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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보는 취한 눈

나를 이루는 인연들에 관하여 3

by 양주안

칸쿤 공항 밖으로 나오자 세상이 눈부시게 빛났다. 비행기에서 마신 럼 때문이었다. 비행시간은 2시간 30분 남짓. 그새 럼을 세 컵이나 마셨다. 스피릿츠 항공 승무원들은 컵을 비울 때마다 새로운 술을 자리로 가져다주었다. 테이크아웃 커피 사이즈보다 조금 작은 컵에 독한 럼을 반쯤 따랐다. 거기에 함께 나온 500 밀리리터 펩시콜라도 섞었다. 이곳의 럼콕은 술과 콜라 비율이 일대일이다.

럼콕 한 모금 넘기고 창문을 번갈아 보는 일을 반복했다. 술은 목을 타고 위장과 혈관을 따라 몸 구석구석으로 퍼졌다. 뜨겁게 타고 내려가며 몸속 장기의 모양을 생생하게 전달했다. 독한 술은 보이지 않는 신체를 비추는 거울이다. 과한 음주는 몸에 나쁘다고 하지만, 술이 때로는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이 되는 이유를 알 것도 같다. 아프지 않으면 들여다보지 않을 가장 어둡고 외로운 신체를 들여다보는 일이니까. 카리브해로 향하는 비행기는 조용했지만, 탑승객들의 신체는 저마다의 몸속을 독주로 비추고 있었다.

감각이 무뎌질 때쯤 창밖으로 카리브해가 보이기 시작했다. 해가 바다 아래로 쏟아져 흩뿌려진 채로 넘실거렸다. 바다에서 해는 수만 조각이 났고, 이윽고 처음부터 따로 존재하는 별처럼 흩어졌다. 때로 낭만은 왜곡된 시선에서 비롯한다. 바다와 해는 언제나 같은 모양이지만, 술 취한 눈은 모든 풍경을 낭만적으로 보정했다. 칸쿤행 비행기에서는 술을 예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카리브해의 작가 헤밍웨이는 작품을 쓸 때마다 술을 마셨다. 럼을 시켜 놓고 글 이 써질 때까지 끊임없이 들이켰다. 그러다 술잔에 손이 가지 않는 순간이 찾아올 때 비로소 글쓰기를 시작했다. 카리브해에서 그가 남긴 작품「노인과 바다」에서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인간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는 것도 술이 빚은 환상일지 모른다. 노인은 극한의 기다림과 사투 끝에 잡은 청새치를 상어 떼에게 모두 빼앗겨 버리고, 앙상한 뼈를 들고 귀향해 버렸지만, 소설은 끝까지 희망의 문장을 던진다. "사람이 파괴될 수는 있다. 그러나 패배하지는 않는다.”

술은 현실을 보정하는 것으로 낭만을 제시하고, 낭만은 현실을 살게 하는 유일한 동력이다. 헤밍웨이는 스페인 내전에 참전해 파시스트와 싸웠고, 나치와 대항해 노르망디 상륙 작전과 파리 해방 전쟁에도 참전했다. 세상에서 가장 파괴된 발명품인 전쟁을 온몸으로 겪어낸 헤밍웨이가 인간을 긍정하기 위해서는 술이 필요했을 테다.

술의 힘은 없던 감정을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라, 드러낼 수 없었던 욕망을 꺼내주 는 데 있다. 현실을 아름답게 보정하는 것과 반대로, 감정은 적나라하고 명확하게 한다. 사랑하는 마음을 전달할 때나, 서운한 일을 고백할 때,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하고 망설일 때, 마음에 쌓아둔 어떤 감정들이 더는 견디지 못하고 행동으로 비 집고 나와야 할 때 술은 힘을 발휘한다. 헤밍웨이가 술을 잔뜩 마신 뒤에야 글쓰기를 시작한 이유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잔뜩 웅크린 욕망이 용수철처럼 튀어 올라 부끄러움이라는 방어막을 뚫고 나와 터지는 솔직한 언어의 시간을 기다렸을 테 다. 비록 술이 자신의 몸을 서서히 파괴할지라도 말이다.

타지에서의 생활은 평소 신경 쓰지 않던 것들을 감각하게 하기에 좋다. 길가에 마구잡이로 핀 들꽃 앞에서도 오래 머물고, 지루한 일상을 보내는 타인의 삶에 그 어느 때보다 깊은 관심을 가진다. 사소한 순간을 즐기고, 타인을 관찰하면서 서서히 시선을 밖에서 안으로 끌어들인다. 삶을 스치는 작은 인연들을 감각한다는 건, 그 세계 안에 사는 나를 돌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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