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MUNICATION

20260222(D+47)_인도/첸나이

by 박대희

2008년 9월, 미국의 리먼브라더스가 파산했다. 잘 알지 못하는 이 회사의 몰락은 우리나라의 취업 시장에도 문제를 불러일으켰는데 하필 나는 2009년 2월 졸업을 앞두고 있었다. 안 그래도 글을 써서 먹고살겠다며 취업준비를 하지 않았던 터라 어려운 시국에 마음에 드는 회사에 들어간다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주 오래된 계획'(자꾸 걸어 나가면 Vol.1 1화)에서 밝힌 바와 같이 나는 지금의 아내와 약속을 했고 어디든 우선 입사를 해야 했다. 그 해 하반기 취업전선에서는 완전히 패배했다. 한 마디로 나는 졸업 전에 어느 회사에도 내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다시 봄이 왔고 슬슬 초조해지기 시작할 무렵, 내가 16년간 몸 담았던 회사에서 면접을 보러 오라고 연락이 왔다. 지금도 기억에 생생한 면접 당시의 한 질문을 옮겨보려 한다.


"박대희 씨는 영어영문학과 출신이네요?"

"네"

"그런데, 여기 5명 중 토익 점수가 가장 낮은데 이유가 뭘까요?"


참고로 내 동기 중 한 명은 토익이 만점이었고, 또 다른 한 명은 능수능란하게 영어를 구사했었다. 그런 친구들 사이에 내가 함께 합격한 건 지금도 의문이지만 질문을 받았을 당시 나는 모험을 할 수밖에 없었다. 쭈뼛거릴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영어는 토익 점수와 무관하다 생각합니다. 저는 스페인어를 한 마디도 하지 못하지만 페루에서 원주민 가이드가 딸을 데리고 가라고 할 정도로 커뮤니케이션에 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그래도 내세울 만한 여행 경험 쪽으로 관심을 돌려보고자 대화의 방향을 틀었는데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면점관 중 대장으로 보이는 이가 웃음을 터뜨린 후, 미세한 간격을 두고 나머지 면접관들도 함께 웃기 시작했다. 그들의 환한 웃음을 보고 이 회사에는 들어올 수 있겠구나 생각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합격 문자를 받았다. 입사 후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나에게 토익 점수를 물었던 임원은 상당한 영어 실력의 소유자였다. 그가 나의 커뮤니케이션 타령 뒤에 영어로 몇 마디를 던졌다면 나의 영어 실력은 바로 들통이 났을 테고 아마도 나는 또 다른 회사를 찾아 힘든 길을 걸어야 했을 것이다.


아들은 오늘 나를 따라나서지 않겠다고 했다. 조금 비싼 호텔만 오면 꾀를 부리는데 가끔은 휴식도 필요하니 못 이기는 척 그러라 했다. 혼자 나와 한참을 가고 있는데 아들이 혹시나 배가 고프지 않을까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문자를 넣어 카드 있는 곳을 일러줬다. 배가 고프면 나가서 뭐라도 사 먹으라고 했지만 그러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우선 여행 후 혼자 거리로 나선 적도 없을뿐더러 대화도 쉽지 않을 테니 배가 고파도 그냥 참을 것 같았다. 게다가 이곳은 그가 두려워하던 인도 아닌가. 나는 그저 볼 일을 빨리 끝내고 돌아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런데 문자를 보내고 얼마 안 있어 결제 문자 하나가 날아왔다. 다시 문자로 물으니 컵라면 2개와 간식거리를 조금 산 모양이었다. 먼 거리는 아니지만 인도 거리에 홀로 나와 슈퍼에 갔고 목적을 이뤘다니 대견했다. 내가 기대하는 여행의 효과가 조금씩 나타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에 부풀었다. 그는 영어를 잘 못하지만 커뮤니케이션에 성공한 것이다.


아들의 활약이 이어지고 있을 무렵 아빠는 60km 떨어진 곳에서 커뮤니케이션의 위기에 봉착해 있었다. 동남아시아를 건너오는 내내 버스에는 차장이 있었다. 버스에 탑승한 사람에게 일일이 돈을 받고 표를 끊어주는 분들인데 그들은 좀처럼 자리에 잘 앉지 않았다. 자리가 비어 있다면 모를까 승객이 서 있는데 앉는 경우는 못 본 듯했다. 하지만 인도는 달랐다. 그는 나에게 표를 넘기며 내가 앉아 있는 자리는 본인의 자리니 일어나라 했다. '나는 돈을 지불했고 너는 일을 하고 있는데 그게 무슨 허무맹랑한 이야기냐'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하지 못했다. 그의 기세는 너무도 등등했고 그 버스 안에서 나만 다르게 생긴 별종이었다. 나에게 떠들고 있는 사람은 한 사람이었지만 그의 뒤에 십 수명이 지키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 후에 다시 빈자리가 나서 앉았을 때는 호루라기를 삑삑 불어대며 다시 일어서라 했다. 하도 답답해 다른 승객에게 날 왜 못 앉게 하느냐 물었더니 그쪽은 '레이디석'이란다. 그야말로 엄청난 젠틀맨의 나라다.


우여곡절 끝에 '젠틀맨석' 하나를 잡고 앉았는데 하필이면 옆에 앉은 양반이 거구라 안 그래도 좁은 자리에 엉덩이 반쪽만 걸치고 두 시간을 달렸다. 나는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차장석'과 '레이디석'이라는 것이 진짜 있는 것인지 긴가민가하다. 버스를 타고 돌아오는 내내 만차였지만 누구도 차장의 자리를 요구하지 않았고, 그가 말했던 '레이디석'쪽에는 정말 레이디들만 앉았으니 나를 특별히 차별한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대화의 기술이 조금 더 고급스러웠다면 이 찜찜한 기분을 풀고 버스에서 내릴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미련은 남는다. 아직은 인도라는 나라의 위세에 조금 눌려 있는 기분이다. 그렇다고 계속 눌려 있을 생각은 없다. 내일이면 사흘 째니 슬슬 할 말을 해 봐야 하지 않을까. 영어 말고 커뮤니케이션 말이다.

월, 화, 수, 목, 금, 토,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