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부단히 잊어가고 있다

나를 이루는 인연들에 관하여 1

by 양주안

다른 나라에서는 이름을 잃는다. 나는 멕시코에서 후안, 이탈리아에서 주앙, 폴란드에서 유안이다. 여행은 한 번도 떨어져 본 적 없는 것과 잠시 헤어지는 일이다. 가족과 친구는 아득히 멀어진다. 공항 출국장을 넘어가면 당연하던 것들이 하나둘 몸에서 떨어져 나간다.

비행기가 멕시코시티 공항에 착륙한 지 이십 분도 더 지났다. 승객들 발열 검사를 하느라 입국이 늦어지고 있었다. 몇몇 사람이 언성을 높였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다. 승무원들도 점점 짜증 섞인 말을 하곤 했다.

파리 공항에서 갑작스러운 폭설로 비행기 안에서 두 시간이나 앉아 있었던 적이 있다. 그때는 하늘만 바라봐야만 했으나 이번엔 다르다. 일등석 승객들부터 하나둘 내렸다. 눈에 보이는 희망이 있으니 다행한 일이었으나, 다리는 초조함을 견디지 못하고 덜덜 떨렸다.

발열 검사를 마치고 입국장으로 들어섰다. 이상한 사건들은 마음이 급한 순간에 연달아 벌어진다. 입국심사대 직원은 유독 오래 내 여권을 들여다보았다. 이윽고 건장한 경찰관이 길을 안내했다. 열 평 남짓한 방이었다. 벽 곳곳에 페인트칠이 벗겨져 있었고, 접이식 의자 서른 개 정도가 놓여 있었다. 들어갈 때는 미처 몰랐으나 의자에 앉고 보니 문은 철창살이었다. 그 앞에는 커다란 총을 든 경찰관이 지키고 섰다. 공항 곳곳에서 사용할 수 있는 무선 인터넷도 이곳에서만 유독 신호가 잡히지 않는 듯했다.

옆자리에는 호주 남자가 앉았다. 그는 종종 자리에서 일어나 큰 소리로 화를 내곤 했다. 영문을 알 수 없었다. 희망은 호주 남자가 화를 낼 때 스페인어를 했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에게 도대체 왜 우리가 여기 잡혀 있는 거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사람마다 다른 이유라서 직접 물어봐 주겠다고 했다. 나는 호주 남자와 이 방의 대장으로 보이는 경찰관에게 다가가 물었다. 돌아온 대답은 일단 기다려보라는 것이었다.

십 분이나 지났을까, 나는 대장 경찰관에게 다가가 K의 핸드폰 번호를 들이밀며 전화 한 통만 하게 해달라고 했다. 그러자 그는 손가락으로 벽에 붙은 스티커를 가리켰다. 외부 연락 금지.

한 시간쯤 지나자 하나둘 방을 나가기 시작했다. 내 이름이 호주 남자보다 먼저 호명됐다. 갈 길이 바빴으나 이유를 모른 채 지나가고 싶지 않았다. 호주 남자에게 통역을 부탁했다. 대체 왜 잡혀 있었느냐고 물었다. 이유는 이러했다. 마약 밀수범들이 가짜 여권을 들고 다니는데 내 여권에 수상한 점이 있었다는 것이다. 영문 이름이었다. JUAN. 한국 사람이 멕시코식 이름이어서 미심쩍었단다. 대장 경찰관 앞 책상에 여권을 펼쳐 놓고는 한글 이름을 하나씩 손으로 짚으며 말했다.

잘 들어. 양. 주. 안. 이게 한국식 이름이야.

차분하게 말했으나 호주 남자는 감정을 담아 통역했다. 욕 비슷한 것도 덧붙인 것 같았지만 알 길이 없었다. 대장 경찰관은 이런 일은 하루에도 수십 번 겪는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는 또박또박 말했다. 양. 주. 안. 아디오스.


밖으로 나와 K에게 연락했다. 다행히 그는 회사가 늦게 끝나 아직 출발도 못했다고 했다. 로비에 앉아 시간을 때우려던 차였다. 이상한 일은 몰아치는 법이다. 커다란 기둥에 기대 노트북을 만지작거리는 남자가 보였고 낯이 익었다. 잡지사 에디터 시절 원고를 주고받던 여행 작가였다. 어느 모임에서 얼굴을 본 적이 있다. 반가운 마음에 말을 걸었고 이내 그도 나를 알아본 듯 에디터님이라고 불렀다. 이름은 기억하지 못하고 직함만 떠오른 것 같았다. 한 번 본 사람 이름을 모른다는 건 그다지 이상한 일도 아니다. 단지 그가 민망할까 염려해 굳이 이름을 말하지 않았다. 이윽고 K가 도착했다.

K의 집에 들어가 침대에 누웠다. 기묘한 사건으로 이루어진 날이었으므로 정리가 필요했다. 공항에서 이름을 되찾기 위해 총 든 사내 앞에 겁도 없이 여권을 들이댔다. 간절히 알려주고 싶었다. 같은 날 이름을 모른 채 직함으로 부르던 작가에게 구태여 이름을 말하지 않았다. 헤어지기 직전에 전화번호를 교환하며 알려주었을 뿐이다.

잃어도 괜찮은 것과 지키고 싶은 것이 같았다. 어디서나 만나고 헤어지는 일이 자주 벌어진다. 그때마다 완전한 작별이라고 믿었다. 살아간다는 건 부단히 잃어가는 일은 아닐까? 잃어야 할 것들을 잘 보내주어야만 미래로 나아갈 수 있는 게 아닌가? 이런 생각을 자주 했다. 그것은 헤어짐을 낙관적으로 받아들이려는 나름의 노력이었다.

공항에서 나는 당연한 무언가를 진짜로 잃어버릴 위기에 처했을 때 간절히 되찾고 싶어 진다는 걸 알았을 채고 만 것이다. 돌아보니 에디터라는 직함도 몇 년 전 퇴사와 함께 잃어버린 것이었으나 공항에서 들을 때는 낯설지 않았다. 익숙함이 주는 안정감이라고 해야 할까. 이름을 몰라 직함으로 나를 부르던 작가의 목소리가 포근하기까지 했다.

잃어버린다는 표현보다 켜켜이 쌓인 시간의 층계 어딘가에 묻어두었다는 말이 더 맞겠다. 잊어버린 하루는 있어도 사라진 날은 없다. 모두 기억나지 않아도 지나간 사람들이 나의 시간 속에 여전히 살아 있다. 어쩌면 그들의 말과 생각의 조합이 지금의 나일지도 모른다. 오늘은 기억하지 못하는 과거들로 빚은 시간이다.

침대에 누워 한숨을 쉬었다. 이상한 일이 연달아 벌어진 날이므로 꽤 오래 잊지 못할 거다. 다만 시간은 공평하다. 강렬한 사건은 삶에 전환점이 되기도 하지만, 나를 이루고 있는 시간의 대부분은 기억나지 않는 보통의 날들이다. 진짜로 중요한 것들은 삶의 중간에서 함몰된 채로 자기 일을 한다. 몇 개의 강렬한 기억과 모든 날을 빛내고 싶은 욕망만이 봉우리처럼 솟아 있다. 나는 나를 부단히 잊어가고 있다. 기억나지 않는 중요하고 작은 인연과 감상과 하루들을.

이전 21화기쁨과 슬픔의 경계가 무너질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