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오후, 비스듬한 햇살이 가을의 쓸쓸한 풍경 한 구석에 스며들어 옵니다. 창밖을 바라보다 문득 울컥하며 알 수 없는 곳에서부터 눈물이 차오릅니다. 나도 모르게 잠겨 드는 슬픔과 우울의 정서, 우리는 이를 '멜랑콜리'라고 부릅니다. 만성적 우울증에 시달리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대부분의 사람은 가끔씩은 멜랑콜리에 잠깁니다. 멜랑콜리는 나와 다른 이의 '마음 풍경'을 헤아리고 돌보기 위해 잘 알고 곱씹어봐야 하는 개념입니다.
깊은 슬픔 속에 위태로이 닿아 있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지, 겉으로는 무탈하게 일상을 살아가지만 그 뒤안길에는 우울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홀로 힘겨워하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지를 기억하려 합니다. 사람들이 온갖 즐거움과 쾌락을 누리고, 자유와 자아실현의 길이 열려 있다고 하는 오늘의 세상에서 정작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채우고 있는 것은 '무거운 기분'인 멜랑콜리인 이유를 묻게 됩니다.
멜랑콜리는 치유하고 돌봐야 하는 정서이기는 하지만, 멜랑콜리를 제거하는 것이 반드시 행복한 삶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방치해 둔 멜랑콜리는 인간을 소진하게 하고, 분노, 질시, 초조, 무기력, 정서적 불감증과 같은 부정적 결과를 초래하며 마침내 영성적 무관심과 도덕적 혼란이라는 '영혼의 죽음'에 이르게 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멜랑콜리는 각고의 노력으로 그 우울함에서 깊은 사유와 실천을 이끌어낼 수 있다면 인간을 이상을 향하도록 고양시키며 고통받는 다른 존재에 대한 진실한 공감으로 이끌어 줍니다.
멜랑콜리라는 주제에서 우리가 유의해야 하는 것은 우울하고 슬픈 마음이 '있다'는 것에만 관심을 두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우울하고 슬픈지를 살펴야 합니다.
어느 가을날, 나의 마음이 멜랑콜리에 젖은 것을 발견한다면, 두려워하거나 부정하기보다는 오히려 담대하게 '건강한 멜랑콜리'를 배우고 익히는 시간으로 삼으면 좋겠습니다. 멜랑콜리의 정서가 나를 고립시키는 것이 아니라 타인에 대하여, 시대에 대하여, 나아가 모든 존재에 대하여 깊은 연민과 연결을 느끼는 계기가 되도록 말이지요.
'건강한 멜랑콜리'를 말할 때, 우리는 모차르트의 음악을 떠올립니다.
오늘 피아니스트 이귀란의 연주로 모차르트 환상곡 D단조 K.397을 들어보려고 합니다.
멜랑콜리의 아름다움에 한없이 빠져들게 하면서도 마음에 우울함의 짐이 아니라 모차르트의 음악이 어떻게 인간을 치유하고 고양시키는 멜랑콜리를 창조할 수 있는지 그 신비의 시간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