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뭘 그렇게 걱정해. 내가 있는데.
삼년동안 연애를 했더니 역시 내 얼굴을 보기만 해도 어떤 마음인지 아는가 보다. 걱정은 격정을 낳는지 오늘 난 남자친구를 먼저 덮쳐버렸다.
-그럼 이따가 봐.
그래. 각자 돌아가서 부모님과 함께 상견례 장소에서 만나기로 했다.
-엄마, 이상한 소리 하면 안 돼! 알겠지?
난 엄마에게 신신당부를 했다. 엄마는 어린 애처럼 입을 삐죽거렸다.
-내가 무슨 소리를 한다고 그래.
정말 무사히 지나갈 수 있을까. 엄마 대 엄마. 아빠 대 아빠.
경기가 시작되었다. 일라운드는 게살 수프 경연장.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서로 정중히 인사를 하고 경기가 시작되었다.
-알다시피, 우리 애는 지금 별 결혼 생각이 없었는데 이서방이 자꾸만 졸라서 이렇게 되었네요. 엄마가 선방을 날렸다.
-조르다니요. 지들은 나이 안 먹나요? 2세를 생각해보세요. 여자 나이 서른 둘이면 뭐 이른 건 아니죠.
그의 어머니가 방어를 하면서 잽을 날렸다. 경기장이 후끈 달아올랐다. 선수들은 하하호호 웃고 있었지만 보는 사람들은 긴장해서 수프를 먹을 수도 없었다.
그 순간 문이 열리더니 한 남자가 들어왔다. 멀끔한 수트에 훈남이었다.
-아, 제가 좀 늦었네요. 순식간에 시선이 그에게로 꽂혔다.
-안녕하십니까. 상견례 사회를 맡은 김희준이라고 합니다.
-사회라고요? 엄마가 되물었다.
-네 저희 북경반점에서는 특별히 상견례 사회를 도와드리고 있습니다. 돌잔치에 가서 보셨죠? 사회자가 진행하는 거. 제가 그걸 한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이제 저한테 다 맡겨주세요. 제가 매끄럽게 두 가정의 의견을 절충시키면서 합의점을 찾아볼테니까요. 수프 마저 드시면서 편안한 마음으로 말씀 나누시면 됩니다. 보세요, 사랑하는 아드님 따님 지금 벌벌 떨면서 수프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머니 한복 너무 고우시다! 어머님이 한 번 더 시집 가셔도 되겠어요.
사회자가 우리 엄마에게 아부를 했다.
-잘 알죠. 여기 사돈 되실 분께 예의를 다하려고 하시는 그 마음. 너무 잘 압니다. 아드님 어머니도 오늘 신경 많이 쓰셨네요. 머리도 새로 하시구요. 제가 특별히 연주 한번 하겠습니다. 두 가정을 위해서요.
그가 색소폰을 꺼냈다. 그리고 아빠가 제일 좋아하는 나훈아의 '고장난 시계'를 불었다. 두 아빠의 얼굴이 활짝 폈다. 두 번째 요리가 들어왔다. 팔보채였다.
-두 분이 정말 환상적으로 잘 어울리시네요.
의례적인 말인 줄 알면서도 기분이 좋아졌다.
-결혼은 가족과 가족의 만남이기도 하지만, 우선적으로는 두 사람의 결합이지요. 이 둘이 이 수억 만명의 사람들 가운데 만났다는 거. 이건 기적입니다. 가족 분들은 이 둘의 결혼을 지지하시죠? 어떠세요, 어머니. 어머나, 누나라고 해도 되겠어.
사회자가 엄마의 어깨를 치면서 호들갑을 떨었다.
-뭐, 둘이 좋다면야. 호석이가 결혼하자고 얼마나 야단을 했는지 알아요? 아유 정말 우리 딸 뺏기는 기분이야.
헉. 난 아무도 모르게 엄마의 무릎을 쳤다.
-뺏기다니요. 우리 호석이가 어디가 빠질 때가 있어서요? 성실하고 돈 잘 벌죠.
-우리 민서는 대학원까지 나왔다구요.
-부모 등골 빼먹으셨겠네요. 우리 호석이는 일찌감치 취직해서 지금 벌써 대리잖아요. 민서는 뚜렷한 직업도 없고. 뭐, 그림 그리는 게 대학원 나왔다고 뭐가 되나요?
그때 사회자가 끼어들었다.
-어머님들. 제 말씀 좀 들어보세요. 저는요, 두 가정이 부럽습니다. 어렸을 때 부모님이 돌아가셨어요. 안 해본 거 없이 자라서 지금 이렇게 삽니다. 사위는 돈 잘 벌고 며느리는 똑똑하고. 서로 장점이 있지요? 그래서 두 분이 만난 겁니다. 퍼즐처럼 맞는 거예요.
장내가 숙연해졌다. 그 후론 일사천리였다. 엄마와 장래 시어머니는 혼수품과 신혼집 문제도 정리했다. 다행히 웃으면서 두 가정은 헤어졌다.
'고마워'
집에 돌아와 그에게 메세지를 보냈다.
'뭘. 행복하게 잘 살아. 내가 해 줄 수 있는 건 해줘야지. 내가 갑자기 커밍아웃했을 때를 생각하면 이걸로도 부족하지.'
그에게서 답이 왔다.
'네가 친구라서 참 좋다. 드레스도 같이 보러가 줄래?'
'알겠어. 내가 감각 있는 거 기억하는구나?'
'부모님 얘긴 처음 듣는 건데. 그동안 내가 몰랐구나.'
아까 그가 부모님이 안 계시다고 한 게 마음에 걸려 물었다.
'어머. 뭘 모르네. 한 번 놀러 와라. 우리 엄마도 너 보고 싶어 하실 거다.'
아이구.
'이제 좀 쉬어. 그리고 네 남편 멋지던걸. 내 타입은 아니지만. 내 타입 아닌 걸 다행으로 생각해라.'
그 문자를 끝으로 난 잠에 빠져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