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너들의 합창
"살아보니 정말 좋은 사람은 잘 까먹는 사람이다. 다 잊어버려야 한다" p221
살아가기 위해 내 몸이 적응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이 말을 내 방식으로 다시 생각하면 어제 그 사람도 오늘 다시 보면 오늘 처음 만난 사람처럼 새롭게 보고, 오늘 만나는 사람도 내일 다시 만날 단념하지 않을 마음을 간직하는 것이다.
"진짜를 두리번거린다.
더 늦기 전에
내가 물거품이 되기 전에." p194
책의 여백에 똑같이 따라서 쓰고 박스를 쳐둔 문장이다.
진짜가 좋다. 진짜와 가짜를 알아채는 바로미터 줄자라도 있는 것 같다.
어리석고 부족한 있는 그대로의 빈 마음으로 사람을 만나다 보면 알 수 있다.
알아도 더 겪어보고 기다리고 아픈 시간도 건너가는 사람 속에서 사는 것이 인생이다.
겉으로 둘러싼 허영의 젊음을 살아본 나만이 느낄 수 있는 그 어떤 감각의 세포들의 반응에 예민하다.
그래서 정말이지 진짜가 좋다. 나 자신이라도 지키고자 노력한다.
"뭔가에 빠지면 거의 미쳐버리는 내가 서재에서 밤을 새가며 숟가락을 두드리니.."p179
내가 뭔가에 빠졌던 것을 생각한다.
초등학교 3학년 피아노가 배우고 싶어서 학교 책상 밑 선반에 종이건반을 두고 피아노를 치던 일은 선명하고
책을 읽으면 끝까지 봐야 해서 수업 시간에도 숨겨 봤던 일.
중학교 때는 친구들이 책을 빌려줘서 봤지만 늘 부족했던 것.
고등학교 때 <읽어버린 너>를 읽을 때 마지막 3권을 끝내느라 체육시간에 안 나가고 교실에 남아 책 읽었는데 아무도 지적하는 사람이 없었던 것이 지금 생각하면 이상하다.
살사, 골프, 자전거, 와인 동호회 활동에 많은 시간을 미쳐 보냈다. 살사는 3년 정도 매일 9시면 바에 출근하는 것으로(매일 가는 것과 춤 실력이 비례하지 않는다. 바에서 듣는 음악을 더 좋아했다) 골프는 2004년 유니골프 강남분동 Most improved player패를 받은 추억을 가장 즐겼고 자전거로 대관령 미시령 고개를 넘었다는 사실이 가장 뿌듯하고 소희랑 아름다운 추억을 남긴 와인을 만나 17년째 타고 있는 내 차 번호는 1865이다.
양재화훼시장을 다니며 매주 언니집 베란다를 관리하던 때도 보람 있었고..
조금씩 미치며 살았지만 제대로 한 일이 없다.
함께 했던 사람 중 지금은 각 분야에서 다들 알만한 사람들이 많은데..
그냥 끌려서 좋아서 하다가 말아버리는, 전략 없이 그냥 살았다.
머리가 좀 쓰며 살았거나 그 돈을 좀 모았으면 좋았을 거라고 후회도 한다.
아니 머리가 좀 좋지 않다.
"지울 수 있는 과거는 없다. 다만 잊으려 노력할 뿐이다. 상처라고 생각했던 일들은 굳은살로 돋아나 생살보다 튼튼해진다. 같이 안고 가야 하는 것들이다."p174
모든 과거가 모여 나를 만들었다. 나는 나다. 또 아프고 쓰러지고 다시 일어서고 웃게 될 때마다 굳은살이 돋아나 더 튼튼해질 것이다. 나의 상처는, 후회는 내 성장의 밑거름이다.
"문을 닫았다고 생각했는데 부처님의 축복이 내렸다"p163
틈틈이 알바를 하기 위해 면접을 봤지만 일 못하게 생겼다고 거절당했다.
책방은 다른 방법을 찾을 것이다.
이대로 끝내기는 싫어 서가 위치를 오른쪽 벽에서 왼쪽 벽으로 모두 옮기고 '다시 시작'했다.
<미오기전> 북토크 사회자를 최대환 신부님으로 모셔 책방 재건축 의식인 양 북콘서트를 하려고 했다.
안식년으로 독일에 한 달여 머무시는 기간이었다. 한평의 우정 김성신 선생님을 바로 떠올릴 수 있는 것도 인생의 복이다.
내게는 희망의 약속이 있다. 최대환 교수신부님은 다음 책 북콘서트를 약속해 주셨고 김미옥 작가님은 계속 나를 응원해 주시고 권성우 교수님은 몇 년 후 퇴임강연을 한평책방과 함께 하겠다고 하셨다.
이 내용을 발설해도 괜찮다는 믿음이 있는데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아니한가?
<미오기전> 마이너들의 합창 편 네 번째 독후감은 미오기언니에게 보내는 연이은 편지 대신 밑줄 그은 문장으로 나를 돌아보고 다독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