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와 시바와 아담의 발자국

20260219(D+44)_스리랑카/해튼

by 박대희

실질적인 스리랑카의 마지막 날이다. 오늘이 지나면 내일 다시 콜롬보로 이동해 내일모레 아침 인도행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스리랑카에서의 마지막 일정은 스리파다로 정했다. 스리파다는 스리랑카 말로 신성한 발자국이란 뜻이고 2200m가 넘는 이 봉우리는 스리랑카에서 두 번째로 높은 산이다. 봉우리의 형태는 뾰족한 원뿔형이지만 끝까지 올라가면 움푹 파인 곳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재미있게도 그 움푹 파인 곳을 두고 종교마다 해석이 다르다. 불교에서는 부처님이 방문하셨을 때 남긴 흔적이라 하고, 힌두교에서는 시바신의 발자국이라 한다. 심지어 스리랑카에서는 흔하지 않은 기독교와 이슬람교는 아담이 내려온 곳이라 하니, 세계 4대 종교가 저마다 성스럽게 여기는 곳이라 하겠다. 누구 말이 맞는지 알 수 없으나 이 정도면 분명히 신성한 곳임에는 틀림없는 듯하다.


그래서 그런지 오르기도 쉽지 않다. 신들이야 하늘에서 내려왔는지 모르겠지만 한낱 인간에게는 두어 시간 동안 체력을 쪼옥 빼야 닿을 수 있다. 해발고도 1,000m 정도부터 오르기 시작하니 다시 1,000m 이상의 고도를 내 발로 올려야 한다. 계단이 5,500개 정도라 하는데 세보지 않아서 알 수 없지만 엄청나게 많다는 것만은 틀림없다. 게다가 여타의 산과 달리 평지와 내리막은 찾아볼 수 없다. 보통 산이라는 것이 오르기도 하고 내리기도 하며 목적지까지 가기 마련인데 정상까지 끝없는 오르막이다.


시작은 좋았다. 정상까지의 거리가 6.5km로 표기되어 있는데 이 중 3km까지는 비교적 경사가 급하지 않다. 일출을 보기 위해 새벽 4시부터 오르기 시작했고 아들은 초반 좋은 컨디션을 유지하며 까불거렸다. 아들 정도는 아니었지만 나 역시 오늘의 여정을 어렵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스리파다까지는 한 밤이라도 랜턴 없이 오를 수 있다. 초입에서 정상까지 이어진 길 내내 양 옆으로 상점들이 위치한다. 어떤 이는 문을 닫았지만 영업 중인 가게에서 흘러나오는 불빛만으로 충분한 길잡이가 되어준다. 상점이 뜸한 지역에는 가로등도 설치되어 있다. 스리랑카에서 만난 가장 고객친화적인 관광 콘텐츠다. 물론 그들은 종교친화적으로 준비한 시설들이겠지만 말이다.


우리의 분위기는 정상의 모습이 어렴풋이 드러나기 시작한 시점부터 바뀌었다. 아직 어두워 봉우리를 뚜렷이 볼 수 없었지만 봉우리까지 이어진 길에서 흘러나오는 불빛은 선명했다. 그리고 그 불빛은 하늘 위를 수놓듯 흐르고 있었다. 우리가 올라야 하는 위치를 가늠한 시점이었다. 그리고 급경사가 시작되는 3.5km 구간에 들어선 순간부터 아들은 말이 없어졌다. 가끔 터져 나오는 말들은 대부분 짜증이었고 나를 향한 원망이었다. 사원의 바다에서 구해줬더니 이번에는 산행이 힘들다고 난리다. 주야장천 쇼핑몰이나 가자는 이야긴가 싶었지만 나도 대응할 힘이 없어 조용히 걸었다.


많은 산을 다녔지만 이 정도로 이어지는 계단을 보지 못했다. '저 굽이를 돌면 끝날까'라는 생각을 십여 번은 한 것 같다. 그때마다 나는 길에 배신당했고 아들의 분노는 점점 차올랐다. 정상에 가까워질수록 땀이 식으니 체온이 내려가 이중고였다. 귀찮지만 챙겨간 옷을 꺼내 입고 터벅터벅 걸었다. 그렇게 6시 반이 넘어가는 시점에 우리는 정상에 도착했다. 우리가 올라갈 때 함께 오르던 사람은 거의 없었는데 이미 정상에는 많은 사람들이 일출을 보기 위해 자리를 잡고 서 있었다. 어젯밤부터 올라온 듯 보였다. 우려했던 비도 없었지만 기대했던 일출도 없었다. 다행히 구름이 두텁지 않아 멀리 있는 산세를 구경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시원한 풍경은 아들의 기분을 단번에 풀었고 그는 다시 신나서 떠들기 시작했다.


기도 시간을 알고 오른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정상에 도착하자 산 위의 성소에서 기도가 시작되었다. 대부분 스리랑카 분들이었는데 우리도 슬쩍 곁에 앉았다. 다들 눈을 감길래 따라 눈을 감았고 시작된 기도를 함께했다. 2,200m의 산봉우리에서 거센 바람을 맞으며 드리는 기도는 자못 장엄했다. 하지만 계속 있지는 못했다.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었을뿐더러 너무 추웠다. 우리는 우리의 기도만 매우 이기적으로 끝내고 하산길에 올랐다. 다시 5,500개의 계단을 내려간다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상행길에 비할 바 아니었다. 음료수도 한 잔 하며 천천히 내려온 시각이 오전 10시였다.


스리파다는 재미있는 곳이다. 지금 스리랑카는 불교가 신자가 많아 스리파다도 불교의 색채가 강하지만 힌두교나 기독교, 이슬람에서 그들의 종교적 성지로 언급하는 것을 섭섭해하지 않는 듯하다. 스리파다의 다른 이름이 아담스 피크인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법정 스님께서 쓰신 무소유에서 읽었던 한 구절이 떠올랐다. '부처님과 예수님이 한 시대에 사셨다면 서로 다투셨겠는가. 그저 마주 보고 씨익 웃으셨을 것이다.' 종교는 알면 알수록 어렵다. 스리파다의 그 험한 길에서 아주 어린아이부터 몸을 가누지 못해 누군가에게 의지해 올라가는 어르신까지 모두 만났다. 그럼에도 그들은 그 길을 오르고 무언가에 이르기를 바란다. 그게 종교의 힘이라 어렴풋이 느끼면서도 그 이상 가까이 가지 못하니 답답할 때도 있다. 나는 종교가 없으니 스리파다의 패인 곳이 누구의 발자국이라 말하기 어렵다. 그저 영화계 스타들의 발자국을 모아놓은 할리우드처럼 종교계 스타이신 부처와 시바와 아담의 발자국이 함께 찍혀있는 곳이라 기억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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