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예전 책방 위치는 은평구 불광역, 지금 책방은 고양시 삼송역.
서울 기준으로 4 정거장 멀어졌지만 왔던 사람들은 찾아올 거라고 생각했다. 막상 그렇지가 않다. 은평에 있을 때 정말 꾸준했던 단골 한 분만 한 달에 한 번이나 두 번 프로그램 참여차 오고 있다.
북토크를 하면 참가자들이 너무 멀리서 오는 분들이 많았다. 미안해서 이제 서가회원들이 추진하는 북토크만 하려고 했다.
김미옥 작가님 북토크를 요청하면서 너무 먼 곳이라 미안했다.
그때 받은 대답은 " 파주는 자주 가요"
"파주는 자주 가요"라는 말에 감동받았다고 어떤 사람에게 말하니 이해를 못 했다.
내가 광주에서 살면서 미안한 마음으로 서울 사는 사람을 와달라 했는데, 목포는 자주 가요.라고 편하게 말해준 것과 같다고 하니까, 그제야 이해를 했다.
북토크 신청을 문자로 받았지만 유선으로 가능 여부를 묻는 어떤 한 분에게 갑자기 어디에서 오시는지 물었다. 혹시나 삼송 근처에 사는 분들이 이 기회에 책방의 존재를 알게 되어 마침 북토크 참여하게 된 분이 있었으면 하는 기대가 있었기에. 서울이요..라는 답을 들으며 네 감사합니다.라고 끊었지만 갑자기 출발지역을 묻는 내가 이상했을 것이다.
당사자는 모르지만 무심한 척 그 한 번의 몸짓이 어떤 사람에게는 삶의 각인으로 남는 경우가 있다.
은평구 책방일 때 알던 분 중 삼송을 일부러 와주는 분이 오셨다 가면 적어도 3일은 힘이 넘친다. 그런데 이번에 또 북토크 입금을 해버렸다.
고등학교 2학년 1학기 때 만난 분이 학원을 다닐 수 있게 도와주면서 "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아라" 했던 말이 내 인생의 등대였다. 40대 이후 처음으로 도움 받았던 일들을 이야기하곤 했는데 이제는 바로 말한다. "파주는 자주 가요"와 같은 그 마음들을.
(그동안 한평책빵 북토크 와주셨던 작가님, 교수님, 신부님, 그리고 참여했던 분들께 다시 감사드립니다.)
2.
미오기전 책을 읽고 삶에 깡을 장착한 후 북콘서트를 했다.
이곳에서 평생 할 것처럼.
마음에서 일어나는 북콘서트 열망의 불씨가 꺼지지 않았다.
잔치를 열려면 내 돈 써서 해야 하는데 참가자들의 돈을 받아 과일컵을 만들고 빵을 소분하고 정성껏 블랜딩티를 만들었다.
내가 나에게, 내가 작가님께, 내가 와주신 분들께 악수를 청한 날.
이곳에서 언제까지 할지는 모르지만
책을 많이 알리고 팔고 싶은 마음은 다시 시작이다.
운명의 날이다.
"비긴 어게인"
의자준비, 과일쇼핑, 커피 추출 등 이 모든 것을 뒤에서 도와주는 나의 운명 구보씨에게도 감사!
3.
-아팠다.
아픈 근본적인 이유를 말하지 않는 이유는 의리다.
내 생애 고마웠던 것에 대한 의리.
그 어떤 '것'이라도 사랑이 없으면 독이 된다. 사람은 다 약하다.
굳건했던 평생의 신념이 흔들리자 자살했던 자베르경감이 이해되고 아우슈비츠의 기억을 증언문학으로 승화시켰지만 결국은 층간에서 뛰어내린 프리모 레비도 이해된다. 난 결코 그런 용기는 없지만 앓다가 죽을 수 있는 것이 죽음이라는 것을 알았다.
<미오기전>을 읽으며 이제껏 살면서 나도 모르게 상처를 줬을 과거의 삶에게 사과하며 '기침'을 끝냈다.
다시 살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나의 8월, 몇 번 접었던 마음을 누르지 못하고 작가님께 간절히 북토크 요청을 했다. 사람을 살리는 책으로 나와 너를 치유하는 판을 열게 되었다. 책방에 도착한 작가님이 조금 숨을 돌렸을 때 마음이 바로 말을 했다.
"저는 오늘 굿판을 연거예요"
홀린 듯 잔치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놓고 간 텀블러를 찾으러 온 김성신샘과 샌드위치를 먹으며 이야기를 나눴다.
이제까지 본모습 중 약간 당황해하는 것 같았다고 했다. 책방이 폭망 한 것에 대한 불안감이 깔려 있는 것이다.
얼마든지 가난해도 살 수 있다고 텃밭에 갈 때마다 행복을 만끽했지만 태양에 거뭇해진 거울 속 얼굴을 보니 그 정도 배짱은 없는 사람이 있었다.
한 회원 분에게 바닥에 닿았으니 올라가야겠다고 말하니 경험인 듯 이야기했다. 바닥인 줄 알았는데 더 내려가는 지하도 있더라고요.
'가난'하지만 배꼽 깊은 곳에서 웃음이 터졌다.
-2013년 3월 강남교보문고 유시민 작가 북토크에 갔다.
<생각은 힘이 세다>로 동일하게 사인을 해주는 것을 보다 내 차례가 되자 말했다.
"똑같이 적어주지 말고 저에게만 생각나는 말로 적어주세요"<생각이 힘센 사람>
그 후로 나는 생각을 실행하며 살게 되었는데 책방으로 실현되었다.
김미옥 작가님께 꼭 부탁했다.
"제게 떠올려지는 문구로 서명을 좀 해주세요"
<별 같은 수나님>으로 받았다.
그래. 나도 별이 되어야지.
지난해 11월 우리 삐비가 죽어버린 후 잠들지 못할 때 이끌리듯 밖을 나갔다. 하늘을 쳐다보면 세 별이 깜박깜박 빛을 내며 내게 여전한 사랑을 보냈다. 별을 보며 잘 수 있었던 그 새벽을 떠올린다.
'사랑'이다.
-앞으로 평생 책방을 계속할지 확실하지 않지만(권성우 교수님! 몇 년 후 은퇴강연에 함께 하기로 한 약속은 잊지 않고 있습니다)'사랑도사' 미오기언니에게 훅, 그리고 푹 빠지지 않을 수가 없다. 사랑해야 한다.
-사람들이 시기 질투만 소멸하며 살면 좋겠다. 그러면 사는 게 훨씬 아름다울 텐데... 성인이 특별하지 않다. 자신을 성찰하며 사랑을 뿜어낸 사람들이다. 좋은 뒷담화만 하자.
-김미옥 작가님은 한마디로 '문학적'이었다.
그 문학으로 우리를 구원했다.
북토크가 끝난 다음 날 까지도 붕붕 떠있는 감정을 보내고 이 아침에 글을 올린다.
4.
북토크 시작 전 소분해서 준비했던 빵이
행사가 끝난 다음 날 뒤늦게 서랍에서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