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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윈디 Sep 03. 2024

미오기전 1

김 여사 해탈기

뼛속깊이 파고드는 책을 두 권이나 낸 미오기 언니에게     

미오기 언니!  피로는 좀 풀리셨는지요.  저도 운전이  힘든데 여기저기 변방의 책방을 찾아다녀 주시느라 얼마나 힘드신지요. 마음으로 가득 찬 혁명도 몸이 안 따라주면 어려운데.. 어린 시절 어깨에 옷이 흘러내리면 앙상한 뼈가 보일 정도의 몸으로  어떻게 그 에너지가 발산 되는지요. 저는 겉으로는 건강해 보이지만 체질이 약해서 금방 지치고 마는 약한 사람이거든요. 


오늘은 8월을 보내는 여행으로 심학산을 돌다가 도착한 시옷책방에서 핑크색 남방을 입고 있는 모습을 떠올리며  편지를 쓰기 시작합니다.


이 책을 만난 건 6월 말경이었습니다. 큰 아픔에서 좀 추슬러진 후 책을 읽을 수 있는 상태가 되었을 때 만난 책이었지요.  한 달 가까이 조금만 움직이면 자고 싶은 삶의 방전기였지요. 저는 지금 커피를 마시며 편지를 쓰고 있지만 아플 때는 커피 생각은커녕 물도 먹히지 않더라고요. 3일을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식은땀만 흘릴 때 유일하게 잠이 나를 살렸어요. 치유가 '잠'으로는 부족할 때 죽음이 오는 것이라고 '잠'과 '죽음'을 동일하게 생각하게 되었답니다.     


 이렇게 아프고 난 후 만난 책이었습니다. 다시 삶의 깡을 장착하고 일어서게 해 준 책의 구원이었습니다.  어른이 된 후에도  여전히 내 친구가 되어주는 것은 책임에도 불구하고 이번 미오기전은 특별했습니다. 이 책은 내 인생의 많은 장면과 사람들을 떠올리게 해 주었고 누렇게 변한 채 그대로 있던 기억들을 펼쳐놓았습니다. 그들은 모두 어디에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그들이 어딘가에서 <미오기전>을 꼭 만나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맨 먼저 울 언니에게 제가 읽은 책을 보냈습니다. 밭에서 수확한 야채와 함께 보낸 택배는 우체국 직원의 실수로 내게로 되돌아온다는 것을 알고 서둘러 조치했지만 깻잎만 좀 건졌다는 그 박스에 미오기전이 들어있었습니다.     


울 언니가 많이 생각나는 책이었습니다. 중학교를 졸업하기 전 김제 공장으로 일하러 간 언니. 야간에 공부하며 낮에는 일했던 언니는 저에게  용돈도 보내주며 공부 열심히 하고 동생도 잘 챙기라고 편지를  보내곤 했지요. 저는 돈을 받으면 그날 먹을 것으로 다 사 먹어버렸고 중학교 1학년 때는 라디오를 사달라고 졸랐던 철없는 동생이었답니다. 

그런데 미오기 언니는 막내인데도 온 집안을 다 챙기고 도와주셨네요. 울 언니의 책임지는 아래사랑은 너무나 잘 알지만 막내로부터 올라가는 그 책임의 사랑은 또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미오기 언니의 어린 시절, 아빠와의 추억이 있다는 것은 다행이었습니다. “너무 가까이 가서도 안 되고 너무 떨어져서도 안 된다. 닿을 듯 말 듯.”이라는 용접기 사용법 설명을 아빠가 가르쳐준 인생의 선물을 부러워했으니까요.  독일제 드라이버를 왜 샀는지 이유가 단순히 궁금했고 “햇살이 삶에 지친 그림자를 끌며 지나가지 않는가!”  문장에  애닳펐답니다.  


“내겐 인천 소래포구의 언덕이 있다”라고 말할 때는 목포 산정동 언덕의 세찬 바람이 생각났습니다. 배경이 연상되며 “ 늪 속에 빠진 아이가 스스로 제 머리를 잡아당겨 구출하는 방식..”의 인생에 함께 했던 최숙자 선생님의 “상속 없는 상주 역할”에 꺼억꺼억 울었답니다. 그러니까 책 초반부터 고마움을 간직한 그 마음은 저를 울게  했지요. 여러 사람의 고마움으로 자라왔지만 어떤 ‘한 사람’이 없는 사람들이 어디에선가 울고 있을 것 같아 더 꺽꺽거렸던 6월의 그날이 떠오릅니다.     


얼마 전 제 페이스북에 적어주신 “눈두덩이 뜨거워진다” 는 표현은 이전과 다른  진동을 일으킵니다. 책에서 보았던 문장과 같은 그 사랑의 진동임을 느낍니다. 저도 “ 살면서 나도 모르게 좋은 일을 한 적이 있나 보다. 좋은 사람들을 만나다니!”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한 작가에게 흥미가 생기면 그가 쓴 책을 다 읽어버리는” 독서 방식은 나를 이해해 줄 사람이다고 생각하게 했습니다. 오솔길 따라 내게로 오는 작가의 책은 모두 읽지 않으면 안 된다는 계명이라도 있는지 읽어야 할 의무를 자동으로 실행합니다. 제가 다른 점이라면  머리가 나빠서  다시 봐도 또 새로운 책이지만 독후감을 쓰는 것으로 대체하려고 합니다.  


어떤 문장은 저절로 실천하는 힘을 주었답니다. 

“칭찬한 적이 없었다는 기억에 마음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남자 대신 내가 해탈했다.”

이 문장 뒤로 저는 좀 더 긍정적인 사람이 되어졌고 그 사람의 고마운 일 좋았던 일만 생각합니다.

기적이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책 속에 있었습니다.


저는 “16살부터 엄마와 형제들에게서 떨어져 10여 년을 자취 생활하면서...”아름다운 문장에 심취했고 빨간 머리 앤의 아름다운 문장을 간직한 한 어린 소녀를 상상하며 자꾸 고개 들어 하늘을 보았습니다. 그  영혼을 보살폈던 그 마음은 어디에서부터 기원된 것일까요?  16살부터 김제에서 공장을 다녔던 우리 언니는 제게 편지를 보내고 용돈을 보내며 아름다운 문장을 선물해 줬답니다. 그런 언니가 어른이 된 후 어느 날 잘 살게 해 준다는 이명박을 투표한다고 했을 때 아무 말도 못 했지만 매우 슬펐답니다.     


교보문고 북토크에서 어떤 분이 자녀 문제로 질문을 했었을 때 답변으로 ‘토론’을 해보라고 했었지요. 저는 그날 ‘토론’이라는 단어를 처음 듣는 냥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토론으로 상대를 바꾸라는 것이 아니라 작은 영향을 끼치는 것이 되는 것이고 성장한 아들들에게도 각자의 주장을 펼치며 상대의 의견을 존중하지 않을 때 “싸가지 없는 새꺄!”가 튀어나온다고 하셨지요.  내 의견을 더 주장하는 것이 토론이 아니라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인간에 대한 존중을 아름답게 바라봤습니다. 저는 토론다운 토론을 해본 적이 없다는 사실도 깨달았고요.


오늘 첫 편지에 너무 말이 많습니다.

받아들일 운명도 있지만 제가  약해서 받은 상처가 있고 바꾸기 어려운 저의 기질도 제  인생입니다. 

<미오기전>1. 김 여사 해탈기는  지나간 시간 속 굵은 기억을 가벼운 터치로 그린 한 폭의 병풍이 되어 제 방에 세워졌습니다.   


또 편지 보내겠습니다.

어린 시절 키다리 아저씨에게  편지를 보낸 것처럼.


#미오기전 #독후감  #독자 #김수나 #편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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