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이루는 인연들에 관하여 2
주말 저녁. K가족과 루차 리브레 경기를 보며 식사를 했다. 루차 리브레는 멕시코 프로레슬링으로 연극과 쇼가 가미된 스포츠다. ‘자유로운 싸움’ 선수들은 평일에 저마다의 삶을 살다가, 주말이면 가면으로 정체를 감춘 채 경기장에 들어선다. 어떤 선수는 예상도 할 수 없는 직업을 가지고 산다. 전설적인 선수 세르지오 구티에레스는 낮에는 가톨릭 신부였고, 밤에는 레슬러였다. 그의 이야기는「나초 리브레」라는 영화로 제작되기도 했다. 루차 리브레 선수들에게 가면은 생명이나 다름없다. 가면이 벗겨지는 날은 곧 은퇴라는 말이 있을 정도. 어떤 선수는 죽어서 관에 들어갈 때도 마스크를 벗지 않았단다.
저녁 밥상에는 까르니따스 타코와 맥주가 올라왔다. 취기가 오르기 시작할 무렵, 루차 리브레를 보며 했던 생각을 털어놓았다.
“나는 모든 사람에게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어요. 그 욕망이 나를 자꾸만 파괴하는 기분이 들어요. 가끔은 루차 리브레 선수들처럼 가면을 쓰고 사는 거처럼 느껴져요. 갈수록 진짜 나를 잃어버리는 것만 같습니다.”
마구잡이로 늘어놓는 말들을 진지하게 받아들여 주었다. 그리고는 신중하게 대답해 주었다.
“가끔은 자신을 속이는 시간도 필요하고, 쓸데없는 것에 집중하기도 해야 해요. 루차 리브레가 왜 일요일에 가장 쇼를 여는지 알아요? 다음날이 월요일이기 때문이에요. 걱정을 잊을 만큼 대단한 쇼를 펼쳐야 하니까요. 루차 리브레 경기장에 앉은 사람들을 보세요. 마지막 경기가 대단하든 아니든, 월요일은 바뀌지 않습니다. 그냥 아주 잠깐 속이는 거예요. 내일 아무 일도 없는 사람처럼 말이죠.”
빈 맥주병이 늘어날수록 K의 말도 점점 늘어났다.
“당신이 왜 한계에 부딪힌 줄 알아요? 그건 언제나 목표가 당신이 이룬 것들보다 한두 발짝 멀리 있어서 그런 거예요.”
혀가 반쯤 꼬여 느릿느릿 뱉어낸 말들이 날카롭게 가슴을 찌르고 들어왔다. 나는 술병을 입에 물고 고개를 최대한 뒤로 꺾었다.
“완벽하게 건강한 인생은 없습니다. 이상적인 인간은 언제나 벽 너머에 있어요. 이상주의자들은 언제나 찬란한 미래를 상상하지만, 정작 본인은 우울증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죠. 너무 무리하지 말아요. 가끔은 가볍게 자신을 속여보세요. 의미 없는 루차 리브레 같은 걸 즐기면서 말이죠.”
K는 이내 비틀거리며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