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신의 장벽

20260223(D+48)_인도/첸나이

by 박대희

오늘로 인도에 들어온 지 사흘 째다. 이렇게 열 번만 버티면 이곳을 빠져나간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을 보면 인도에 대한 인상이 좋지 않음에는 분명하다. 마치 군에 갓 입대한 이등병의 느낌이랄까. 고마운 점도 없는 것은 아니다. 하루에도 수많은 글감을 안겨주고 있으니 매일 밤 아라비안나이트럼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내야 하는 입장에선 이렇게 든든할 수 없다. 그럼에도 인도의 여정이 무탈히, 무엇보다 빠르게 끝나기를 바라는 마음에는 변함이 없다. 혹자는 물을지 모른다. 그럼 그냥 다음 나라로 넘어가 버리면 되는 것 아니냐고. 하지만 그리 하기 어려운 이유는 예약해 놓은 객실과 비행기표를 모두 수정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첫째요, 여행자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함이 둘째다. 첫 번째 문제는 금전적 손실을 일부 감내하면 해결될 일이다. 하지만 두 번째 문제는 그리 가볍지 않다. 자존심에 상처가 나면 이는 여행 내내 나를 괴롭힐 것 같다. 그래서 우선은 버텨볼 때까지 버텨 본다는 것이 내 계획이다.


앞서 말한 대로 사흘 만에 모은 글감만 수두룩 하지만 그건 차차 풀어내기로 하고 이 많은 문제들의 중심을 관통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봤다. 거리를 점령한 짐승들, 하늘에서 뚝뚝 떨어지는 조류의 분뇨, 모기를 비롯한 각종 곤충의 습격, 널브러진 쓰레기와 시끄러운 경적 소리까지 환경적 요인에 대한 이야기는 중요치 않다. 만약 이런 것들이 문제였다면 스리랑카 역시 나를 힘들게 했어야 하지만 열흘을 지나오는 동안 요 며칠 인도에서 느낀 감정은 전혀 없었다. 그래서 나는 그 문제를 이곳의 사람들에서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 근원적인 문제에 대해 고민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내린 결론이 바로 불신의 장벽이다.


내가 그들을 믿지 못하게 된 이유는 미디어 탓이 크다. 미디어에서 그들은 항상 여행자들을 곤란하게 만드는 존재로 그려졌다. 소위 말하는 바가지를 씌워 금전적 피해를 입히거나, 시간을 지키지 않아 여행 일정 전체를 어그러트리곤 했다. 게다가 행위가 모두 발각되었음에도 당당함을 유지하는 뻔뻔함은 많은 시청자나 독자들을 아연실색케 했다. 하지만 단지 미디어에서 들은 이야기만으로 그들을 판단할 수는 없었다. 나는 지난 사흘간 미디어에서 접한 그들 모습의 진위를 파악하기 위해 비판적 시각을 유지했다. 그리고 내린 결론은 미디어가 과장된 면이 없지 않지만 전혀 허무맹랑한 이야기도 아니라는 것이다.


잔돈이 없다며 큰돈을 뜯어가려 했던 택시 기사나 석공 체험을 빌미로 체험료를 챙기려 했던 조각가가 그러했다. 내가 짐을 옮기겠다는데도 굳이 옮겨 주더니 은근슬쩍 팁을 요구했던 벨보이는 팁을 줄 생각이 없어 보이자 그 후로 나와 아들을 보는 눈빛이 싸늘하게 바뀌었다. 진짜인지 가짜인지 모를 목발을 곁에 두고 거리에 앉아있던 이들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돈을 요구했다. 사흘 만에 현지인을 만났으면 얼마나 만났겠는가. 그런데 그 몇 안 되는 사람들 중 앞에 말한 사람들이 모두 등장했으니 피곤함을 느낄만하지 않은가.


문제는 나의 선입견과 확인된 몇몇 인물들 덕에 좋은 사람들을 구별해 낼 능력을 상실해 버렸다는 것이다. 마하발리푸람에서 젊은 학생은 내가 혼자 유적을 구경하는 모습을 보더니 설명을 해주겠다며 친절히 접근했다. 하지만 나는 그의 설명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고 설명 뒤에 어떤 요구가 따라올지를 고민해야 했다. 오늘 한 툭툭 기사님은 건물 계단에 쭈그리고 앉아있는 우리 부자를 보고 본인 툭툭에 앉아 기다리라고 호의를 베풀었지만 그 역시 믿을 수가 없었다. 마리나 비치에서 만난 젊은이들에게 함께 사진을 찍자 요청하면서도 괜히 사진 값만 뜯기는 것 아닌가라는 걱정을 털어내지 못했다. 그들은 우리와 함께 사진을 찍으며 즐거워했고 하이파이브와 악수까지 하고 헤어졌다. 그들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그 어떤 요구도 없었다.


앞으로 한 달, 중간에 네팔에 다녀오는 것까지 포함하면 약 40일 동안 나는 이들에 대한 불신의 장벽을 완전히 걷어낼 수 있을까. 물론 지금으로선 요원해 보인다. 마음 한 구석에 자리 잡기 시작한 부정적 감정은 여간해서는 쉽게 사그라들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사람 일은 모르는 것이고, 여행 중에 은인은 불현듯 등장하기도 한다. 그런 기분 좋은 사건들이 쌓이다 보면 인도를 떠날 때 즈음에는 그들에 대한 나의 인식이 바뀔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당분간은 그저 의심하고 조심할 수밖에 없다. 여행길에 이런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것은 피곤한 일이지만 내가 가진 패가 많지 않다. 염치없는 인도 사람들보다 선한 인도 사람들이 압도적으로 많기를 바라는 마음을 안고 우리는 오늘 밤 다음 행선지 마두라이로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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