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221(D+46)_인도/첸나이
스리랑카 콜롬보에서 출발하는 비행기가 자그마치 6시간이나 미뤄지면서 우리는 공항에서 밤을 꼬박 지새워야 했다. 게다가 콜롬보 공항은 체크인 전에는 어떤 편의시설도 만나 볼 수 없는 구조였다. 출국장의 새벽은 운영하지 않는 체크인 부스들과 벤치 몇 개가 전부였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몇 개 되지 않는 벤치 중 하나에 앉아 꾸벅꾸벅 졸거나 핸드폰을 들여다보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시간은 또다시 흘렀고 새벽을 맞아 공항이 분주해지기 시작할 때 즈음 우리가 탑승해야 하는 비행기의 체크인 창구도 운영을 시작했다.
콜롬보에서 인도 첸나이까지는 비행기로 1시간 반 정도. 한숨도 자지 못한 우리에게는 짧은 비행시간이었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도착비자를 받기 위해 걸음을 옮겼다. 우선은 도착비자를 무사히 받는 것이 첫 번째 목표였는데 행정 처리를 도와주시는 분들은 친절했고 우리는 문제없이 약 두 달간의 비자를 받을 수 있었다. 그렇게 인도에 입성했다. 여행을 다녀온 이라면 모두가 입을 모아 힘들다 말하는 곳. 그럼에도 매력적이라 말하는 이곳에 첫발을 디딘 것이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에 대한 기대와 걱정은 잠시 미뤄두고, 우리는 먼저 눈을 조금 붙여야 했다.
잠깐 자고 일어난다는 것이 눈을 뜨니 오후 7시였다. 네 시간 정도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저녁을 먹어야 했기에 곤히 자고 있는 아들을 깨워 밖으로 나갔다. 저녁을 먹으러 가는 길에 건너편에 이발소가 보였다. 그리고 마침 눈에 띈 김에 나는 인도에서 해야 할 첫 번째 과제를 해결하기로 마음먹었다. 저녁을 먹은 후, 보아두었던 이발소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이발사 세분이 이야기를 나누고 계셨는데 흔치 않은 종족의 등장에 다소 놀란 눈치였다. 한 분이 나를 의자에 앉혔으나, 그는 자신이 없었는지 뒤로 빠졌고 다른 한 분이 내 등뒤에 서서 머리를 어찌해 줄지를 물었다. 나는 깨끗이 밀어달라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그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다시 물었고 나는 대답했다. 'Like a monk'라고.
친가와 외가 가릴 것 없이 머리숱이 없는 가정에서 자란 나는 유전의 힘을 거스르지 못했다. 군대 시절부터 슬슬 적어지기 시작한 머리숱은 대학을 졸업할 즈음, 미래의 헤어 스타일을 확연히 그려볼 수 있게 되었다. 소위 말하는 대머리에 대한 부담은 전혀 없었다. 으레 '나이가 먹으면 그렇게 되는 거구나'라고 생각하며 자랄 수 있는 환경이었기 때문이다. 다만, 오래 만난 여자친구가 머리 없는 남편을 여러 사람 앞에 선보이면 창피할 수 있으니 결혼식까지만 버티자는 것이 머리카락과 관련된 나의 마지막 소원이었다. 다행히도 소원은 이루어졌다. 당시 헤어 디자이너 선생님의 귀신같은 솜씨로 나는 있지도 않은 머리카락을 있는 것처럼 위장할 수 있었고 결혼식도 무사히 마쳤다.
그 이후 내 머리는 방치되어 왔다. 신입사원 시절 여행을 가기 위해 머리를 한 번 짧게 밀었다가 회사에서 쫓겨났던 것이 특이 사항이라면 특이 사항일까. 하지만 그 마저도 다시는 시도하지 않았다. 나는 여전히 짧은 머리가 왜 회사에서 지탄받아야 하는지 알 수 없지만 당시에는 그랬다. 그리고 그 후로는 굳이 헤어 스타일 따위로 회사와 맞서고 싶지 않았다. 안 그래도 맞설 것들은 많았으니 말이다. 회사 생활을 하는 16년이라는 시간 동안 내 머리숱이 어떻게 변모되어 왔는지 알지 못한다. 가끔 빛이 많은 곳에서 사진을 찍으면 정수리가 비어보이기 시작했고 어느 순간부터는 '이제 다 되었구나'라고 생각한 것 같다.
그렇게 신경 쓰지 않던 머리를 인도에서 완전히 밀어버리기로 마음먹은 이유가 '인도 여행을 하려면 이 정도는 해야지'라는 결연함의 발로는 아니었다. 물론 불교에 귀의하기 위함도 아니었다. 나에게는 평생을 함께 해야 할 아내와 아들이 있다. 그저 이 고단한 여행에서 만나는 번거로움 중 하나를 정리하고 싶었다고 하면 설명이 될까. 땀에 젖어 축축 늘어지는 머리가 이리 휘청, 저리 휘청 하는 꼴이 보기 좋지 않았다. 있으나 없으나 별반 차이도 없는데 그럴 거면 이 기회에 육신의 허울을 벗어버리리라 다짐한 것이다.
이발은 간단하게 끝났다. 머리에 무언가를 잔뜩 바르더니 면도날로 삭삭 긁어냈다. 아무것도 얹히지 않은 머리는 얼마 지나지 않아 본모습을 드러냈고 나는 완전히 드러난 나의 두피를 철이 든 후 처음 마주하게 됐다. 하지만 끝난 듯했던 이발사 선생님의 작업은 그 뒤로도 한참 이어졌다. 그는 머리에 영양이라도 줄 생각인지 오일 같은 것을 아무것도 없는 나의 머리에 발랐다. 때로는 지니의 램프처럼 어루만졌고 때로는 박을 깨듯 두들겼다. 그래서 때로는 간지러웠고 때로는 아팠는데 이게 도대체 머리를 미는 행위에 왜 필요한 지는 끝까지 알아차리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그는 기묘한 멜로디에 맞춰 '스무디, 스무디'를 주문처럼 흥얼거렸다. 이 역시 이해할 수 없는 행위였지만 그저 그의 손에 나를 맡겼다고 해야 할까. 그 후로도 이발사 선생님은 나의 목, 어깨, 팔, 옆구리까지 어루만진 뒤에야 역할을 다 한 듯 물러섰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아직은 생소하다. 화상 전화로 내 모습을 본 아내는 주황색 티셔츠와 겹쳐지면서 태국에서 봤던 승려 같다며 웃었다. 아무렴 어떠한가. 나는 이제 한결 가벼워진 몸과 마음으로 인도 여행에 임할 수 있게 되었다. 내일부터는 본격적으로 인도 여행이 시작될 것이다. 모든 여정이 지금의 내 머리처럼 매끄럽게 진행되길 바라본다. 헤어스타일의 변화만으로 부족하다면 주문이라도 외워보면 어떨까. '스무디, 스무디'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