘단기 선교’를 가고 싶다고 했을 때도 아이의 말에 따라주었다. 다른 학생들이 학원에서 한창 공부 중인 중 삼 때 ‘단기 선교’를 보낸 것이다. 고등학교 진로에 대해서도 아이와 허심탄회하게 서로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난 이 아이가 최소한 마음이 건강하고 마음 밭이 큰 아이로 자랄 것을 믿는다.

이제는 머리만 비대하게 큰 아이가 아닌, 손도 발도 마음도 튼튼한 아이로 키워야 되지 않을까. 온종일 학교와 학원 수업에 지쳐 비리비리하게 힘없이 집으로 돌아가는 아이들이 안쓰럽다. 또한 그런 아이를 종일 기다리고 있을 엄마들도 맘 고생하는 모습이 참 안타깝다.

친구의 마지막 말이 맴돈다.

“대학 가면 과연 끝일까? 월세에 용돈에 돈 더 많이 든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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