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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윈디 Sep 23. 2024

계절과 음표들

인생의 사계절 2 

2. 겨울 : 고귀한 갈망


영원은 철학과 예술이 종교와 만나는 접점입니다. 

영원을 향한 그리움은 인간 존재 안에 뿌리내리고 있으며 사람들은 종종 영원에 대한 고귀한 갈망을 간직하는 대신에 죽지 않으려는 헛된 욕망에 사로잡힙니다.

영원에 대한 그리움에는 사멸하는 인간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겸허함과 숭고함이 있습니다. 언젠가는 다가올 죽음을 인간에게 필연적인 것으로 받아들이는 마음은 인간의 삶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죽음을 두려워하고 부정하고 분노하며 힘을 소진하는 것이 아니라, 아직 살아 있는 시간이 남은 인생에 진심으로 고마운 마음을 지니고 하루하루를 기쁘게 살며 행복을 추구합니다. 지혜로운 삶은 여기서 시작합니다. 

영원을 향해 상승하고 등정하는 인간의 초월성은 무엇보다 진리와 아름다움과 선을 사랑하고 추구하는 삶의 여정에서 그 모습을 드러냅니다.

인간의 위대한 이 과업을 아마도 가장 아름답게 서술한 철학적 장면을 플라톤의 <향연>에서 만납니다. '에로스'와 '아름다움'을 주제로 디오티마가 가르치는 마지막 대목입니다.

"이 아름다운 것들에서부터 시작하여 저 아름다운 것을 목표로 늘 올라가는 것 말입니다. 마치 사다리를 이용하는 것처럼..... 마침내 저 배움으로, 즉 다름 아닌 저 아름다운 것 자체에 대한 배움으로 올라가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마침내 그는 아름다운 바로 그것 자체를 알게 되는 거죠"


위대한 음악은 때로는 종교나 철학보다 더 감동적으로 영원을 향한 인간의 초월성을 증언합니다. 베토벤의 심오한 후기 작품들은 그 탁월한 에지요. 그중에서도 가장 마지막 소나타인 <소나타 32번>을 영원을 향하는 인간 존재를 생각하며 듣고 싶습니다.


(음악을 들은 후)


겨울에 가끔씩 우리는 죽음과 소멸의 적막함을 감지합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가만히 죽은 듯이 잠자는 시간 속에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변모'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희망하고 믿습니다. 영원을 향한 그리움과 초월을 향해 나아가는 태도는 일상의 기쁨과 슬픔 안에서도 체험하고 연습할 수 있습니다.

영원을 그리워하는 사람은 신비 안에 사는 법을 배우며 그 그리움을 지상의 삶에서 불완전한 방식으로나마 조금씩 채워갑니다. 용서하고, 사랑하고, 감사하고 경탄하는 작은 마음과 몸짓들이 여기에 속합니다. 겨울은 이를 깨닫고 배우는 시간입니다.


3. 봄의 질문

메리 올리버의 시집 <기러기>에 실린 <봄>이라는 시.

(낭독)


어딘가에서

검은 곰

잠에서 막 깨어나

산 아래를


내려다보네.

이른 봄

밤새도록

얄팍한 불안이 기승을 부릴 때


나는 곰을 생각ㅎ.

자갈을 튕기는

네 개의 검은 주먹.

풀에.


차가운 물에 닿는 

빨간 불꽃 같은

그 혀.

질문은 오직 하나뿐.


어떻게 이 세상을 사랑할 것인가.

나는 

잎이 무성한 검은 바위 턱처럼

몸을 일으켜


나무들의 

침묵에 대고

발톱을 날카롭게 가는 곰을 생각해.

시들과


음악과 유리의 도시들이 있는

내 삶이 

다른 무엇이건.


숨 쉬고 맛보며

산을

내려오는

이 눈부신 어둠이기도 하지.

온 종일 나는 곰을 생각해-

그 흰 이빨.

그 말 없음.

그 완전한 사랑.


그녀가 고백하듯 세상을 많이 사랑하고, 잘 사랑하도록 고민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을 것입니다. 매일의 산책하고 동물과 식물과 풍경을 바라보며 언어를 길어 올렸습니다. 시인은 감사와 경탄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행복을 전합니다. 쉽지만 깊고, 담담하지만 다정한 언어로 죽음과 유한성을 벗으로 맞아들이며 가장 작고 미소한 생명체에 이르기까지, 모든 존재와 나의 인생과 내가 속한 세상을 사랑하는 삶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은 일상에 충실하면서도 초월을 체험합니다. 


메리올리버가 사랑한 위대한 사상가 랄프 왈도 에머슨과 사상가이자 실천가인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초월주의'가 뿌리내린 지역이 메사추세츠 주의 콩코드입니다. 미국 현대음악의 아버지라 불리는 찰스 아이브스(1874--1954)는 자신의 두 번째 피아노 소나타를, 콩코드에서 활동했던 중요한 미국 사상가를 주제로 작곡했습니다.


'콩코드 소나타'라 불리는 아이브스의 <피아노 소나타 2번>중 3악장을 함께 듣겠습니다.

(콩코드 소나타)

'콩코드 소나타'는 그의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인정받는 곡이자 관현악곡인 <대답 없는 질문>과 함께 널리 알려지고 사랑받는 곡에 속합니다.


4. 여름: 단순함의 덕

음악은 단순함의 덕을 찾는 이들에게 좋은 벗입니다. 단순함에 어울리는 음악을 묻는다면 현대음악의 '미니멀리즘'이 먼저 떠오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합니다.  류이치 사카모토는 지난 2023년 3월 28일 안타깝게 타계했습니다. 여러 해에 걸쳐 암 투병을 하는 동안 내놓은 음반들에 실린 새로운 음악은 정신성과 내면성, 그리고 단순함의 미학이 높은 경지에 다다른 것을 느끼게 합니다. 그는 미니멀리즘이 오히려 더 깊은 감정에 공명하는 표현 방식이라는 것을 감동적으로 보여주었습니다.


5. 다시, 가을 : 고독의 빛과 그림자

고독은 인간이 홀로임을 온 존재로 체험하는 사건입니다. 고독 안에서 여러 감정과 태도가 서로 겹쳐집니다. 인간은 고독할 때 가장 수동적일 수도, 가장 주체적일 수도 있습니다. 체념과 저항, 낙담과 용기, 무기력과 결단, 권태와 창조적 영감이 모두 고독이 보여주는 두 얼굴입니다. 인간은 고독으로 내몰리기도 하지만, 고독을 애써서 얻어내기도 합니다. 

고독에는 빛과 그림자가 함께 따릅니다.

고독을 언어적으로 단순한 '외로움'과 구분하는 것만으로는 고독의 다양한 결을 제대로 헤아릴 수 없습니다. 고독 앞에서 드러나는 인간 존재의 깊은 갈망을 이해하고 응답해야 합니다. 이러한 '고독의 기예'는 혼자서 온전히 배우기 어려우며, '삶과 사유의 대가'들과 함께 걸어야 합니다. 고독 속에서 숙성되었으며 고독에 대한 깊은 통찰을 전해주는 고전과 명저를 통해 우리는 고독과 대면하는 인생의 고비에서 빛과 길을 발견하기 때문입니다.

홀로 있음은 고독을 의미합니다. 몽테뉴에 따르면 홀로 있음의 가치는 세상을 살아가는 진정한 힘을 다른 이에게 의존해서가 아니라, 우리 자신에게서 얻는 데 있습니다.

몽테뉴는 고대의 현자들에게서, 진심으로 자신의 내면으로 향하며 자기 자신을 받아들이는 것이야말로 홀로 있음의 참된 의미라는 점을 배우라고 설복합니다. 홀로 있음의 무게를 기꺼이 감당한 몽테뉴는 빛나는 고독의 시간을 얻었습니다. 그는 독서와 여행에 힘을 기울이고 , 남에게 보여주고자 하는 허영과 강박에 의한 글쓰기가 아니라 스스로의 삶을 담담히 바라보며 홀로 있는 고독한 시간을 자유롭고 풍요롭게 채워갔습니다.

고독과 독서는 큰 친화력을 지니며, 혼자서 조용히 책을 꺼내 읽는 행위 자체가 고독을 초대하는 것입니다. 독서를 통해 고독에 '관해' 조금 더 넓고 깊게 배우는 것은 고독의 기예를 '실제로'익히고 살아가는 독서의 계절 가을을 충만하게 보내시길 바라며 오늘 피아노방 북콘서트를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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