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리랑카 버스 안에서

20260220(D+45)_스리랑카/콜롬보

by 박대희

인도로 넘어가는 날이다. 명확히 말하면 인도로 넘어가기 전 날이다. 원래 우리 비행기는 내일 새벽 3시였다. 숙소를 따로 잡기도 애매해서 콜롬보에서 최대한 버티다가 늦은 시각에 공항으로 넘어가는 계획이었다. 그런데 친애하는 항공사 분들이 우리 비행기를 내일 아침 9시까지 미뤄주셨다. 안 그래도 여유 있던 일정이 더욱더 여유 있어졌다. 스리랑카 공항에서 시간을 보내나, 인도 공항에서 시간을 보내나 우리 입장에서는 매한가지다. 결과적으로 오늘은 일정이 없다. 지금은 콜롬보의 한 카페에 앉아 글을 쓰고 있다. 특별한 일정이 없으니 글감을 찾기 곤혹스럽다. 고민 끝에 오늘은 스리랑카 버스에 대해 심도 있게 소개해 보려 한다. 이틀 전 '호의의 자격'에서 잠시 등장했던 그 광역버스다.


오늘 아침은 서둘러 움직였다. 인도로 가기 전 빨래를 정리하고 싶었으므로 콜롬보에 이른 시간에 도착해야 했다. 해튼에서 콜롬보까지는 120km에 불과하지만 버스로 4시간 반이 걸린다. 7시에 타도 정오 전에 가까스로 도착한다는 이야기다. 경험상 12시 전에는 빨래를 맡겨야 오늘 찾을 수 있다. 우리는 6시부터 일어나서 서둘렀고 7시 즈음 버스 터미널에 도착했을 때, 콜롬보행 버스는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출발 대기 중이었다. 지금부터 내가 써 내려갈 버스가 스리랑카의 모든 버스는 아닐지도 모른다. 그래봐야 나는 이곳에서 세 번 정도 버스를 탔으니 여전히 이방인이다. 그럼에도 이 글을 쓸 수 있는 이유는 우리가 탔던 세 번의 버스가 모두 같은 특징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후각적인 부분부터 접근해 볼까. 불교 국가의 특징인지 모르겠으나 출발하기 전 버스에 향을 피워둔다. 향 냄새는 우리나라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밀폐된 버스 안을 가득 채우니 강한 향수 냄새만큼이나 견디기 쉽지 않다. 게다가 오늘 탔던 버스는 우리 배낭을 싣는 곳 근처 기둥에 묶여 있었는데 혹시나 배낭을 태울까 노심초사했다. 다행히 향은 계속 타들어갔고 출발하기 전 자취를 감췄다. 누가 끄고 정리했는지 아니면 다 타서 사라졌는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버스가 조금 달리다 보면 진한 매연 냄새가 향 냄새를 밀어낸다. 창을 닫고 가면 조금 낫겠지만 무더운 스리랑카에서 창을 닫으면 아마도 땀 냄새가 진동할 확률이 높다. 그럼에도 버스 승객이 억울해할 것은 없다. 매연의 최대 주범은 버스이기 때문이다. 다른 교통수단을 이용하며 버스가 내뿜는 검은 연기를 봤다면 버스에 타고 있는 사람들은 군말 없이 앉아 있어야 할 것이다.


청각적으로는 조금 더 요란하다. 문화의 우열을 가릴 수는 없으나 나와의 상성을 이야기하는 건 가능하다. 버스는 출발과 동시에 굉장한 볼륨으로 인도 풍의 노래를 틀어준다. 운전하시는 분의 흥을 돋우기 위함일 것이다. 인도 풍의 노래를 정의할 필요가 있겠다. 우리가 흔히 인도의 춤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모습이 있다. 양손의 중지와 엄지를 가벼이 붙이고 양팔을 직각으로 세운 채, 목을 좌우로 흔들며 추는 춤, 그 춤에 정확히 어울리는 음악이라 하면 이해가 될까. 노래는 대부분 빠른 박자를 타는데 결과적으로는 모두 그 춤에 수렴한다. 심지어 우리 가요에도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Are you ready?'라는 가사까지 이 비트에 맞아떨어지니 놀랍지 않은가.


귀만 호강할 수 있는가. 앞서 말한 음악에 맞춰 버스 전체가 번쩍인다. 버스 천정에 붙은 라이트가 형형색색 빛을 발한다. 귀도 어지러운데 눈은 더 어지럽다. 운전석 옆에는 불가의 중요하신 분들을 모아 놓은 액자 같은 것이 보이는데 이 액자 주변으로도 LED 전구가 빽빽이 들어찼다. 이 전구들 역시 가만히 있기를 거부한다. 어떤 프로그램이 적용되어 있는지 알 수 없으나 액자 주위를 빙글빙글 돌기도 하고 번쩍번쩍 점멸하기도 한다. 버스 안이 너무 어지러워 밖을 보면 밖은 밖대로 어지럽다. 120km를 4시간 반에 달리는 셈이니 평균 시속 30km가 못된다. 그 길이 어떨지 짐작이 가시는가. 한 자리에 서서 바라보면 그림 같은 풍경이건만 빙글빙글 돌며 눈길을 주자니 이 역시 쉽지 않은 일이다.


신체에 가해지는 고통도 적지 않다. 좌석 간 간격은 좌우, 앞뒤가 모두 좁다. 우선 우리나라의 4열 좌석과 달리 5열 버스다. 그야말로 다닥다닥 붙어 앉게 된다. 그리고 그 사이를 차장이 돌아다니며 표를 받기 때문에 수시로 어깨를 치고 지나간다. 때로는 내 어깨에 엉덩이를 기대고 서서 누군가의 버스 이용료를 받곤 했다. 그래도 좌우 폭은 견딜만하다. 앞뒤 간격은 사람을 어쩔 줄 모르게 한다. 편안히 앉으면 무조건 무릎이 앞 좌석에 닿는다. 어쩔 수 없이 허리를 꼿꼿이 세우면 겨우 공간이 조금 생기는데 어떻게 사람이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4시간 반을 갈 수 있는가. 결국 자세가 흐트러지면 무릎은 다시 앞 좌석에 닿아 고통을 불러온다. 게다가 수시로 밟는 브레이크 때문에 닿는다는 표현보다는 때린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 것이다.


이처럼 다각적으로 승객에게 고통을 가하며 버스는 목적지를 향해간다. 이 모든 현실을 부정하고자 눈을 감고 잠을 청해 보지만 잠이 올리 없다. 아버지와 장거리 여행을 한 적이 있는데 그때 그런 말씀을 하셨다. 예전에는 버스고 기차고 타기만 하면 자기 바빴는데 이제는 잠이 안 오신다고. 나도 이제 그 나이가 되어버린 걸까. 그저 스리랑카 버스의 상황이 너무 열악하다 핑계를 늘어놓고 싶지만 그러기에는 아들이 옆에서 너무 잘 자고 있다. 아직은 다 자라지 않은 아이의 작은 몸이 부럽기까지 하다. 안 그래도 힘든 아빠 어깨에 목까지 편하게 기대었다. 무릎도 부족해 어깨까지 눌리지만 지친 아들의 머리를 털어낼 수 있는 아빠는 많지 않을 것이다. 한 사람이라도 잘 잤으면 됐다. 아들아, 인도는 비행기로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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