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윈디 Sep 04. 2024

미오기전 2

세상의 밥 한 공기

미오기언니 저랑 조금은 나이차가 나지만 저도 고무신을 신고 다녔어요. 지금도 발볼이 넓은 것은 고무신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릴 때 피부는 하얗고 뽀얘서 시커먼 아이들 속에서 이쁘다는 말을 들었어요. 세상에서 제가 제일 이쁜 사람인 줄 알았는데 우물이 좁으면 오히려 착각하고 자만하기 쉽다는 것을 그 경험으로 깨달았지요. 


핸드백 속에 소주잔은 왜 들고 다니게 됐는지 진짜 궁금했어요. 회식 날이라 소주잔을 가지고 온 건지 원래 가지고 다니다가 회식날인지 텀블러 들고 다니듯 소주잔을 들고 다니는 건지.. 그 웃기는 이야기 뒤로 "가끔 아버지와 대작하는 꿈을 꾸었다"라고 무심히 적은 한 줄에 또 심장이 아려왔어요. '주정뱅이 김 씨의 딸'로 불려지는 것을 알게 된 그런 날 밤에 자려고 누워서 눈물을 흘리지는 않았는지요. 반듯이 누우면 눈물이 귀속으로 들어가는 그런 울음이요.. 그런 상상을 한 후 "내 꿈은 평범해지는 겁니다"라는 글을 읽으니 평범한 가정집에 사는 것이 내 꿈이었다는 것을 떠올립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클래식을 처음 만났다고 한 그 수녀원의 풍경이 익숙합니다. 저는 모차르트를 처음 알게 되었는데 음악 교과서에 모차르트 41번이 있었고 그 곡이 참 좋았습니다. 유독 고마운 사람들을 많이 떠올린 <음악은 어디로 가는가>의 수녀원 회색 눈의 신부, 동네 이층 집에 사는 친구, 친구의 엄마.. 모두 음악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사람들이지만 '꼬집힌 풋사랑' 아버지의 그리움으로 닿는 그 별을 보는 마음이 서러워졌답니다.


초등학생 때 제 기억은 쉬는 시간만 되면 반 아이들은 모두 밖으로 나가 놀았습니다. 저는 함께 놀지를 못했고 자발적 왕따로 혼자 교실에서 책을 읽었지요. 학급문고에 있었던 북유럽동화집, 서유럽동화집 이런 문고는 다시 만나고 싶지만 아직 인연이 닿지 못했습니다. 하굣길에 친구들은 모두 신나서 집엘 가는데 나는 집이 가기 싫어서 더 먼 길을 돌아갔고 중학교 때는 대반동 바닷가를 하염없이 걷다가 해 질 무렵 노을을 쳐다보고 갔답니다. 


 저는 귀신을 한 번도 본 적은 없지만  귀신 이야기를 해주는 어른의 이야기를 책처럼 꼭꼭 받아들인 적은 있답니다. 그 나무 대문 집의 여자는 서 있다가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방문을 열고 나가"며 앞 날을 돌봐줄 거라고 속으로 속으로 말했을 것 같아요. 너도 혼자 울던 시절이 많았을 텐데, 아무도 달래주는 사람 없었고, 우는 줄도 몰랐을 텐데 내가 너를 도와주겠다고.... 

 귀신이 떠나간 후 "당신은 누구냐고 물었어야 했다"라고 "누군가 울면 가슴부터 미어"지는 미오기 언니. 그런 언니이기에 다른 자리에서 봤으면서 인사를 드려본 적도 없는 제가 고립된 섬에 있는 심정으로 북토크 요청을 드렸기에 흔쾌히 와주셨고 응원해 주셨지요. 단순히 북토크를 위한 북토크를 해본 적이 없습니다.  제가 읽고 더 많이 알리고픈 분. 그래서 사람들이 마음에 힘을 얻기를 바라는 것이 제가 주관하는 북토크의 중요한 주제랍니다. 교보문고 북토크에서 그 많은 사람들을 보고 더욱 한평에서 북토크를 하는 것은, 또 이제 이곳은 부동산에 내놓은 곳인데 괜히 북토크를... 이렇게 생각하다가 하게 된 무엇보다 제 마음을 살린 책에 대한 의식이었던 것입니다. 어쩌면 그 귀신이 이런 마음이 들게 연결한 건 아닐까요?


"엄마와 형제들은 빚을 갚던 날 저녁을 먹다가 울먹였는데" 아버지를 생각했지요. 공장을 운영하시고 특허를 많이 내시고 용접하는 것을 알려준 아빠. 술에 취해 쓰러진 아빠를 챙기면서도 가사를 익혔을 미오기 언니. 배움의 인식을 물려준 아빠를 빚을 다 갚는 날 떠 올린 건 아닌지요. 그럼에도 현실과 비현실의 세계의 균형을 잡아 "가난한 건 그들의 의식이었다"라고 일침 하니 저도 별표 표시로 이렇게 적었습니다.

"가난한 건 나의 의식 문제. 반성하자!"라고.


제가 완전히 이 책에 빠지게 된 건 애숙이 언니가 나오는 세상의 밥 한 공기입니다.

꼭 나를 위해 만든 책 서술한 문장 같았습니다.

"어느 날 아침 몸이 무거워서 일어날 수가 없었다. 그대로 혼곤한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계속 자고 또 자고 눈을 떴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그때 나는 죽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지만 움직일 수가 없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나는 사흘을 앓았다" 

저는 사흘을 심하게 아픈 후 회복이 느려 6월과 7월 사이의 한 달을 아팠지요. 이 책이 없었다면 정말 상가가 아직 안 나갔어도 그대로 문을 닫았을 겁니다. 이 책이 아니었다면!.  저는 언젠가 안드레아 수녀님이 보내줬던 냉동실의 누룽지를 먹으며 되살아났답니다.


미오기 언니. 

언니는 지나간 과거를 성찰합니다.

"그때 왜 나는 두 살이나 더 많은 여자에게 언니라고 부르지 않았던 걸까? 직업이 그래서? 생각 없이 사는 무뇌충 같아서?"

이 책 전체의 내용이지만 두 번째 읽으며 결국 못 참고 형광펜으로 밑줄을 긋고 '인간성'이라고 적어둔 문장을 옮겨봅니다.

"나는 내가 살아온 것이 나 혼자의 힘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안다. 술집 여자의 밥 한 공기 같은 도움을 알게 모르게 받고 살았다. 내가 사람의 직업이나 계층을 보지 않고 인간성을 보게 된 것도 그때부터였다"


저는 이 때  당시 기억으로 "시" 자가 들어간 어떤 시인의 집에서 식모살이를 했던 애란 언니를 떠올렸습니다. 대반동 바닷가에서 올라간 골목에 있는 어떤 집을 찾아간 적이 있었답니다. 나도 너무 힘들어서 나가서 살고 싶은데 어떻게 사는지 궁금해서 찾아갔던 언니. 

불을 꺼야 하는 방 대신 복도 불빛이 들어오는 문틈을 이용해 영어단어를 개알같이 붙여두고 공부하던 언니였는데... 찾을 수 있는 분들은 찾아가 인사를 드렸는데 애란이 언니 같은 사람은 찾을 수가 없답니다.


언니는 지나간 과거의 고마움을 영적으로 승화시켜 축복을 빕니다.

"당신에게 하느님의 축복을.

 세상의 모든 애숙이에게 축복을"

저도 "어디서 무엇이 되어 살고 있을지 모를 그녀를 위해 기도"합니다.



P.S 

미오기 언니 어제 쓴 편지에 바로 답장으로 보고 싶다고, 밥 먹자고 해서 고마웠어요.

근데 저는 좋지만 너무 많이 말하지는 마세요. 말한 거 지키고 사느라 너무 힘들잖아요.

저는 말을 하고 지키느라 특히 술 먹고 한 말 지키느라 좀 힘들게 살았던 것 같아요. 

아. 그런데 제가 깜박했네요! 저랑은 사랑의 크기가 다르다는 것을!

꼭 함께 밥 먹어요! 



이전 02화 미오기전 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